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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 담은 연극 '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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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참사의 생존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그린 연극 '유원'. 앤드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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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 힘들어요."

사회적 참사의 생존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그린 국립극단 기획초청 연극 '유원'(앤드씨어터 제작·연출 전윤환)이 관객을 맞고 있다.

어린 시절 불이 난 아파트 11층에서 떨어졌으나 길을 가던 이웃 아저씨 진석(윤일식)이 받아내 목숨을 건진 유원(강윤민지)은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압박에 시달린다. 사고 당일 유원을 이불에 말아 창밖으로 탈출시킨 언니는 결국 목숨을 잃었고, 진석은 유원을 받아낸 충격으로 장애를 얻었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유원은 늘 위축돼 있고, 삶이 망가진 진석은 수시로 유원을 찾는다.

사회적 압박은 유원의 어깨를 더 움츠러들게 한다. 친구들과 선생님, 동네 사람들은 유원을 늘 불쌍한 참사 생존자로 대하며 사회적 낙인을 찍어버린다.

'유원'은 참사의 윤리적 딜레마를 다룬다. 진석은 유원의 부모에게 돈을, 유원에게는 방송 프로그램에 같이 나갈 것을 요구하는 등 선을 넘지만 진석에게 부채 의식을 가진 가족들은 그를 밀어내지 못한다. 연극은 진석을 참사의 당사자도 아니면서 함부로 희생자들을 재단하고 괴롭히는 존재들과 분명히 구분한다.

'유원'은 무대 음향이 돋보이는 연극이다. 유원과 수현이 선 옥상에서 불꽃놀이 폭죽이 터지는 소리, 암전 속에서 울려퍼지는 진석의 기침 소리 등 강렬한 음향이 인물의 상황과 심리를 선명하게 전달한다.

철든 이후로 늘 참사 생존자라는 멍에를 쓰고 살았던 10대 소녀의 위축된 심리를 묘사하는 강윤민지 배우와, 또 다른 희생자로서 분노와 고독, 일그러진 욕망을 품은 중년 남성을 표현하는 윤일식 배우의 연기가 압권이다. 2월 2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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