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 번역가. 본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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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세계 감염병 전문가들이 조류인플루엔자(조류독감·H5N1)의 인체 감염에 대해 논의 중이다. 지금 보고된 사례들은 언제라도 조류인플루엔자 인체 감염 대유행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지영미 질병관리청장, 1월21일 기자간담회)
감염병 전문가들이 ‘조류독감’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사람이 조류독감에 걸리는 횟수가 잦아지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국내에는 인체 감염 사례가 없지만 미국 등에서는 조류독감에 감염돼 목숨을 잃는 경우가 나온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다음 팬데믹이 온다면 조류독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뉴질랜드 출신 바이러스 전문가 로버트 웹스터가 쓴 책 ‘조류독감이 온다’(원제: Flu Hunter)가 이달 초 국내에서 출판됐다. 조류독감을 중심으로 독감 바이러스의 기원과 전개 양상을 파헤친 저자의 연구 여정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이 책을 번역한 강병철 번역가는 소아과 전문의이자 출판사 ‘꿈꿀자유’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17년 감염병 시리즈 첫번째로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번역해 출간했다.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는 그와 지난 21일 전화로 인터뷰하며 조류독감 팬데믹 가능성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봤다.
―조류독감은 어떤 과정으로 확산됐나?
“1959년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됐을 땐 별 것 아니었다. 닭이 가끔 걸리는 정도였는데, 30년 만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1990년대 중반부터는 닭이든 오리든 감염되면 거의 죽었다.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된 거다. 그래도 인간이 걸리는 병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1997년 홍콩에서 처음 사람 환자가 나왔고, 2003년 겨울부터 바이러스가 중국을 벗어나서 전세계로 확산됐다.”
―인간은 어떻게 감염됐나?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처음엔 다소 온순했는데 갑자기 공격적인 바이러스로 변했다. 그 이면엔 집약적 축산이라는 고리가 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주로 오리·돼지의 몸 속에서 변한다. 2008년엔 돼지독감(H1N2)이 유행했을 때 돼지 몸 속에서 몇개의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만나 유전자를 교환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수많은 조합이 생겼는데 그 중 어떤 조합이 인간을 침범하는 바이러스로 태어난 것이다. 돼지독감은 비교적 가벼운 팬데믹이었지만 그래도 30만명이 사망했다.”
―인간 감염이 더 심해졌나?
“지난해부터 젖소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조류독감에 감염된 젖소가 129마리였는데 올해 1월 875마리가 됐다. 젖소는 포유류인데, 조사를 해보니 이미 고양이, 쥐, 너구리, 스컹크, 여우, 퓨마 등 포유류 동물이 다수 감염돼있었다. 고양이는 우리가 집에서 키우지 않나. 사람과 밀접하다. 조류독감이 바로 우리 옆에 와 있는 것이다. 젖소들이 많이 걸리니까 젖소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감염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사람 환자가 60여명 나왔는데 대부분 젖소 농장 노동자들이다.”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은?
“우리가 제일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바이러스가 인간에서 인간으로 넘어가는지 여부다. 만약에 인간에서 인간으로 감염되면 팬데믹이 시작되는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아직 그런 증거는 없다.”
―사람이 감염되면 어느 정도 위험한가?
“1997년부터 지금까지 조류독감에 감염된 사람의 치사율이 30~50%였다. 코로나19 치사율이 1~10%인 것에 비하면 매우 치명적이다. 지난해 내가 사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서는 13살 아이가 걸렸는데 20일간 중환자실에 입원해있었다. 그 뒤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감염된 60대는 사망했다. 사람이 걸리면 매우 위험하다는 건 거의 확실하다.”
지난 1월1일 국내 출간된 책 <조류독감이 온다> |
―우리나라는 안전한가?
“지난해 닭이나 오리에서 발생한 조류독감이 20차례 넘었다. 우리나라도 결코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필요 이상으로 불안해할 건 없지만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예방 대책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당장 조류독감 유행이 닥친다고 하면 현실적으로 타미플루를 먹고 낫기를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 코로나19 때 경험을 잘 살려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확산을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백신 개발을 기다려야 한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보면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이 팬데믹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동물과 인간이 지나치게 자주 접촉해서는 곤란하다. 자꾸 숲을 없애니 동물들이 인간의 마을로 내려온다. 그러면 동물의 병원체가 우리한테 넘어올 수 있고 우리의 병원체가 동물한테 넘어갈 수도 있다. 팬데믹의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기후변화도 팬데믹에 영향을 주나?
“동물의 서식지와 먹이가 줄어드는 것 말고도 날씨가 더워지면서 곤충 번식이 늘어나고 있다. 예컨대 진드기는 더운 지방에만 살았는데 점점 북쪽으로 올라가더니 2000년대 초반에는 스칸디나비아 지방까지 갔다. 지난해 여름에 우리 집 앞마당 나무 잎사귀에서 진드기 8마리가 일렬로 서 있는 걸 보고 소름이 끼쳤다. 이처럼 곤충 매개 질환이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환자도 많이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이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까?
“우리가 초래한 기후위기의 업보를 팬데믹이라는 이름으로 받게 되는 일이 앞으로 자주 생길 것이다. 기후위기는 시민이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우리가 불편을 감수하고 전반적인 정책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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