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일본 작가 요시무라 아키라(1927~2006). 국내 첫 소개되는 그의 소설 ‘파선’은 코로나 팬데믹과 어울려 2020년 영화 ‘어둠 속의 불’(프랑스)로도 제작 개봉되었다. 신쵸샤(新潮社)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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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일본 작가가 있다. 소설가 요시무라 아키라(1927~2006)다. ‘전함무사시’ ‘가석방’ ‘파옥’ 등 숱한 소설을 통해 ‘기록·역사 문학의 대가’로 불리는바, 그가 신성시한 ‘팩트주의’와 함께다. “아키라만큼 사실을 고집하는 작가는 향후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문단의 평가대로다. 가령, 1973년 발표한 장편소설은 1923년 9월 ‘관동대지진’(関東大震災, 제목)의 진상과 더불어 조선인 6000명가량이 학살된 참극의 전말을 파헤친다. 작중 재해 발생 3시간 만에 “사회주의자들이 조선인과 협력해 방화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어 빠르게 ‘진실’로 둔갑하는 경위를 치밀한 취재·조사로 추적했으니, 사건 50년 만의 독보적인 문학적 성찰이었다.
국내 단 한 권 번역 소개된 책이 없으니, 그를 알 길이 드물었다. 이달 출간된 소설 ‘파선’이 한국어로 옮겨진 그의 첫 작품이다. 관동대지진의 내막만큼 소설은 기괴하고 서늘하다. 구성, 서술 따위 장치 효과가 아니다. 건조한 디테일의 덤덤한 나열로 그러하다. 실체를 신뢰하는 대신, 믿고 싶은 바를 맹신함으로써 갈가리 찢긴 이 시대, ‘파선’은 팩트로 가득한 지독한 우화 같다.
파선 - 뱃님 오시는 날 l 요시무라 아키라 지음, 송영경 옮김, 북로드, 1만5800원 |
일본 에도시대 어느 섬, 그 안에서도 고립된 어촌이 배경이다. 섬사람들의 가난을 재현하는 데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는지 주목할 만하다. 왜일까. 가난이나 불행, 인간의 실패를 ‘관념화’하지 않는다. “철들고 난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수사처럼 모호하지 않다. 작가는 ‘가난’을 실체화한다. 둘째, 환경과 -그로 인해 파생한- 믿음이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는가, 작가는 묻는 듯한데, 그 질문을 벼리기 위한 전제가 절박한 환경, 절실한 믿음의 구체적 형상이다.
“작은 집 열일곱 채가 바다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좁은 해안선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널빤지로 만든 벽은 바닷바람에 노출된 탓인지 전분을 뿌린 것처럼 새하얗다. (…) 아무리 거름을 줘도 모래와 자갈이 많은 땅이라 비옥해지지 않고 보잘것없는 작물만 자란다. 곡류는 조, 피, 수수뿐이다.”
가족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타지로 10년 노예 계약까지 맺어 하인으로 팔려간다. 3년짜리 고용하인으로 집 떠난 아버지로부터 “동생들을 굶기지 말라” 당부받은 맏아들 이사쿠가 9살부터 겪는 몇 년이 이 소설의 시간대다. 이사쿠를 때리는 덩치 큰 엄마를 두고 “무자비하게 자신을 때릴 때면 의지해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안도”하는 게 가난의 ‘실체’다. 그럼에도 셋째 동생 데루(딸)는 네살이 못되어 죽는 것이 또 가난의 ‘양상’이다.
한 시대와 공간을 실사한 듯 소설은 드러낸다. 험준한 산세와 절벽으로 갇힌 바닷가 마을을 지탱해주는 건 조상 대대로 다져온 ‘믿음’이란 실상. 굶을지언정 다른 오지처럼 갓난아기를 부러 죽이진 않는다. 죽은 선대의 영혼이 새 생명을 받아 돌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영생과 공동체를 희구하는 거룩한 믿음인가. 막상 ‘지옥’과 ‘불귀’에 관한 공포가 배면에 아른댄다. 이 오지를 그 누구도 벗어나지 않는 이유다.
‘믿음’은 마을의 엄격한 풍습과 질서, 위계로 현현한다. 3월 풍어제가 대표적이다. 임산부를 배 태워 알몸을 바다에 내보인다. 자연만이 그들에게 저주이자 축복이므로, 모든 생활양식은 자연의 시간표에 따른다. 하지만 누군가 또 죽고, 노예로 나간다. 마을엔 웃음이 없다. “쌀에 맛을 들이면 천벌을 받”는다 믿고, 게으름을 죄악시하며 경쟁하듯 물고기를 잡아 내 팔지언정 풍족한 적 없고, 겨울은 늘 처절한 사투다.
북서풍 불고 “산이 붉게 물”드는 매해 초가을께 또 다른 의식이 엄수되는 까닭이다. 대대로 이어져 온 ‘뱃님 방문 기원 의식’이다. 임신한 여성이 이번엔 촌장 앞 잘 차려둔 밥상을 걷어찬다. ‘뱃님’은 암초 많은 이 마을 앞바다에서 좌초되는 배를 말한다. 수확한 곡식과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 화물선이다. 즉, 뱃님 의식은 집단의 정결한 염원이되, ‘좌초’를 외는 것이다. 이사쿠 기억에 부모며 마을 사람들 “뺨을 붉히며 치열을 다 드러낸 채 웃”던 게 3살께 초겨울이 마지막이질 않았는가. 다 ‘뱃님’ 덕이었다.
생존을 위한 무지렁이들의 지극한 기도요, 믿음인데 소설은 바야흐로 진짜 질문을 던진다. 좌초를 바랄 뿐인가. 아니다, 섬사람들은 겨울밤 내내 돌아가며 소금을 굽는다. 그 불빛으로 좌초된 배를 마을로 유인한다. 유인만 하는가. 아니다, 난파된 배로 몰려가 산 자들을 때려죽인다. 선체의 목재까지 다 털어오니 흡사 큰 벌레를 덮치는 개미떼가 된다. 소금 굽던 이사쿠에게도 드디어 두 번째 ‘뱃님’이 재림했으니 온 마을에 2~3년치 양식을 선사했다. 뱃사람 일곱이 죽긴 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선조들은 이들을 때려죽이기로 결정하셨고, 마을은 지금까지도 선조들의 결정을 따르고 있어.”
소설은 이사쿠가 경험한 세 번째 뱃님을 통해 마을을 덮친 뜻밖의 재앙으로 또 다른 반전을 도모한다. 단순한 인과응보의 구도를 넘어선다. 작중 내내 그래 왔듯, ‘부족주의’에 기반한 신앙 체계와 극단화를 디테일로 실증할 뿐이다. 급기야 “뱃님맞이는 이 마을에는 최고의 경사인 반면 이웃 마을을 비롯한 다른 땅에 사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극형을 받아 마땅한 악행”이라는 서술로, 풍요로운 2025년에도 어쩌다 목도되는 양상인지 그 까닭을 되묻게 한다. “이웃 마을은 같은 섬에 속해 있고 심지어 이 섬도 바다 건너 광활한 땅의 일부”라는데 말이다. 소설이 지금과 다른 건 하나 있다. 작중 세 번째 ‘뱃님’을 들여 재앙을 부른 마을의 촌장과 부촌장은 스스로 책임을 물어 마을을 떠나거나 목숨을 던진다.
오직 가능한 결론이 있다면 인간은 자연과 환경보다 ‘믿음’ 앞에서 처참해진다는 점이겠다. 기록·역사 문학과 서스펜스를 병치시킨 요시무라 아키라는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계기로 엔에이치케이(NHK)와 인터뷰한다. “관동대지진 때 가장 뒷맛이 나쁘다고 해야 할까, 곤란한 것은 유언비어가 퍼진 거예요. 이번엔 유언비어라는 것의 흔적은 없습니다. 단 하나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두려움이 드러나는 게 유언비어입니다.” 그렇게 배태된 믿음이 조선인을 죽였다. 자연보다 믿음이 가혹한 셈이다. 유튜브를 위시하여 도처에 넘쳐나는 ‘믿음’의 이 시대가, 내년 타계 20주기를 맞는 작가에겐 그야말로 ‘조롱’이 되고 말리라.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의 모습. 사진 오른쪽에 “야나기바시(후쿠오카)에서는 조선인이 집단 학살당했다”고 쓰여있다. 대한민국 국가기록사진 |
1973년 작품 ‘관동대지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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