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동조" 논란 불거진 '尹 방어권 보장안'
전원위서 일부 수정해 의결…찬성 6명, 반대 4명
헌법재판관 출신 인권위원장 "국민 50% 가까이 헌재 불신"
비상계엄 인권침해 직권조사 안건은 기각…후폭풍
야당 의원들 "인권위 사망의 날…안건 쪼개기 의결"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2차 전원위원회에서 안건을 심의하고 있다. 이날 전원위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 등의 내용이 담긴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의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 상정됐다. 류영주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헌법재판소(헌재)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취지로 권고하는 안건(방어권 보장 권고안)을 10일 가결한 반면, 윤 대통령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으로 인한 인권 침해에 대한 직권조사 안건은 기각했다.
이번에 가결된 윤 대통령 방어권 보장 권고안은 인권위 내부에서조차 "내란 동조안"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와 두 차례 상정이 무산됐던 건이다. 해당 안건 작성을 주도한 김용원 인권위 상임위원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헌재가 대통령을 탄핵하면 국민이 헌재를 부숴야 한다'는 취지의 과격한 반(反)탄핵 주장을 노골화 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해왔던 헌재 헌법재판관 출신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결국 방어권 보장 권고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번 결과를 두고 인권위가 국민 인권은 뒤로 한 채 대통령 인권 보장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 것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야권에선 "인권위 사망의 날"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헌재 출신 인권위원장 "국민 50% 헌재 불신"…'尹 방어권 보장안' 찬성
인권위는 이날 열린 제2차 전원위원회에서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을 일부 수정해 가결했다. 가결안에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심리 시 형사소송에 준하는 엄격한 증거조사 실시 등 적법절차 원칙을 준수할 것 등을 헌재소장에게 권고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안 위원장을 포함한 강정혜·김용원·이충상·이한별·한석훈 위원 등 6명이 찬성했고, 김용직·남규선·소라미·원민경 위원 등 4명은 반대했다.법원과 수사기관에 12·3 비상계엄 선포 관련 피고인·피의자에 대한 불구속 재판·수사 원칙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는 내용도 가결안에 담겼다.
특히 안 위원장은 표결을 앞두고 윤 대통령 수사, 탄핵심판 상황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발언도 내놨는데, 윤 대통령 측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헌법재판관으로 활동한 안 위원장은 "국민의 50% 가까이가 헌재를 믿지 못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며 "이런 불신은 헌재 결정이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혼란을 종식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작동할 수 있고 새로운 인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 위원장은 또 "국가기관의 권력 행사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의심 받을 때는 그 권력 행사의 결과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자해와 국가 기관의 난입 등으로 인해 국민의 생명과 신체 안전에 위해가 되는 인권 문제가 야기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해왔다"고 말했다. 법원 폭동 사태의 책임이 1차적으로 수사기관과 법원에 있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2차 전원위원회에서 안건을 심의하고 있다. 이날 전원위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 등의 내용이 담긴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의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 상정됐다. 류영주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안건 작성을 주도한 김용원 상임위원은 최근 SNS에 올린 글에서 "헌재가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거슬러 대통령을 탄핵 한다면 국민은 헌재를 두들겨 부수어 흔적도 남김없이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해 시민단체에 의해 내란선동 혐의로 경찰에 고발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실상 침묵해 오던 안 위원장은 결국 인권위 안팎의 거센 안건 폐기 요구 속에서도 이번 가결안을 도출해냈다. 윤 대통령 방어권 보장 권고안이 진통 끝에 가결되자, 오전부터 서울 중구 인권위 건물 내외부를 점거했던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윤석열", "탄핵 무효" 등을 반복해서 외쳤다.
일부 강경 지지자들은 취재진을 비롯한 방문객들에게 신분 확인을 요구하며 '자경단' 행세까지 했다. 한 지지자는 미국 마블 영화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하고 방패를 든 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을 언급하며 "엘리베이터를 하나씩 막고 못 들어오게 하자"고 외쳤다. 한 유튜버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던 한 남성에게 "우파 시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거나 "김일성 개XX"를 말해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김용원 국가인권위위원회 상임위원이 1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에서 열린 제2차 전원위원회에 참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전원위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 등의 내용이 담긴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의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 상정됐다. 류영주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계엄 인권침해 직권조사'는 기각…"인권위 사망의 날" 규탄
같은 날 전원위에 재상정된 '대통령의 헌정 질서 파괴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인권위 직권조사 및 의견 표명의 건'은 표결 없이 기각됐다."계엄 선포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는지 조사해야 한다"는 요구와 맞물려 해당 안건은 지난해 12월 9일 열린 제23차 전원위원회에서 논의됐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고, 같은 달 23일 다시 논의됐으나 당시 안 위원장은 남규선·원민경·소라미 등 3명의 위원이 찬성 의사를 밝힌 가운데 반대 의견을 묻지도 않은 채 기각시켰다.
윤 대통령 등 내란 혐의를 받는 이들에 대한 방어권 보장을 헌재와 법원, 수사기관에 권고한다는 내용의 안건은 가결된 반면, 12·3 비상계엄으로 야기된 국민 인권 침해 조사 안건은 기각되면서 그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전원위를 방청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서미화 의원과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은 "오늘은 인권위 사망의 날"이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고 의원은 "인권위는 인권 탄압이 있는 곳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여야 하지만, 오히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대통령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결정을 했다"고 비판했다. 신 의원도 "(전원위 회의) 마지막에 안건을 쪼개 흥정하는 모습은 최소한의 품격과 절차도 준수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인권위지부 역시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인권위 전원위에서 대통령 윤석열을 비롯한 내란 동조 세력을 구하기 위한 내용을 통과시킨 국가인권위원들의 폭거에 분노한다"고 규탄했다.
총 36개 인권 관련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인권위 바로잡기 공동행동'은 11일 오전 10시 인권위 정문 앞에서 '12·3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인권위 집단진정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이들은 "헌법과 국제인권법 위반 비상계엄 선포, 모든 시민이 인권침해 피해자"라며 이번 비상계엄으로 인권을 침해받은 약 350명의 시민을 대리해 인권위에 집단진정과 정책 권고를 제기할 계획이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 이메일 : jebo@cbs.co.kr
- 카카오톡 : @노컷뉴스
- 사이트 : https://url.kr/b71afn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