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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 (일)

“증거 없으면 죽어서도 억울”… 故오요안나 유서, 증거로 인정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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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석·이가영의 사건노트]

[김우석·이가영의 사건노트]는 부장검사 출신 김우석 변호사가 핫이슈 사건을 법률적으로 풀어주고, 이와 관련된 수사와 재판 실무를 알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작년 9월 사망한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씨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유서와 통화 내용 등을 바탕으로 유족이 동료직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은 ‘고인이 특정 동료의 빈번한 비난, 폭언, 인격적 모독과 부당한 지시 등으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유족 측은 고인이 MBC 관계자에게 직장 괴롭힘 피해를 알렸으나 적절한 조치가 없었다는 입장이고, MBC는 “고인이 고충을 담당 부서에 알린 적 없었다”고 했다.

MBC는 고인의 사망 원인과 진실 규명을 위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유족이 주장하는 고인의 억울함을 법은 풀어줄 수 있을까?

◇피해자 사망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증거 부족’으로 처벌 못 할 수도?

Q. 2019년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근로기준법에 신설된 후에도 피해를 겪었다는 이들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법률상 금지되는 ‘직장 내 괴롭힘’은 무엇을 말하나요?

A. 직장에서의 ‘우월적 지위‧관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Q. 숨진 사람이 생전에 직장 괴롭힘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이를 부인한다면 법정에서 ‘직장 괴롭힘이 있었다’고 인정될 수 있을까요?

A.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어려운 싸움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의 주장을 반박하고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적 책임을 물으려면, 우선 사실을 확정해야 합니다. 법원과 검찰은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를 종합해 진실을 판단합니다. 판‧검사는 신이 아니고, 피해 상황을 본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피해를 제대로 주장‧입증하지 못하면 진실도 가려집니다. ‘증거 부족’으로 무혐의 처분되거나, 손해배상 청구가 기각되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피해를 주장하고 입증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가해자와 싸울 사람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게다가 직장 내 괴롭힘은 ‘업무상의 적정 범위를 넘어서’ 괴롭혔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합니다. 업무라는 것이 본래도 편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업무적으로 괴로웠다고 하더라도 적정 범위 내라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당하게’ 괴롭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게 어렵습니다. 구체적 상황에 따라 ‘정당한 질책‧지시‧지도였다’고 판단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면 피해자는 죽어서도 억울할 수 있는 거죠.

◇“증거 없으면 피해자는 죽어서도 억울하다”… 고인의 유서, 증거로 인정받을까?

2022년 11월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할 당시 오요안나씨 모습.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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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피해자가 죽어서도 억울하다면 안타까운 현실이고 법이 너무 야속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직장 괴롭힘 피해를 당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A. 그래서 아무리 힘들더라도 극단적 선택을 하기보다는, 죽을 각오를 갖고 굳세게 가해자와 싸우시기를 권합니다.

직장 괴롭힘의 형태가 명예훼손, 모욕, 강요, 성범죄, 폭력 등 범죄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는 형사처벌 사안으로, 경찰에 고소 또는 신고하면 됩니다. 다만, 피해 사실을 제대로 입증해야 하므로 충분한 법적 조언을 받아 증거를 수집하는 등 소송 전략이 필요합니다.

또한, 사용자에게 직장 괴롭힘 피해를 신고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는 피해 여부를 조사해야 하고, 가해자와 분리하는 등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피해 신고를 한 사람에게 해고 등 불리한 처우가 금지됨은 물론입니다.

Q. 오요안나씨의 유족들은 휴대전화에 남아있는 유서와 카카오톡 대화, 통화 내역 등을 증거로 제출한 듯합니다. 이 정도면 직장 괴롭힘이 입증될까요?

A. 가해자로 지목된 측에서는 유족들이 제출한 증거의 맥락, 의미, 전후 사정에 관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주장을 하면서 괴롭히지 않았다고 반박할 것입니다. 이를 재반박하는 것에 성공해야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습니다.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고인이 세상에 없으니 유족으로서는 고인으로부터 피해 사실을 전해 들었던 지인들의 증언까지도 모아서 증거로 제출하는 등 전력을 다해야겠지요.

◇직장 괴롭힘 피해 알고도 묵인했다면, 과태료? 징역형?

작년 9월 사망한 MBC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 /오씨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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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인이 MBC 내부 관계자 4명에게 괴롭힘을 당해서 힘들다고 전달했다고 하는데요. MBC는 “조사할 이유가 있어야 조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A. 직장 괴롭힘 피해를 전달받았다는 MBC 관계자의 직책과 담당 업무가 중요합니다. 부서장이나 인사‧징계 담당자 등 직장 괴롭힘 피해를 신고받아 조치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피해 사실을 전달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직책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다면, 책임을 묻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단순히 힘들다는 호소가 아니라 직장 괴롭힘으로 조사할 만한 피해 사실을 알렸어야 하는데, 이 또한 입증의 영역이어서 유족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Q. 만약 사측에서 직장 괴롭힘 피해 신고를 받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원치 않는 보직으로 피해자를 전보시키는 등의 불이익 조처를 했다면, 이 사측 관계자를 처벌할 수도 있나요?

A. 근로기준법은 직장 괴롭힘 피해 신고를 한 사람에게 불이익한 조처를 했다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보직으로 전보시킨 대표이사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사례도 있습니다.

Q. 기상 캐스터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는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프리랜서에게도 적용될까요?

A. 원칙적으로 프리랜서는 근로자가 아니라 사업자입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상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관리를 받으며 업무 시간, 장소, 방법에 대해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고, 고정된 월급 형태로 보수를 받았다면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적용될 것입니다. 대법원은 프리랜서 아나운서에게 근로자 지위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법원은 사측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근로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폭넓게 근로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더 큰 피해를 막아야 할 것입니다.

조선일보

김우석 법무법인 명진 대표 변호사. /조선일보DB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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