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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1 (금)

관제사가 헬기에 “여객기 뒤로 가라”… 몇 초 뒤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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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명 탑승 美 여객기·헬기 참사

美 워싱턴 여객기·헬기 충돌 - 29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로널드 레이건 공항 인근 상공에선 64명이 탑승한 아메리칸항공 여객기가 훈련 중이던 군 헬기와 충돌해 강으로 추락했다. 구조 당국은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28구의 시신을 수습했으며 생존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구조대가 부서진 기체에 접근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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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8시 48분(현지 시각)쯤 미국 워싱턴 DC 로널드 레이건 공항 인근 상공에서 여객기와 군 헬기가 충돌해 폭발한 뒤 강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두 항공기에는 총 67명이 탑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 당국은 사고 다음 날인 30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여객기에서 27구, 헬기에서 1구의 시신을 수습했다며 “밤새 수중 수색 작업을 했지만 생존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숀 더피 교통부 장관은 “여객기와 헬기 모두 평소와 같은 비행경로를 따르고 있었다”며 “충돌 사고는 일반적인 비행 패턴 속에서 발생했다”고 했다.

미 중부 캔자스주 위치토시(市)에서 이륙해 워싱턴을 향하던 사고 여객기(아메리칸항공 5342편)에는 승객 60명과 승무원 4명이 탑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승객 중에는 세계 피겨 선수권 우승자 출신으로 미국에서 피겨 코치로 활동하는 러시아 예브게니야 슈슈코바, 바딤 나우모프 부부도 타고 있었다. 러시아 언론은 이 부부의 아들 막심 나우모프도 함께 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막심은 20~26일 위치토에서 열린 피겨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부부는 아들의 경기를 관람하고 함께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 피겨스케이팅연맹은 사고 여객기에 이들뿐 아니라 연맹 소속 선수와 코치 등이 다수 탑승해 있었다고 밝혔다. 비행 훈련 중이던 군 헬기에는 군인 3명이 타고 있었다.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충돌 직후 폭발로 거대한 불꽃이 발생한 뒤 여객기와 헬기 기체가 포토맥강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확인된다. 구조 당국은 사고 당일 밤 기자회견을 열고 “300명 이상의 구조대원이 어둡고 매우 추운 환경에서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며 “강물이 차갑고 물속이 어두워 잠수사들의 작업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사고 당시 포토맥강의 수온은 섭씨 2도 수준이다. 미 언론은 이 같은 수온에 추락할 경우 15~30분 후 저체온증이 발생하며,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30~90분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레이건 공항은 미국 내 공항 중에서도 비행 편이 가장 많고 혼잡도가 제일 높은 곳으로 꼽힌다. 실제 사고 당시 영상에는 충돌 직전의 여객기와 헬기 외에도 근방에서 비행 중이던 또 다른 항공기 불빛이 포착됐다. 공항 옆에 국방부 청사(펜타곤)도 있어 일대에 각종 군용기의 비행도 잦은 편이다. 미 언론들은 “레이건 공항 상공은 미국에서 가장 복잡한 항로 중 한 곳”이라고 보도했다.

사고 여객기는 아메리칸항공과 서비스 계약을 맺은 PSA항공이 운영했다. PSA항공은 아메리칸항공의 지역 노선을 포함한 미국 내 단거리 항공편을 주로 운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사고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희생자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또 대응 요원들이 해내고 있는 놀라운 작업에 감사드린다”며 “추가 정보가 나오는 대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인성·이진영


사고 당시 군 헬기는 통상의 훈련 비행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기상이 양호하고 시야가 깨끗했던 상태라 미 언론은 사고 원인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블랙호크 기종은 창이 넓어 육안으로도 비행이 가능하다고 알려졌는데, 사고 영상을 보면 헬기가 여객기를 추돌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AP에 따르면, 공항으로 접근하던 사고 여객기는 약 122m 고도에서 시속 약 225㎞의 속도로 비행하다 급격하게 고도가 떨어졌다. 착륙 몇 분 전, 관제사는 이 항공기에 예정보다 짧은 활주로에 착륙이 가능한지 물었고 조종사들은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인성·이진영


이에 따라 관제사는 활주로 착륙을 승인했고, 비행 추적 데이터에서도 항공기가 새로운 활주로를 향해 접근 경로를 조정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사고 발생 30초 전에는 관제사가 블랙호크 조종사에게 착륙 중인 여객기를 확인했는지 문의하고 여객기 뒤로 지나가라고 했지만, 그로부터 몇 초 뒤 충돌이 일어났다. 여객기의 무선 송신기는 활주로에서 약 730m 떨어진 포토맥강 한가운데 상공에서 신호 전송을 멈췄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고 이전에도 민항기가 충돌을 가까스로 모면한 위기가 최근 1주일당 평균 여러 차례 발생하고 있었다면서 전국적인 인력 부족에 직면한 관제사의 실수를 주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어 “일부 관제사는 항공 안전망에 부담이 가중되면서 치명적인 충돌 사고를 피하기 어려워졌다는 우려를 오랫동안 제기해 왔다”고 전했다.

레이건 공항은 사고 직후 잠정 폐쇄됐다. 착륙 예정이던 다른 항공기들은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으로 우회했다. 미 언론은 이번 사고를 2009년 콜건 에어(Colgan Air) 여객기 사고 이후 미국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낸 민항기 사고로 꼽았다. 2009년 당시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뉴욕주 버펄로로 가던 여객기가 조종사 과실로 주택에 추락해 여객기에 탑승한 49명 전원과 주택 거주자 1명이 숨졌다.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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