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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窓]인생 2막이 더 아름다운 '의료계 큰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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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은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충분'이란 단어의 중요성을 예를 들어 잘 설명했다. 라자트 굽타는 자수성가한 대단한 사업가였지만 결국 실패하는 이야기가 소개된다. 굽타는 콜카타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것도 모자라 10대에 고아까지 됐다. 이런 역경을 극복하고 40대 중반에 맥킨지의 CEO가 됐고 2008년 재산은 약 1억달러, 원화로 1400억원 넘는 갑부가 돼 돈과 명성을 모두 얻었다. 그러나 굽타는 1억달러로는 만족하지 못했고 10억달러의 갑부가 되기 위해 골드만삭스의 내부정보를 이용한 불법투자를 하다 결국 감옥까지 가며 모든 것을 잃었다. 이 책에선 비슷한 예를 몇 개 더 드는데 상상하기 어려운 부와 명성을 이미 가진 사람들이 충분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더 많은 돈,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명성을 추구하다 몰락하는 어리석음을 볼 수 있다.

돈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면에서 충분함에 대한 의미를 잘 생각하고 스스로 멈출 수 있는 계획과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는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주변의 은퇴하지 못하는 의사들의 삶을 생각해보면 충분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좀 더 성실하고 남들보다 좋은 환경에서 성장해 한 발 앞서고 그런 선두를 유지하기 위해 덜 자고 덜 놀면서 노력해 의대에 진학한다. 대학 시절을 기억할 추억이나 낭만도 없이 많은 학점을 이수하기 위해 공부하고 졸업하면 바로 인턴과 전공의 수련을 받는다. 전문의가 된 후엔 이제까지 노력한 것보다 더 노력해 교수가 되고 이후 65세까지 쭉 진료·교육·연구를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정년이 되면 쉴 만도 한데 쉬지 못하고 교수직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이런 의대 교수들의 삶을 보면 충분히 고생했고 노력했으니 평소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여유를 찾는 것이 좋지 않을까란 생각도 한다. 유명한 교수일수록 더 쉼 없이 더 많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일하고 싶어한다.

조금이라도 더 교수로서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분들과 다르게 의미 있는 삶을 시작한 의사들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두 분은 서울아산병원에서 정년을 맞은 교수다. 한 분은 응급의학과 교수였던 임경수 교수님으로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제안을 거절하고 전북 정읍시 고부면의 보건지소에서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환자를 돌보고 있다. 그분의 경험과 지식은 보건지소란 곳에 도저히 담을 수 없다. 어떤 면에선 너무 비효율적이란 생각도 든다. 임 교수님은 아직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많은 응급환자를 살릴 수 있음에도 의료취약지역을 선택해 인술을 베풀고 있다.

서울36의원은 방문진료만 하는데 병원을 방문하기 어려운 거동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왕진을 하는 병원이다. 이 병원의 대표원장인 유은실 교수님은 은퇴한 병리의사다. 최근 병리과는 은퇴 이후에도 은퇴 전과 비슷한 수입이 생기는 일자리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경제적 유혹을 뿌리치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봉사하는 것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일은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병원을 개원하고 진료를 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의료서비스 모델을 만들고 있어 응원한다.

이런 분들은 의료계의 큰 어른이라고 생각하며 보건의료 정책을 세우고 집행함에 있어서도 이런 어른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지혜를 발휘하면 좋을 것 같다. 의대 학생이나 후배 의사는 본받을 점이 많은 선배들을 보면서 인술을 베푸는 의사의 꿈을 키워나가면 좋겠다.

이런 은퇴한 훌륭한 교수님들을 보면서 떠오른 성경 구절은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다. 교수일 때는 교수로서 최선을 다하고 사회를 위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의사들을 위해 머리 숙여 인사드린다.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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