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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5 (수)

[칼럼]극우들 부상에서 확인된 전체주의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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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인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여 탄핵무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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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가수 양병집은 <양병집의 넋두리>라는 앨범을 내놨다. 이 앨범엔 '거꾸로'라는 뜻의 "역(逆)"이라는 노래가 있다. "산에서 낚시를 한다느니, 비행기가 물속으로 난다느니, 자동차가 두 바퀴로 간다느니…", 황당한 가사이지만 엄혹한 유신시절의 군사독재를 풍자하는 것처럼 들렸다.

12.3 계엄폭동 이후, 극우보수 정당들은 동네거리 여기저기마다 플래카드를 마구 내걸었다. 그 내용들을 보면 장탄식이 쏟아지지 않을 수 없다. "탄핵이 내란이다", "서부지법 폭동이 광주민주화 운동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 체포됐다"는 구호들이다.

'비행기가 물속으로 난다'는 노랫말은 '문학적 해학'과 상상력을 키운다. 그런데 '탄핵이 곧 내란"이라는 표어는 참과 거짓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뜨린 것이다. 지난 50여년 간 대한민국에서 사실과 허구의 차이와 참과 거짓의 차이를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세력들이 왜 이렇게 양산된 걸까.

현직 대통령의 친위쿠데타는 아직도 트라우마적 충격을 준다. 모골이 송연하다는 표현보다 더 적절한 언어를 찾기 힘들다. 비상계엄은 연쇄적인 폭력을 수반했다. 계엄부터 40여일 지난 시점에 또다른 충격적 사건이 터지는데, 1.19 서울서부지법 폭동사태이다. 해방 이후 사법부가 폭도들에게 침탈당한 일은 처음이라고 하니, 이성과 합리성을 토대로 한 법치국가의 국체가 위태로운 지경이다. 금방 금이 쩍쩍 벌어질 것같은 사기그릇을 연상시킨다.

지난달 21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탄 법무부 호송차량이 대통령경호처 호송을 받으며 헌법재판소로 출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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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독재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천지개벽할 정도로 발전했다. 비록 보수와 진보가 격렬한 정치투쟁을 했지만 양 세력사이에서 극우가 발 디딜 땅은 넓지 않았다. 성조기와 태극기를 든 한 무리의 극우세력이 존재했어도 그들의 폭동까지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사회학자인 중앙대학교의 신진욱 교수조차 "정치사회학자로서 이런 사태를 예견하지 못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50대에 접어들면서 그동안의 연구를 정리하려 했는데, 다시 새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12.3 이후의 사회학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1.19 법원 폭동에서 주목할 점은 젊은 극우세력의 부상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들 가운데 자리잡기 시작한 '전체주의의 망령'이 그 본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흔히 전체주의하면, 우리는 나치의 아우슈비츠나 소련 공산당의 죽음의 강제 수용소만 떠올린다. 그러나 당혹스럽게도 이것들은 기나긴 과정의 최종 단계일 뿐이다. 골수 나치나 골수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대중들이 사실과 허구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정치적 선동에 의해 맹목적 믿음에 빠질 때부터 전체주의는 작동하기 시작한다.

지난달 19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격앙된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해 시설물 등을 파손하며 폭동을 일으킨 가운데 20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 파손된 외벽이 보이고 있다. 류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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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는 독재보다 위험하다. 독재는 지도자가 '공포'를 동원해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제약하지만, 전체주의는 대중 속에서 개인의 영혼이 집단의 영혼에 완전히 잠식당한다. 개인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독재국가에선 '독재 투쟁'이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전체주의 사회에서 대중은 우매한 폭력집단밖에 되지 않는다. 선동된 대중들은 스스로 대중의 균일화를 이룩하려고 한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적 이해관계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게 된다.

서부지법 폭동이 공포스러웠던 이유는 우리 사회의 그늘진 커튼 뒤에 '전체주의의 망령'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똑똑하게 알려줬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주류세력이 된 극우 보수세력은 그 '망령'을 깨웠다. 그들은 판사를 잡겠다고 날뛰었다. 민주주의이고, 규칙이고 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다른 의견에 대한 비관용, 유사-법적 세뇌와 선전에 대한 뚜렷한 취약성을 드러낸, 전체주의 망령에 물들은 일군의 폭력은 치명적인 가스나 다름없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윤석열 대통령의 일반 접견이 가능해진 지난달 31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지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류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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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너무나 많은 거짓선동을 한다. 어쩌면 그는 남을 속이느라 자신을 잃어버린 인간 유형에 속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계몽령, 경고성 계엄, 2시간짜리 내란' 등 그의 언어는 몹시 사기적이다. 그러나 탄핵 뒤에 오게 될 온갖 종류의 위기를 직감한 극우보수세력은 그가 영리하다고 선동한다. 자신들의 지도자가 저지른 조작과 기만을 보여주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조차도, "결국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는 일이다"는 말로 치장하고 만다. 그러므로 망령은 공포스럽다.

윤석열 정부에서 그 판이 바뀌었다. 극우는 극우 대중자체로만 존재하지 못한다. 반드시 대중을 선동하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또한 그들이 암약할 수 있는 숙주도 존재해야 한다. 대통령을 탄생시킨 정치세력이 극우기생 세력의 숙주노릇이나 하는 현실이 너무 아프다. 극우들의 전체주의 망령을 잘못 다룰 경우 나라가 불탈 수 있다는 사실을 1.19 서부지법 폭동사태가 리얼하게 보여줬다. 그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제거할 수 없는 요지부동의 이물질이다. 무엇이 더 증명하는가.

극단과 타협하거나 이용하는 정치를 당장 그만두기를 정치권에 간곡하고 정중하게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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