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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1 (금)

전 세계도 사모펀드 골머리...미국, 작년 사모펀드 지원 기업 파산신청 역대 최대 [사모펀드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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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형 기업 파산 56%가 사모펀드와 연관
고금리 따른 자금조달 비용 증가 주요인
싸게 사서 부채 늘리고 되파는 관행도
독일·영국·호주 등 곳곳서 신음


사진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포에버21 매장에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전체 세일 광고가 붙어 있다. 포에버21은 두 번째 파산 신청을 검토하는 동시에 매장 200곳을 폐쇄하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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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파트너스와 홈플러스 사태로 불거진 사모펀드 잔혹사는 이미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골칫거리 중 하나다.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할 때만 해도 재정 건전성과 수익성 향상 등을 기대했지만, 실상은 거액의 배당금 유출과 부채 급증으로 기업들이 무너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최근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 지원을 받은 미국 기업이 파산 신청한 사례는 전년 대비 15% 증가한 110건으로 집계됐다. 수치는 코로나19로 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던 2020년 97건을 넘어서면서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파산을 신청한 업종을 보면 임의소비재와 헬스케어, IT, 산업재 순으로 많았다. 기업 중에는 에이치푸드홀딩스가 28억3370만 달러(약 4조1200억 원)라는 가장 많은 부채를 안고서 파산을 신청했고, 웰패스홀딩스나 프랜차이즈그룹, 빅로츠 등 다른 기업들도 10억 달러 넘는 부채를 신고하며 구제를 요청했다.

또 사모펀드 비영리 감시기관인 ‘사모펀드 이해관계자 프로젝트(PESP)’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 기업(부채 5억 달러 초과) 파산의 56%가 사모펀드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PESP는 “사모펀드는 미국 경제에서 6.5%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전체 기업 파산의 11%를 차지했다”며 “사모펀드 관련 파산으로 지난해 전국에서 최소 6만5850명이 해고됐다”고 지적했다.

파산 신청이 늘어난 주요인으로는 소비자 지출 감소와 여전히 높은 금리 환경, 이로 인한 자금조달 비용 증가 등이 있다. 로펌 반스앤드손버그의 앤서니 아놀드 파트너 변호사는 “그렇게 지속적인 금리 수준에서 살아남을 기업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수익성에만 집중하는 사모펀드도 원인이다. 아놀드 파트너는 “최근 10년을 보면 기업들이 과거에는 사용할 수 없었던 추가적인 부채 조달 경로가 생겼다. 주로 사모펀드”라며 “이들은 은행에서 제공하는 조건과 같거나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려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동시에 잠재적 디폴트(채무불이행)나 약정 위반이 발생하면 더 공격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선다”고 설명했다.

과거 미국 법무부에서 사모펀드 특별검사를 맡았던 브렌든 발루는 CFA소사이어티홍콩이 주최한 한 포럼에서 “사모펀드는 향후 몇 년 동안 좋은 상황을 보장하기보다 단기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업을 매수해 실행할 수 있다”며 “사모펀드 회사가 뛰어난 이유는 리더가 회사 운영 전문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법률이나 금융공학과 로비에 능숙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몇 년 새 많은 사모펀드가 상장하면서 더 많은 자금을 모으는 추세다. 이를 통해 사모펀드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발루 전 특별검사는 “입법기관과 규제 당국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며 “예를 들어 뉴욕과 캘리포니아, 미네소타에선 사모펀드에 조건을 부과해 기업이 매각 후 재임대, 배당금 재조정 등을 하는 경우 주 정부가 기업에 재정적 손실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른 국가들도 사모펀드 기업 파산에 몸살을 겪고 있다. 독일에선 자동차 시트 제조로 유명한 레카로가 사모펀드에 인수된 지 4년만인 지난해 파산을 신청했다. 레카로는 오랜 역사를 지닌 기업이지만, 2011년부터 주인을 여러 번 바꿔가며 어려움을 겪었다.

2020년에는 1778년 설립됐던 영국 대형 백화점 체인인 데번햄스가 파산했다. 2003년 사모펀드 컨소시엄에 인수됐는데, 사모펀드들은 6억 파운드(약 1조1300억 원)를 투자하고 나서 인수 3년도 되지 않아 12억 파운드를 배당금으로 챙겼다. 반면 인수 당시 1억 파운드였던 부채는 2006년 재상장될 무렵 10억 파운드를 넘어섰다. 이후 데번햄스는 실적 부진을 겪다 파산을 신청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해당 거래를 “저렴한 가격에 인수한 뒤 막대한 부채를 안기고 높은 수익을 내며 재상장하는 사모펀드 모델 최악의 폐해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불렀다.

그 밖에도 호주 최대 암 치료제 업체인 제네시스케어가 사모펀드 지원을 받다 부채 문제로 2023년 파산을 신청하는 등 해마다 세계 곳곳에서 사모펀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이투데이/고대영 기자 (kodae0@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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