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는 내란수괴 윤석열·이상민·김용현·여인형의 모교 충암학원 이사장 윤명화입니다. 1979년 저는 전두환의 계엄을 겪었습니다. 그 공포가 그날(비상계엄 선포일)도 저에게는 엄습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장으로, 여의도로 못 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나 국회를 침탈하는 군인들과 그것을 막아서는 용감한 국민들의 저항을 보고 다시 한번 저를 반성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내란 혐의자들의 모교인 충암고등학교의 윤명화 이사장이 14일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집회 참가를 위해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 앞을 가득 메운 시민들 앞에 섰다.
그는 내란의 밤이었던 지난해 12월 3일 광장으로 향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며 시민들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동시에 "국격 실추, 학교 명예 실추"라며 내란 수괴‧동조 혐의자들의 모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시민들은 윤 이사장을 향해 격려의 박수갈채를 보냈다.
윤 이사장은 "(비상계엄 선포) 다음날 저의 SNS에 "윤석열을 그 일당과 함께 충암의 부끄러운 졸업생으로 백만 번 선정하고 싶다고 했다"며 "충암의 재학생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고도 했다.
윤 이사장을 비롯한 광장의 시민들은 "끝까지 함께 싸우자"며 의지를 다졌다. 세상의 아픔과 함께하는 심리전문가연대 1000명의 활동가들도 이날 집회에 자리했다. 이들은 "불안은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예상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 해결할 수 없으리라는 무력감에서 비롯된다"며 "무력감이 찾아올 때 연대의 힘으로 이겨낸 국가적 위기를 기억해내라. 우리는 국가적 환란이 생겼을 때마다 극복한 역사가 있다"고 했다.
전국 각지의 대학생들도 연대의 길에 함께했다. 부산 대학생 상경단식농성단 대표로 나선 이승민 씨는 "부산의 대학생들은 비상계엄 이후 무력감과 부채감을 먼저 느꼈다. 남태령 고개에서 한남동에서 응원봉 투쟁을 보며 자랑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이 씨는 "지난주 부산 집회 후 행진 마무리되는 시점에 윤석열의 구속이 취소됐다는 말을 듣고 허탈함도 잠시, 신발 끈을 동여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야겠다 생각했다"며 상경 단식 투쟁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들은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광장으로 더 크고 더 강하게 모여야 하지 않겠나. 광장을 함께 더 크게 더 밝게 만들어달라"면서 "윤석열의 파면 이후 내란 세력의 청산까지 서울에서 부산에서 함께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이면 윤석열의 파면 소식을 듣고 있을 줄 알았는데 다음 주까지 미뤄진다"면서 "점점 더 심해지는 '내란성 스트레스'를 앓고 있지만 저 극우세력과 내란수괴에게 광장의 힘을 보여주자. 주변 모든 사람들의 손 꼭 잡고 여기 모여 윤석열을 파면시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비상행동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5만 명, 경찰 추산 6000명이 참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파면 긴급행동' 집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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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대학생들로 구성된 자유대학은 중국대사관 앞에서 '멸공 페스티벌'을 벌였다. 경찰 비공식 추산 200여 명의 참가자가 헌재까지 행진했다.
이날 탄핵 찬‧반 집회가 서울 도심 각지에서 진행됐지만 각 세력 간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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