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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3 (월)

톱가수→노숙→재기 성공…'롤링 스톤스의 뮤즈' 메리앤 페이스풀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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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앤 페이스풀이 지난 2007년 3월 15일 프랑스 북부 샬롱앙샹파뉴에서 공연하는 모습. 2007.03.15 ⓒ AFP=뉴스1 ⓒ News1 김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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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스의 뮤즈'로 알려진 메리앤 페이스풀이 78세로 생을 마감했다.

31일 뉴스1에 따르면 페이스풀은 지난 30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사망했다. 페이스풀 대변인은 지난 30일(현지시간) "메리앤이 오늘 런던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며 "그가 정말로 그리울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스풀의 연인이었던 롤링 스톤스 멤버 믹 재거는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그는 오랫동안 내 인생의 일부였다"고 추도했다.

페이스풀은 1960년대 영국 음악계를 풍미한 싱어송라이터다. 1946년에 태어난 페이스풀은 1964년 영국의 록 밴드 롤링 스톤스 매니저인 앤드루 루그 올드햄이 영입해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올드햄을 통해 알게 된 재거와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가 작곡한 '눈물이 흐르면서'(As Tears Go By)를 불러 유명세를 끌었다. 이후 '이 작은 새'(This Little Bird), '여름밤'(Summer Nights), '루시 조던의 발라드'(The Ballad of Lucy Jordan) 등을 발표했다.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과 '오토바이를 탄 소녀'(The Girl on a Motorcycle)에 출연하는 등 여러 영화나 연극 작품에도 출연했다.

페이스풀은 가수로선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랐으나 마약 중독과 노숙 등 어두운 사생활로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19살부터 재거와 동거했다. 하지만 재거의 여성 편력으로 관계가 오래가지 못했다. 페이스풀은 재거의 아이를 유산한 이후 재거와 1970년 이별했다. 롤링 스톤스는 마약과 음주, 기물파손, 폭력 등 구설수에 휘말렸고 페이스풀도 논란이 됐다.

페이스풀은 1967년 경찰 단속에서 마약에 취한 채 모피 깔개만 걸친 채 발견되기도 했다. 재거와 이별한 뒤 페이스풀의 삶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고 런던에서 2년간 노숙 생활을 했다.

그는 1979년 앨범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를 발표해 재기에 성공해 1981년 그래미상을 받았다. 재즈와 블루스 가수로 전직해 1987년 '이상한 날씨'(Strange Weather)를 발표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다. 코로나19(COVID-19) 영향으로 목소리가 망가졌을 때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 눈길을 끌었다.

이재윤 기자 mt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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