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의 현장 군함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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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하시마(군함도) 탄광을 포함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했던 약속을 이행하는 데 여전히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다시 한번 확인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이하 위원회)는 31일(현지시간) 일본이 제출한 메이지산업혁명 유산 관련 후속조치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은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증언 등을 전시해달라는 등의 한국의 요구사항은 무시하면서 오히려 한일 강제병합이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전시를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은 일본 내 8개 현에 걸쳐 있는 메이지 시대의 철강·조선·탄광 산업 현장으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군함도로 불리는 하시마섬 등 많은 곳들이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돼 일했던 곳이어서 등재 과정에서 한국 등 주변국의 반발을 샀다. 일본은 이를 감안해 희생자들을 기리는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유산 현장이 아닌 도쿄에 만들었고, 전시물에 조선인 차별이나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각하지 않아 역사를 왜곡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을 비롯한 회원국들은 줄곧 일본의 약속 불이행을 비판하면서 후속 조치를 요구해왔다. 지난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 정부는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 증언 전시 △‘다수의 한국인 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 아래서 강제로 노역’한 전체 역사 설명 △일본이 지난해 9월 일방적으로 도쿄 센터에 설치한 한일 강제병합 합법성 전시물 즉각 철거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 증언 전시 및 진정한 추모 △나치의 강제동원 사실을 가감없이 드러낸 독일 졸페라인 탄광 전시와 같은 국제 모범사례 참고 등을 반영해달라고 일본에 요청했다. 당시 위원회는 유산 등재 후속 조치에 대해 관련국과 대화하고 약속 이행이 중요하다는 내용의 결정을 채택하고 일본에 추가 조치에 대한 진전사항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보고서는 그 결과로 나왔는데도 한국의 요구 사항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오히려 일본은 2020년 6월 도쿄 신주쿠에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에 “‘한국병합 재검토 국제회의’에서 국제법의 귄위자인 구미의 법학자로부터 일한병합조약은 당시의 국제법관행에 비춰 ‘무효’였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견해가 제시됐다”는 한일병합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전시물을 설치해 운영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의 증언’은 공개적으로 전시하지 않고 한국어 자료집 서가에 참고자료로 꽂아둔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은 그러면서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관련 공통 해석 설명 △해설사 역량 강화 훈련 △도쿄센터 개관일 확대 등을 ‘후속 조치’로 내세웠다. 이와 함께 △2차대전 당시·전후 가혹한 노동환경을 나타내는 1차 사료 수집을 위해 지역 박물관, 정부기관 등과 협업 △일본 정부의 징용정책 관련 1차 사료 전시 △한국인 등 광산 노동자의 봉급·복지 비교연구 지원 등의 간접적 조치를 취하는 데 그쳤다. 일본은 ‘의미 있는 대화’를 하자는 한국 측 요청에 대해선 “45차 세계유산위 이후 한국 정부와 대화를 지속해왔고 한국 정부와 해당 보고서의 해석 정책 설명을 포함한 대화를 지속할 의지가 있다”는 취지로 보고서에서 답했다.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을 내고 “세계유산위원회의 거듭된 결정과 일본 스스로 약속한 후속 조치들이 충실히 이행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다시 한번 유감을 표한다”면서 “정부는 일본이 국제사회에 스스로 약속한 바에 따라 관련 후속 조치를 조속히 성실하게 이행할 것을 재차 촉구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에 성실히 (우리와) 대화에 임할 것을 촉구할 것이고 정부 차원에서 앞으로 한일 양자뿐 아니라 유네스코 틀 내에서도 일본의 약속 불이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도광산에 이어 군함도까지 일본의 ‘강제동원’ 지우기가 계속되면서, 일본이 과거사 반성에 진정성이 없다는 점이 재확인됐다는 평가다. 특히 군함도 전시시설에 대한 일본의 후속조치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해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해준 것은 스스로 지렛대를 포기하는 행위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외교 당국이 일본의 결정에 동의해주면서 선의를 바랄 것이 아니라 향후 일본의 근대유산이 유네스코에 등재될 때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거나, 이미 등재된 세계유산의 폐지를 주장하는 등 더 강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등재 취소 제안'도 고려하냐는 취재진 물음에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여러 조치 다 검토해야 할 것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걸 하겠다고 말하긴 그렇다”며 말을 아꼈다. 세계유산위원회 규정상 등재 취소는 유산 자체가 훼손되거나 제대로 보전되지 않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이 앞으로도 계속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는다면 한국인 강제동원 역사가 있는 유산의 추가 등재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또 다른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아시오 광산과 구로베 댐에 대해서도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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