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의 소지품을 곱게 챙긴 식당
저녁 장사 접고 북토크 온 지인들
일상속 아름다움을 실천하는 이들
모두가 삶의 스승임을 깨닫는 나날
새 시집을 가지고 새해부터 북토크 행사하러 뛰어다니고 있는 요즘이다. 첫 번째 북토크는 1월 중순, 서울 강서구에 있는 ‘다시서점’에서 열렸다. 그 서점 대표님을 나는 주저 없이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스승이라고 부르면 너무 무거우니까. 서울 서쪽 끝에 있는 작은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그분은 대관비나 참가비를 받지 않고 행사를 추진하셨다. 물론 책을 살 때는 책값을 지불해야 한다. 책과 문학이 좋아서 자신이 선택한 일로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이들은 존경할 만한 문학적 스승이다. 나보다 어려도.
김이듬 시인 |
문제는 그날 북토크 이후에 발생했다. 밤 10시쯤 서점 근처 식당에 가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식사했다. 출판사 대표님이 고기와 술을 사서. 자정 무렵 귀가해보니 목에 둘렀던 모직 머플러가 없었다. 내가 실수로 식당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온 것 같았다. 파리에서 열렸던 문학행사에 초청받아 갔을 때 프랑스 시인이 선물해준 귀한 물건이었다.
나는 이튿날 다시 식당으로 갔다. 찾을 수 없을지라도 찾으려는 노력은 해봐야지. 눈발이 쏟아져서 더 멀게 느껴졌다. 공항동 골목에 있는 그 식당에는 손님이 꽤 많았다. 불판 위에 돼지고기를 올리고 돌아서는 종업원에게 나는 머뭇머뭇 여쭈었다. “저는 어젯밤 여기 왔던 사람인데요. 혹시 두툼한 머플러 하나 보셨을까요?” 그는 커피 자판기 옆 선반 위에 놓여 있던 비닐봉지를 내게 내밀었다. “이거 맞죠? 주인이 찾으러 오길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가 싱겁게 웃었다. “고기 구울 때 연기가 많이 나니까 목도리에 냄새 밸 것 같아 비닐봉지로 봉해놨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내가 잃어버릴 뻔한 물건을 찾은 것만 해도 다행인데, 세심하게 보관해준 그 사람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윤리나 배려라는 말을 들먹이지 않아도 그 자체가 몸에 밴 이웃들.
포항 책방수북까지 차로 1시간 거리에 해숙 언니네 분식점이 있다. 김밥과 떡볶이, 특히 들깨칼국수가 유명해서 외지인들이 줄 서는 식당을 20여년째 혼자 해나가고 있는 분. 매일 저녁밥을 그 분식점에서 무료로 해결하는 동네 어르신들이 계신다. 내가 물었던 적 있다. “언니, 이렇게 남들 챙기면 돈은 언제 벌어요?” “걱정 마. 퍼주고 망한 장사는 없는 법이야.” 그 언니가 놀랍게도 북토크에 참석하셨다. 서둘러 저녁 장사 마치고 그 동네 요양보호사 언니와 공사장 일하는 아저씨와 함께. 난생처음 문학 행사라서 어색하고 신기하다며 어깨를 잔뜩 움츠리셨다. 책방수북 대표님이 그 세 사람을 귀빈석에 모시고 VVIP에게만 드린다는 도자기미술품을 선물하셨다. 만나는 모두가 내 스승이다. 나는 오며 가는 보통의 일상에서 경이롭고 눈물겹게 배움의 길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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