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경북 울진 소광리 안일왕산(해발 819m) 꼭대기에 있는 600년 된 ‘대왕소나무’의 모습. 뒤에 푸른 잎의 금강소나무와 달리 나뭇잎과 가지들이 잿빛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고사 징후를 보이며 갈변한 금강소나무는 이날 “사실상 고사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윤연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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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경북 울진 소광리 안일왕산(해발 819m) 꼭대기에 오르자 절벽 가장자리에 뿌리를 박은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멀리서부터 보였다. 600살이나 된 나이에 웅장한 자태를 갖추고 있어 ‘대왕소나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사랑받는 금강소나무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설수록 점점 ‘대왕’답지 않은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지들은 생기 없는 잿빛이었고, 이미 갈색으로 변해 툭 치면 으스러질 것만 같은 나뭇잎들은 가지 위에 간신히 붙어 있었다. 땅속에 단단히 박혀있어야 할 거대한 뿌리는 땅 위로 고불거리며 드러나, 볼품없이 말라서 죽어가는 ‘대왕’의 마지막 숨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봤던, 초록 잎이 무성하고 빽빽하던 과거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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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무 앞에 선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대왕소나무는 사실상 죽었다”고 선고했다. 서 위원은 대왕소나무의 잔가지 끝을 가리키며 “생명 유지가 일부라도 되고 있다면 잎이 노랗거나 잎의 끝부분에라도 녹색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지금 여기가 다 회색”이라고 말했다. 울진 소광리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의 대표 금강소나무인 대왕소나무는 둘레 5m(지름 120㎝)에 높이 14m로, 생육환경이 좋지 않은 비탈면에 자리하고도 600년 이상 웅장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보전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고온과 폭염 등으로 줄곧 힘들어했고, 지난해 7월 말부터는 나뭇잎이 붉은 색을 보이며 조금씩 떨어지다가 최근 거의 다 떨어지고 나무 전체가 잿빛으로 물들며 ‘고사’ 징후를 보여왔다. 그러던 중 “사실상 사망” 진단이 나온 것이다.
다만 아직 산림청에서 공식적으로 ‘고사’ 판정을 내린 건 아니다. 현장을 함께 찾은 이진수 산림청 산림환경보호과 사무관은 “현재 외관상으로 거의 모든 잎이 갈변되었고, 상태가 많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겨울에는 나무 안에 수액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수액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올해 봄에 활력도 측정을 다시 해서 고사 여부를 판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5일 측정한 활력도는 84.2로, 건강 기준(76 이상)보다 조금 높게 나왔었다고 했다.
2021~2022년 사이 녹색연합이 찍은 대왕소나무의 모습. 건강했을 때의 모습인데도, 자세히 보면 조금씩 회색빛을 보이는 가지들을 확인할 수 있다. 녹색연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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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폭염이 있던 지난해 12월, 위에서 내려다 본 대왕소나무 모습. 지난해 7월부터 고사 징후를 보이더니, 정수리부터 잎이 떨어지고 가지들이 하얗게 변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녹색연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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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더웠던 지난해의 폭염으로 죽어간 금강소나무는 대왕소나무뿐만이 아니다. 서 위원은 “10년 전부터 이 지역에 나무들의 집단 고사가 계속 나타났는데 똑같은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왕소나무 주변에도 7그루의 금강소나무가 붉게 변해 죽어 있었다. 이날 안일왕산에서 직선거리 4㎞ 떨어진 금강소나무 군락지(해발 680m)에 가보니, 이미 죽어 하얗게 변한 나무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적게는 3∼5그루, 많게는 8∼10그루의 나무들이 무리 지어 새하얗게 변해 있었는데, 이미 죽은 지 몇 년이 된 나무들이었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150살이 넘는 20m 높이에 둘레 2.5m(지름 80㎝) 크기의 나무들 몸통 껍질이 속이 훤히 보일 만큼 갈라지고 찢겨 있었다. 일부는 나무의 몸통이 부러지거나 쓰러져 있기도 했다. 울진 소광리와 물리적으로 단일한 산림지역인 삼척 풍곡리 일대에서도 최소 7개 지역에서 20그루 이상의 소나무가 집단 고사했다고 한다.
산림청은 이런 금강소나무의 집단 고사가 기후변화로 겨울철 수분 부족, 이상고온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수분 스트레스’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수분 스트레스는 식물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수분과 대기로 분출하는 수분의 균형이 깨졌을 때 발생한다. 이상고온 현상으로 겨울에도 눈이 많이 오지 않거나 오래 지속되지 않아 수분이 부족해지면, 나무의 광합성량이 떨어지고 호흡량이 늘어나 체내 수분을 잃고 생장량이 감소하게 된다. 나무가 자라나는 힘인 ‘수세’가 약해진 결과 말라죽게 되는 것이다. 서 위원은 어린 나무보다 나이 많은 나무가, 남서사면이나 해발고도가 높은 능선부, 산림 내 토양이 척박한 곳에 있는 나무들이 수분 스트레스에 훨씬 더 취약하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경북 울진 소광리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일대 금강소나무 군락지에서 이미 고사한지 3년 정도 지난 금강소나무들이 하얗게 변해 썩은 몸통에서 껍질이 떨어진 모습. 윤연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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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울진 소광리와 단일한 산림지역인 삼척 풍곡리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일대에서 발견된 금강소나무 십여그루가 갈변하고 있는 모습을 드론으로 촬영한 사진. 녹색연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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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소나무의 집단 고사 현상은 이미 10년 전부터 발생했지만, 최근 들어 그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는 추세다. 이 사무관은 “울진 금강소나무 숲에서 집단 고사 현상을 처음 발견한 건 2014년께부터”라며, “2022년 기준으로 울진과 봉화에 있는 총 5개 면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을 때엔 누적 6천여 그루가 고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2020년 기준으론 4934 그루가 고사했었는데, 2년 사이 고사한 나무가 1천여 그루나 늘어난 것이다. 녹색연합은 “지난해 가을 기준으론 최소 1만 그루 이상이 고사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대왕소나무의 죽음은 비극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금강소나무가 집단으로 말라죽고 있는 곳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등 한반도의 핵심 생태축이다. 조선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울진·삼척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일대의 금강소나무를 국가가 직접 관리해온 배경이다. 이곳 금강소나무는 줄기가 곧고 재질이 우수해 남대문 등 국보급 문화재 복원 등에도 사용된다. 서 위원은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보전 가치가 가장 높은 생물다양성의 거점”이라고 말했다. 소광리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은 3705헥타르 규모로, 전체 29만여 그루의 금강소나무를 보호하고 있으며 이중 200살 이상 된 나무가 8만5천여 그루다.
지난 22일 경북 울진 소광리의 안일왕산(해발 819m) 꼭대기에 있는 600년 된 대왕소나무 모습. 녹색연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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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기후변화 스트레스로 죽어가는 금강소나무의 모습이 앞서 한라산과 지리산 일대에서 이상 고온 때문에 대규모로 죽어간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등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고 경고한다. 서 위원은 “지금 죽어가는 것에 대해서 정밀한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죽어가는 양상, 집단 고사의 모습, 한 개체가 죽어가는 시간 등에 대한 정밀한 기록과 관찰을 바탕으로 어떤 지침을 만들어야 또 다른 피해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고사 현상이 더 전면화되어 빠르게 진행될 경우, 기존에 없던 아예 다른 변화가 찾아올 개연성도 언급했다. 이 사무관은 “산림청도 이 같은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라 보고, 관련 대응 방안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산림청은 대왕소나무 처럼 보존 가치가 높은 나무의 경우 사전에 정밀 진단을 한 뒤 유전자를 확보해 ‘ 후계목’을 조성하는 등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2023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소나무 관련 연구에서 “기후변화로 설악산국립공원과 치악산국립공원, 태백산국립공원의 현존 소나무 가운데 39~48%가 고사해 없어질 것”이라 분석한 바 있다.
울진/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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