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대응책 ①탄소중립 ②식량안보
체계적 탄소중립…식량안보는 '각개전투'
아열대 작물·어종, 재배·양식 등 연구 박차
자급률 49% "식량안보 컨트롤타워 필요"
제주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연구소에 설치된 온도구배하우스에서 마늘 종자 연구가 이뤄지는 모습. 제주=이유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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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대신 애플망고를 차례상에 올리고, 명태전 대신 벤자리전을 부쳐 제사를 지내는 풍경. 아직 상상하기 어렵지만 기후변화로 머잖아 우리 일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뜨거워진 땅과 바다에 국민 선호가 높은 과일, 어종 등이 이미 대한민국 영토를 떠나 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가능한 품종이 있어 식습관만 바꿔 해결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처럼 식량 수급 불안에 재정을 투입해 물가를 잡고, 할당관세 등 수입에 의존하는 단발성 대처론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
기후변화 대책은 크게 ①탄소중립 ②식량안보로 압축된다. 탄소중립은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 증가를 막기 위해 배출량을 줄이고, 흡수량을 높여 '0'으로 수렴시키는 걸 뜻한다. 기후변화를 완화 또는 지연하는 셈이다. 2015년 195개국이 파리협정을 채택,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아래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한국은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실제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5도 올랐다고 밝혔다. 일국의 노력만으론 탄소중립은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식량안보가 더 중요한 시점이다. 식량안보는 모든 사람이 건강한 삶을 영유하기 위한 충분하고 영양가 있는 먹거리를 물리적·경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기후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문가들도 "기후변화에 맞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고, 적응을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는 지금 '뉴노멀'에 얼마나 대비하고 있을까.
25년 후 남한 절반 아열대… 신품종·재배법 연구 박차
한현희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연구관이 지난달 12일 아열대과수 유전자원 수집·평가가 진행 중인 비닐하우스에서 용과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제주=이유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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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찾은 제주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기후변화 전문연구시설인 '온난화구배하우스(TGC)'에서 한창 자라는 남도, 단산 마늘 종자가 눈에 띈다. TGC는 외부 온도와 0~5도 차이가 나도록 조절할 수 있는데, 입구에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온도가 높아진다. 현재부터 기후변화에 따른 100년 뒤까지 작물의 생장을 한 공간에서 예측할 수 있다.
연구소는 이 같은 연구를 통해 기후에 맞는 품종, 이상 기상에 맞춘 재배법을 개발하고 있다. 이미 제주가 아열대 기후권1에 진입한 만큼, 아열대 작물 재배 준비도 한창이다. 기후변화 완화능력이 낮은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2050년 남한 경지면적 55.9%가 아열대 기후권에 들어선다. 연구소는 아열대 작물 58개를 도입, 유망 작물 17개2를 선발해 그중 적합한 품종을 보급하고 있다.
제주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서 연구 중인 파파야 유전자원. 연구소는 올해 자체 육종에 성공한 파파야 신품종을 등록할 예정이다. 제주=이유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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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망고가 대표적이다. 경제성이 좋아 제주를 중심으로 재배 농민이 늘고 있다. 최근엔 당도가 높아 생식용으로 활용 가능한 파파야 육종에 성공, 올해 등록 예정이다. 연구소가 아열대 작물 신품종을 자체 육성한 건 처음이다. 한현희 연구관은 "기후변화는 농업의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다"며 "사과, 배, 포도, 복숭아 등 재배적지는 북상해 언젠가 3·8선을 넘겠지만 감귤, 키위, 단감과 아열대 과수는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다만 고랭지 배추는 2100년이면 재배 가능 지역이 없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결국 온도가 한계 이상으로 올라갈 것을 대비해 고온에 강한 신품종을 만들거나, 그 자리를 아열대 작물로 채우는 수밖에 없다. 특히 과수는 채소와 달리 스마트팜 재배가 어렵다. 사과의 경우 높은 온도에 잘 견디는 '썸머킹' '골든볼' 등 신품종이 나왔다. 각각 초록, 노랑 빛깔이지만 당도와 산도가 뛰어나다. 한 연구관은 "식생활 변화가 쉽지 않겠지만 국민 인식과 농가 보급 확대가 과제"라고 짚었다.
친환경 양식 대안 떠올라… 해조블록으로 바다 숲 복원
제주 연안에 정착한 아열대 어종들. 시계방향 순으로 쏠배감펭, 나비고기, 흰동가리, 노랑가오리. 제주해양수산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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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자원 대비도 긴요하다. 2016년부터 연근해 어획량은 100만 톤을 밑돌고, 바다를 구성하는 해조류와 어종도 아열대화돼 가고 있다. 대안으론 어획에서 양식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고수온에 강한 품종을 개량하거나 아열대 어종을 도입하는 방안이 꼽힌다. 제주해양수산연구원은 2008년부터 연안 마을어장 생태환경과 수산자원 변화를 정기적으로 조사해 이 같은 기후변화 적응 방책을 모색하고 있다.
제주해양수산연구원 강봉조(오른쪽) 해양환경연구과장, 양병규 연구사가 지난달 12일 연구원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귀포=이유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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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리 등 아열대 어종 종자 방류, 양식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벤자리는 제주 남부에 주로 서식하다 최근 수온 상승으로 경남에서도 출현하고 있다. 국립수산연구원도 고수온 대응 품종으로 보고 산업화를 위한 가두리 시험 양식을 시작했다. 강봉조 해양환경연구과장은 "생태적 관점에선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식량자원 측면에서 우리가 어떻게 적응하느냐의 문제"라며 "기존 대중성 어종과 관련해서도 고등어 양식, 고수온에 강한 광어 품종 개량 등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제주해양수산연구원이 연안 마을어장에 설치한 해조생육블록에서 갈조류가 자라나고 있다. 제주해양수산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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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바다 숲을 복원하려는 노력 역시 병행하고 있다. 마을어장에 인위적 해조장(해조 군락)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연구원이 자체 개발한 '해조생육블록'이 대표적이다. 제주 바다의 70%가 석회조류 등 홍조류의 차지가 되면서 갈조류 군락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양병규 연구사는 "갈조류와 멸치류 같은 먹이 생물이 줄면 먹이사슬 상부 생물이 영향을 받아 기초 생산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부연했다. 1년간 추진한 결과 참모자반 군락이 안정적으로 형성됐고, 주변해역으로도 일부 확산된 것이 확인됐다.
절반 남짓 자급률, 밥상위기 '성큼'… "식량안보법 제정 시급"
그래픽=박구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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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과 바다에서 고군분투 중이나 전문가들은 식량안보 관련 거시적인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협약 이행 문제인 탄소중립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구심점이지만, 식량안보 컨트롤타워는 사실상 없다. 환경부 기후탄소정책실 산하 기후적응과가 농림축산식품부가 한시 신설한 농식품수급안정지원단, 해수부 어업정책과와 협업하는 정도다. 식량안보 외 업무도 겸해 단기 수급 불안 대응 역할이 주다. 탄소중립도 농식품부는 동물복지환경정책관실 농촌탄소중립정책과에서, 해수부는 기후환경국제전략팀에서 맡고 있다. 기후변화 의제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은 "기상 변동 폭이 커지면 정부는 항상 수급 관련 물가 안정, 농가 소득 피해 두 관점만 보는데 기후변화 적응 정책이라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각 식량 자원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얼마나 유지가 가능한지, 장기적으로 한계에 다다르면 자급·수입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할지, 그 경우 국민 식단과 농어업 구조는 어떤 형태로 바뀌어야 하고 지원 비용이 얼마나 필요할지 등 총체적 논의가 필요하단 뜻이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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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은 식량자급률이 낮아 신속 대응이 절실하다. 2023년 식량자급률은 49%, 곡물자급률은 22.2%로 감소세다. 식량안보지수(FSI)는 113개국 중 39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과잉 공급되는 쌀을 제외한 옥수수·밀·대두 등 주요 곡물 90% 이상을 수입하는 실정이다. 남재철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특임교수는 "대형마트에 가면 식품이 넘쳐나 식량위기를 체감 못하지만 원산지를 보라"며 "대부분 수입산으로 수출국 상황에 장바구니 물가가 뛴다"고 말했다.
이미 지난해 중국은 식용 곡물 100% 자급 목표로 '식량안보 보장법'을 제정했고, 일본은 식량공급을 안보 차원으로 격상해 '식료·농업·농촌 기본법'을 개정했다. 미국도 식량안보, 기후변화 대응을 강조하는 방향의 '농업법' 개정을 앞뒀다. 남 교수는 "자동차·반도체를 수출해 번 돈으로 식량을 싸게 수입해오는 정책이 40년 이어진 결과"라며 "식량안보법을 제정, 이를 근거로 한 컨트롤타워가 정책 지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① <1> 기후플레이션, 빈곤의 심화
- • "신선식품은 언감생심, 콩나물만 사요~"…'기후플레이션'은 평등하지 않다 [기후변화, 밥상의 위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0918210005080) - • '이상 기후' 수많은 경고음에도...60년 후 김장할 배추·무 못 키운다 [기후변화, 밥상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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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선식품은 언감생심, 콩나물만 사요~"…'기후플레이션'은 평등하지 않다 [기후변화, 밥상의 위기]
- ② <2> 땅과 바다를 포기한 농·어부
- • "감태 싹 죽어신디 소라가 살아지카"… 기후변화에 바다 떠나는 해녀·어부들 [기후변화, 밥상의 위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1213360002233) - • '북쪽으로 계속 이사할 수도 없고'...기후변화에 일터 떠밀리는 농민들 [기후변화, 밥상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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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태 싹 죽어신디 소라가 살아지카"… 기후변화에 바다 떠나는 해녀·어부들 [기후변화, 밥상의 위기]
- ③ <3> 기후위기와 세계식량
- • '쌀 적게 거둔 아시아·아몬드 크기 줄어든 미국'… 비어가는 세계 식탁 [기후변화, 밥상의 위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0910330001529) - • "진흙탕에 파종"… '유럽의 식탁' 프랑스 농부 '식량 위기' 걱정 [기후변화, 밥상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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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쌀 적게 거둔 아시아·아몬드 크기 줄어든 미국'… 비어가는 세계 식탁 [기후변화, 밥상의 위기]
- ④ <4> 뉴노멀 가능할까
- • 사과·배 38선 넘고, 그 자리엔 망고·파파야가..."식량안보법 제정 시급" [기후변화, 밥상의 위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1416420001715)
- • 사과·배 38선 넘고, 그 자리엔 망고·파파야가..."식량안보법 제정 시급" [기후변화, 밥상의 위기]
제주·서귀포·세종=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세종=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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