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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1 (금)

"미국 원조 삭감은 '배신'...미얀마에 재앙적 영향" 유엔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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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권특별보고관 "불필요하고 잔인" 비판
미얀마 서부지역 기근 임박, 인도주의 위기 ↑

지난달 7일 태국·미얀마 국경 지대인 태국 딱주 폽프라 지구에 위치한 미얀마 난민 캠프 의료 시설 앞에 성조기와 함께 미국 정부 지원을 알리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해당 진료소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해외 원조 중단으로 문을 닫은 상태다. 폽프라=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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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갑작스러운 해외 원조 중단이 미얀마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유엔의 경고가 나왔다. 미얀마 쿠데타 군부의 공습과 폭력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그나마 최소한의 생존을 돕던 미국 자금 지원마저 끊기면서 주민들이 재앙이나 다름없는 현실에 놓이게 됐다는 지적이다.

18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토머스 앤드루스 유엔 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은 전날 스위스 제네바 유엔 인권이사회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정부가 주도한 갑작스러운 식량, 의료 지원 중단이 미얀마 인도주의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이다. 앤드루스 보고관은 미국의 대외 원조 중단과 이에 따른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지원 삭감으로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州)에서 기근이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라카인주는 비옥하고 넓은 농토와 온화한 기후로 3모작이 가능한 지역으로 꼽힌다. 그러나 2021년 2월 쿠데타 이후 이어진 군부와 소수민족 반군 간 내전으로 농사가 중단되면서 식량 생산이 급감했다.

토머스 앤드루스 유엔 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이 17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제네바=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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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유엔개발계획(UNDP)은 이 지역에서 200만 명이 굶주린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그나마 미국 등의 원조로 생계를 이어왔는데, 이마저도 끊기면서 사실상 기아 위기에 놓인 것이다. 앤드루스 보고관은 대부분의 사람이 배를 곯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 착취와 인신매매가 더욱 늘어나고, 방글라데시 등으로 국경을 넘는 미얀마인도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의료 시설도 폐쇄돼, 아파도 진료를 받기는커녕 의약품을 얻기도 쉽지 않다. 일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환자들은 미국이 자금을 지원하는 보건 프로그램 중단으로 지난 7주간 약을 복용하지 못했다는 게 유엔 측의 설명이다.

지난해 4월 미얀마 동부 카야주 데모소 타운십의 국내 실향민 캠프에서 난민들이 식량과 식수를 옮기고 있다. 데모소=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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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스 보고관은 이날 ‘재앙’ ‘배신’ ‘부끄러운 일’ 등 직설적인 표현을 써가며 미국의 해외 원조 철회 방침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미국 해외 원조 효과에 대한 의문과 (재정) 부담을 나누는 문제는 해결돼야 하지만, 갑작스러운 지원 중단은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무관하다”며 “(중단 배경에) 정치적 이유가 있다”고 일갈했다.

“미얀마 국민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불필요하고 잔인한 결정”이라고도 덧붙였다. 앤드루스 보고관은 미국 민주당 출신으로 1980~1990년대 미국 상·하원 의원을 지냈다. 2020년부터 유엔 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을 맡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해외 원조 프로그램이 미국 외교 정책에 부합하는지 평가하는 동안 자금 지출 등을 90일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 조치로 국제기구와 단체들의 지원이 줄줄이 멈춘 상태다. WFP도 지난 15일 심각한 자금 부족으로 다음 달부터 미얀마에서 100만여 명에 대한 식량 지원을 중단하고 가장 취약한 3만5,000여 명만 지원할 수 있다고 공개했다. 미국은 지난해 WFP 예산 가운데 절반을 지원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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