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고객이나 인테리어 업체를 대상으로 도배 작업을 하다 보면 보람 있고 즐거운 순간도 많지만 반대로 기분이 상하거나 난감한 일을 겪기도 한다. 터무니없이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양질의 작업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오기로 했던 작업자가 갑자기 펑크를 내기도 한다. 사전에 전달받은 것과 달리 현장에 발 디딜 틈 없이 짐이 많아 작업 속도가 느려지거나 구조가 복잡하고 층고가 높아 작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몸과 마음이 지친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
그중 최악의 상황은 일을 하고도 돈을 못 받는 경우다. 작업 결과에 대해 괜한 꼬투리를 잡아 돈을 안 주기도 하고, 돈이 없다며 무작정 잡아떼기도 한다. 주변에 물어보니 나처럼 돈을 떼인 적 있는 작업자들이 적지 않았다. 돈을 떼이는 것 못지않게 난감한 상황은 고객이나 업체가 예약해 놓은 일을 하루이틀 전에 갑자기 취소할 때다. 사전에 현장 답사를 하고 현장 규모에 맞춰 작업자들을 미리 섭외해 배치까지 다 해놓았는데 갑작스럽게 취소되는 것만큼 난처한 일도 없다.
내가 내 시간을 써서 수습할 수 있거나 혼자만 손해 보는 상황은 그래도 비교적 괜찮지만, 한 사람의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면 화가 나고 억울할 수밖에 없다. 작업 이후에 돈을 못 받거나 늦게 받으면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도 인건비를 늦게 줄 수밖에 없는데, 특히 한 집안의 가장이거나 맞벌이 도배사 부부의 경우 가정경제를 꾸려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인건비를 늦게 주는 현장이 많아질수록 그 액수도 점점 쌓여 커질 수밖에 없다.
일이 갑자기 취소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 혼자만 하는 일이면 하루 쉬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미리 연락해 약속을 정해 놓은 일이라면 그 많은 사람이 갑자기 그날의 일자리를 잃게 되는 셈이다. 일용직의 특성상 하루이틀 전에 갑자기 취소해 버리면 당장 일을 구하기도 어렵고, 일당을 모아 한 달 생활비를 마련하는 일에도 차질이 생기게 된다.
나도 내가 하는 작업을 돌아보게 된다. 도배는 고객이나 업체, 다른 공정의 작업자들까지 긴밀하게 엮여 있다. 간혹 안이한 생각으로 꼼꼼하게 작업하지 않아 하자가 발생하면 그 하자가 보수될 때까지 잔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그 잔금은 나한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작업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돈이다. 나의 작은 행동이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좀 더 책임감 있고 신중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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