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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3 (목)

낮에는 작가님, 밤에는 편의점 알바…'올해의 작가'가 들려주는 직업 이야기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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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골라듣는 뉴스룸] 작가 양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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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상 2024 최종 수상자인 양정욱 작가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낸 움직이는 조각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올해의 작가 전시에는 양정욱 작가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구작과 신작이 함께 전시되고 있는데요, 그는 상당수 초기 작품들은 부숴버려 남아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낮에는 '작가님'으로, 밤에는 '야! 어이!'로 불리는 편의점 직원으로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마치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같았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한 사람이 갖게 되는 수많은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서서 일하는 사람들' 연작에 담았습니다. 예술가들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다고 하죠.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일상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길어내는 양정욱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 보시죠.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 254회 작가 양정욱 편 풀영상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김수현 기자 : '저녁이 돼서야 알게 된 3명의 동료들'이라는 작품도.

양정욱 작가 : 그 작업은 쿠팡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제가 작업했을 때는 아이폰이 아직 나오기 전이에요. 그래서 제가 경험한 건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거든요. 와이프의 텃밭을 본 것도 한 2, 3초면 지나가요. 텃밭이 작아서. 1m 50cm 정도 되는 텃밭을 분양받은 거였어요. 그러니까 순식간에 지나가요. 저것도 물류센터에서 일한 거지만 하루 일한 것에 여러 가지 봤던 요소들을 섞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드는 거죠.

물류센터를 가보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새벽에 만나요. 대장급 되는 사람이 '당신은 저기, 당신은 저기, 당신은 저기' 일을 시키는데 컨베이어 벨트 사이사이 얼굴을 명확하게 알아볼 수는 있지만 말을 할 수 없는 거리로 배치해 놓고 일을 시키거든요? 그러면 저녁때까지 일하면서 지나가면서 얼굴은 계속 보는데 저녁때까지 이 사람하고 말을 못 해요.

그런 물류센터는 대부분 외진 데 있었어요. 그래서 정류장 뒤가 다 풀. 분명 도로는 있지만 '이게 차가 다니는 도로 맞나?' 할 정도로 버스가 늦게 가끔 하나씩 오는. 그런 데 가면 보통 벤치에 풀도 있고 벌레도 있고, 앉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서 있는 거야. 낡은 조명이 하나 뒤에 비치고, 이 사람들은 서로를 모르니까 붙어서 있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팔이 안 닿으려고. 그래서 3명이 나란히 서 있고 뒤에서 조명이 비치는데 자기의 그림자가 바닥에 펼쳐져요. 근데 이 사람들이 물건은 아니잖아요. 가만히 서 있다고 노력하더라도 조금씩 흔들려요. 실제로는 닿지 않는데 그림자는 우연치 않게 가까이 있어서 흔들릴 때마다 그림자가 겹치는 거예요. 조금씩 그 부분이 진해져요. 손가락이 보이고, 가방이 진해지고, 팔이 진해지고, 그런 상상들을 해보는 거예요.

그래서 이 작업에는 동그란 덩어리를 주로 사람으로 그려요. 드로잉을 할 때 동그라미를 아무리 여러 번 그려도 계속 달라지거든요. 그게 사람 같아서, 저는 동그라미를 사람이라고 항상 상정하는데. 저 3개 빛이, 동그란 빛이 나올 수 있게 장치를 만들고 아주 천천히 좌우로 움직여요. 그러면 어떨 때는 많이 겹치고 어떨 때는 멀어져서 겹치는데, 그림자랑 다르게 빛이 겹쳐지는 거라서 겹쳐지는 만큼 오히려 밝아지죠. 그런 식의 연출을 한 작업이에요.

그래서 이 작업은 오래 안 보시면 못 느껴요. 움직임이 너무 느리기 때문에. 어떤 분은 펑펑 울고 가시는 분도 봤어요. 뭔가 있으신가 봐요, 많이 우시는 분들은. 전시장 가면 그런 얘기도 DM으로, SNS로 '잘 봤다, 어쨌다' 이런 분들에게 많이 연락받거든요. '나 너무 좋았다.' 그리고 기자 간담회 때 한 분이 안 나오시는 거예요. 봤더니 울고 계셨어요. 그 짧은 순간에 동화가 되셔서.

그리고 이번 작업에는 제가 피아노 연주를 조금 해놔서, 피아노 느낌하고 좀 맞게. 음악을 연주한 건 아니고 피아노 치는 사람이 느껴지게. 저는 사진 보면 사진을 안 보고 '사진 찍은 사람이 어떻게 서 있었을까? 어떤 표정이었을까. 어떤 표정이었길래 저 사람은 저랬을까? 저 사람이 편안했을까 아니면 좀 경직됐을까?' 그런 거 생각하거든요. 그런 거를 조금 추가해서 한 작업이에요. 아쉬운 것으로는 더 크게 하면 더 예쁜데, 공간에 맞춰서 좀 작게 했어요.

김수현 기자 : 어두운 데로 따로 들어가야 볼 수 있도록 전시가 돼 있거든요.

양정욱 작가 : 초기에는 원형 지름이 4m, 5m 정도 되게. 저 뿌연 것이 약간의 아스라한 느낌. 원형은 어떻게 만든 거냐면 상자를 하나 만들고 뒤에 LED 하나 붙여서 앞에는 종이 골판지를 거칠게 손으로 자르기도 하고, 안 드는 가위로 동그랗게 오렸어요. 빛이 구멍 사이로 투영되면서 깔끔하게 안 잘랐으니까 약간 아스라이 하고 처음에 잘 안 보이는데 오래 있으면 숲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해요. 보이기 시작하면 빠져들 준비가 되는 거죠.

연주곡은 한 5분에서 6분 정도 해놨는데 그 정도 이제 보시면 좋았다고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이걸 더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고. 저는 작업할 때 좀 창피한데 많이 울어요. 왜냐하면 제가 이거에 푹 빠져서 글을 계속 상기하면서 작업을 하니까 울었던 작업 중에 하나거든요. 이번 전시에 넣은 거는 잘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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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기자 : '서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에도 이런 제목으로, 연작처럼 하시는 건가요?

양정욱 작가 : 네, 아예 작정하고 연작으로 한 작업인데요. 전시하고 있는 게 22번이고 초기 작업부터 있는데, 초기에는 작업을 하면 한 번 보여주고 부수고. 부순 거 부품을 빼서 또다시 다른 작업을 만들어서 또 보여주고 부수고 했어요.

초기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전시를 하는데 안 와? 그러면 여기 아니면 못 봐.' 그리고 가져와서 부수는 거예요. 그게 강했어요. 그래서 초기 작업이 사진이 없는 것도 많고, 넘버가 9부터 시작하거나 20부터 시작하거나 앞에 작업들은 핸드폰으로 찍은 것들만 좀 있을 거예요. 25 시리즈는 9번부터 좀 살아남아 있고요. 살아남은 첫 번째 9번 작업과 22번 작업을 나란히 놨어요. 이번 전시에.

이 작업도 보시면 좌우로 왔다 갔다 두리번두리번하고 있는 인물들이에요. 저 작업은 우리가 직업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임금을 기준으로 생각하잖아요.

김수현 기자 : 임금 받는 돈으로.

양정욱 작가 : 월급. 어떤 사람은 월급이 되고? 저 같은 경우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3개월 있다 받기도 하고 6개월 있다 받기도 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해 보면 10년 뒤에 받는 월급도 있을 거고, 무언가가 죽고 난 다음에 받는 월급도 있을 거예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관념적으로 월급, 임금의 기준으로 어떤 직업의 모양이나 직업을 떠올리잖아요.

근데 임금을 빼고 한번 직업만 생각해 보면 모든 것들이 다 직업이 될 수가 있어요. 제가 여기 2층인데, 1층에서 2층 올라오는 순간에 2층 올라오는 사람들의 직업이, 아까 엘리베이터 탈 때 여러 명 같이 탔거든요. 순간적으로 같은 직업을 가졌어요. 내려갈 때도 내려가는 직업이고, 커피를 살 때 계산할 때 현금으로 사면 현금으로 사는 사람들끼리의 직업이 형성되고요. 카드로 사면 카드로 사는 사람.

재밌는 것은 우리가 직업 속에서 연대해서 같이 이야기할 부분들이 많아요. 여기도 아까 조명에 대해서 이슈가 있었잖아요. 그러면 여기 온 사람들은 촬영, 녹음하는 직업이잖아요. 그 사람들은 이제 조명에 대한 얘기를 공통적으로 할 수 있게 돼요. 저는 직업을 그런 식으로 좀 생각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우리가 모든 것들에 순간적으로 접점이 계속 이어져요. 많은 사람들이 그러면 서로 유대가 되고 연대가 되고 커뮤니케이션이 더 빨라지죠. 저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업은 직업이 있던 사람이 사고를 당했든 은퇴했든 장사를 하면 폐업을 했든 간에 오래 했던 직업을 관두고 임시로 새로 일을 구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새로 구했을 때 앞에 했었던 나의 일들이 어른거리지 않겠어요? 방송국에서 일했으면 과일 팔면서 마이크 잡고 얘기를 하면 방송국의 뭔가를 떠올릴 것이고. 체조 선수인데 만년 3등만 해서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나이가 너무 많아져서 엄마 국밥집에서 일하는데, 쟁반에 음식 놓고 다닐 때 리듬과 균형에 대해서 떠올리고 있을 것이고. 여기 작품에서처럼 전직 군인이었는데 내 말을 너무 잘 듣던 부하들을 뒤로하고 은퇴하고, 주차장에서 주차 관리 요원 일을 하게 돼서 경광등을 휘두를 때 얼마나 차들이 말을 잘 들을까. 칸에 딱딱 들어가서 멈추라 하면 멈추고, 기다리라면 기다리고. 그런 모든 사람들을 생각해 봐요.

그러면 우리가 순간적으로 무수한 직업들을 가지면서 우리가 보는 사람들을 허투루 보지 않게 되죠. 왜냐하면 저 직업도 언젠가 나의 직업에 어떤 순간이 있고 우리는 계속 여러 가지로 연결돼 있으니까. 그런 류의 작업이고요. 제가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작가로서만 활동할 수 없고 다른 일도 병행하면서 이하게 되잖아요. 생업을 위해서. 그러면 하루에도 직업이 계속 바뀌어요. 거기서 모티브를 얻었기도 해요. 편의점에서 일할 때는 '야, 어이' 이렇게 부르다가 전시장에 가면 '작가님'. 그래서 저는 어렵고 이상한 기분들을 많이 느꼈을 때가, 전시가 활발해지는데 동시에 작품은 팔리지 않고 뭔가 다른 일을 했을 때 이상한 기분이 계속 많이 들었어요. 오프닝에 가면 화려한 음식에 좋은 사람들이 '작가님, 작가님' 하다가 저녁이 되면 아르바이트복을 입고 '야, 어이' 하는 술 취한 사람들을 상대하고.

'기생충'에서 그 장면이랑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송강호 배우가 집에 홍수가 나서 막 난리가 났잖아요. 집에 난리가 났는데 전화 와서 지금 장 봐야 되는데 잠깐 오라고 했을 때 얼굴이 빨개져서 영혼이 완전 나간 상태로 화려한 식자재를 사는 상황? 그런 것들을 좀 떠올려요. 지금도 그런 거 많이 있을 것 같아요. 회사에서 내가 일을 하다가 집에 가면 아빠로서의, 엄마로서의, 남편으로서의 직업들을 계속 갖잖아요. 임금을 생각 안 하면. 계속 교차하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과거에 가장 오래 했던 비중의 노동과 직업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계속 서성이는 것 같아요. 다시 '난 이거 할 사람이 아닌데' 하면서 돌아가기도 하고 '다른 거 없나?' 하면서 쳐다보기도 하고, 그런 류의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래서 여기는 군인이었다가 주차 요원이 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9번 작업이 있고.

22번 작업은 되게 화려해요. 어디서 모티브를 얻었냐면요. 장원급제하면 버드나무 꽂고 '나 왔다' 하는 건데 이 사람은 예전에 제가 신문 배달을 잠깐 해봤을 때 신문은 고급 빌라 5층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구독하더라고요. 근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옛날 빌라라. 그때를 떠올리면서 했던 건데 제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 나는 계단을 오르는 게 직업인가 봐. 신문 배달하는 것보다 이게 더 힘드니까.' 그래서 직업이 계단 오르는 사람. 그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성공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서 '난 제일 높은 층 빌딩에, 일단 사업은 뭘 할지 모르겠지만 사무실을 하나 내겠어.' 해서 이 낡은 고향 마을에 제일 높은 층의 사무실을 구하고 매일 유리를 닦으면서 동네를 내려다보면서. 동네 나가면 '누구 아들이 이번에 성공해서 왔네.' 그럴 거 아니에요? 여기에 나오는 글에서는 어느 날 그 빌라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요. 그래서 다시 계단을 오르는 과정이 나오거든요. 그러면서 옛날을 다시 상기하는 거죠.

김수현 기자 : 그거 한번 읽어봐 주세요.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던 어느 날.

이병희 아나운서 :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던 어느 날 그는 오랜만에 계단을 다시 올랐다. 숨이 차고 땀이 났다. 겉옷을 벗고 몇 번인가 쉬어가며 올라갔다. 사무실에 들어서서 습관처럼 창문 앞에 섰다. 헐떡이는 숨결에 맑게 닦아둔 창문이 흐려졌다. 창문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창문은 더 흐려졌다. 그때마다 창문을 손으로 훔쳐냈지만 이내 숨결에 다시 흐려졌다. 그러다 창문들로부터 조금씩 떨어져 보았다. 멍하게 바라본 창문에는 흐릿하게 그가 있었다. 숨이 차 어깨를 오르락내리락하던 그가 서 있었다.

김수현 기자 : 그러니까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되는 거죠.

양정욱 작가 : 그런 사람의 이야기, 저 사람이에요. 그래서 화려하지만 저기 안에 들어가 있는 오브제들은 금방이라도 말이 유리창을 깨려고 하는 장면도 섞여 있고, 아슬아슬한 순간들도 많이 섞여 있어요. 그러나 겉으로 봤을 때는 전구를 유난히 많이 써서 유난히 화려하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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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문화전문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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