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당시 정치학 교과과정에는 ‘군부정치론’ ‘민군관계론’이라는 과목이 필수로 들어가 있었다. 학부, 대학원 석박사 학위과정의 각종 시험에서 ‘군부정치’는 단골 문제였기 때문에 손때 묻은 ‘족보’가 대를 이어 증보(增補)되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제3세계 군부 쿠데타 발생을 설명하는 변수로 ①개인의 권력 욕망 ②군부 조직의 정치화 ③자본 축적의 위기 등을 해결하려는 사회 요구 ④미·소의 지원과 같은 세계 체제의 유인 등이 있다고 시험공부를 하던 일이 떠오른다.
민주화 이후 그 과목은 정치학 교과과정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그 책을 서가에서 뽑아 먼지를 털어내고 있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때문이다. 그는 군대를 동원해 무력으로 헌법기구를 해체하고, 권력을 독점하려는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의 친위쿠데타는 단순한 정치갈등을 넘어 국가의 민주적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건이다. 이는 과거 군사정권들의 쿠데타와 차별화된, 새로운 형태의 권위주의 시도이다.
윤석열의 쿠데타는 박정희, 전두환의 그것과 좀 다르다. 그의 쿠데타는 한마디로 하이브리드형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는 국가기구 가운데서 가장 강력하고 잘 조직된 군대와 군부 지도자가 전통적 물리력을 동원해 일으킨 것이다. 박정희 쿠데타는 육군 장교단이 주축이었고, 전두환 쿠데타는 하나회, 보안사가 주체였다. 그런데 윤석열 쿠데타는 비군사적 권력과 군사력이 연결되어 일어난 것이 특징이다.
박정희, 전두환은 군사력 중심의 전통적 쿠데타를 했다. 무장군인으로 하여금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군부가 직접 통치하는 군사정권을 출범시켰다. 윤석열은 비군사 권력으로부터 시작해 법적 절차를 악용하며 최종적으로 군사력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하이브리드형 쿠데타라는 것이다. 명분도 박정희, 전두환은 국가안보와 경제발전 지속을 내걸었으나 윤석열은 선거관리위원회와 국회라는 헌법기관의 불법, 부당을 바로잡겠다는 것을 내세웠다. 방법도 박정희, 전두환은 노골적이고 전면적인 반란이었으나 윤석열은 헌법 질서를 지키겠다는 교묘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지자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전파해 쿠데타에 대한 지지를 부추기고 있다.
윤석열의 쿠데타는 새로운 형태의 권위주의적 헌정 파괴 시도라는 점 때문에 해결 방법도 간단치 않아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려움이 커질지 모른다. 박정희, 전두환의 그것과 비교하면 그의 쿠데타는 복합적이고 진화한 형태인 것이 사실이다. 군사력을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민간 권력과 법치를 가장해 합법성으로 자기 행위를 포장하고 심리전으로 대중동원까지 획책하고 있다. 이를 제압하려면 당장에는 신속한 탄핵 촉구를 위한 압도적 국민행동이 필요하고, 쿠데타 세력을 뿌리 뽑아 엄정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비상행동의 대오를 계속 유지해야 할 것이며, 길게 보면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개혁을 추진하는 주권자 운동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윤석열의 쿠데타가 하이브리드형이기 때문에 필요한 일이다.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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