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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란 착각의 바다 속 따개비가 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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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알고리즘·AI 등

일상이 된 디지털 기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가들

‘필터 버블’에 갇힌 현대인

AI 생성 이미지 오류 그리기도

“불안감 갖고 구조적 문제 탐구”

송예환 ‘따개비들’(2025), 마분지 구조 위 프로젝션 매핑, 모터, 아두이노, 알루미늄 파이프, 3.5×3.5×4m 지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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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웹사이트, 코드, 데이터, 알고리즘, 인공지능(AI)…. 우리의 일상의 일부가 된 ‘디지털 세상’을 구성하는 토대가 되는 기술들이다. 디지털 기술이 일상을 지배하는 수준에 이르면서, 이를 이용하는 동시에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업들이 미술관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미술관으로 들어온 웹사이트


눈에 띄는 것은 송예환 작가다. 송예환은 웹디자이너로, 사용자를 소외시키고 플랫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획일적 웹디자인의 문법을 비틀며 이를 오프라인 전시장의 설치 작품으로 끌고 나와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두산아트랩 전시 참여 작가 5인 중 하나로 선정된 데 이어 제24회 송은미술대상 본선 참여 작가로 선정됐다. 오는 4월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적인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인 ‘젊은 모색’에 참여하는 15명의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지갤러리에서는 송예환의 개인전 ‘인터넷 따개비들(The Internet Barnacles)’가 열리고 있다. 그는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자른 마분지 조각을 정교하게 조립해 구조물을 만들고, 마분지 표면을 스크린 삼아 그 위에 영상을 투사하는 설치 작품을 주로 선보인다. 투사되는 영상은 송예환이 만든 웹사이트를 녹화한 것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따개비들’은 해안의 바위 위에 다닥다닥 붙어서 살아가는 따개비의 모습과 인터넷을 사용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연결한 작업이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웹 서핑을 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알고리즘에 의해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를 얻으며 고립된 상태로 존재합니다. 바위나 선박의 표면에 군집을 이루며 살아가는 따개비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서울 강남구 지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송예환의 ‘인터넷 따개비들’ 전시 전경. 지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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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오리(The Whirlpool)’는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일방적인 정보의 흐름과 소통 단절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높이 솟은 망루에서 정보가 떨어지면, 회오리를 타고 일방적으로 전달된다. 작은 스크린 속 사람들은 고립된 채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각자의 ‘필터 버블’에 갇혀 입맛에 맞는 편향된 정보만을 얻고, 그 결과 사회적 갈등이 확대되는 한국 사회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교한 구조물을 만들면서 마분지라는 취약한 재료를 이용한 점이 흥미롭다. 송예환은 “웹의 역사가 짧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기술 자체가 견고하지 않은 부분을 종이가 잘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웹디자인의 획일성에 대한 의문을 가진 것이 작업의 출발점이 됐다. 송예환은 “간단하고 빠른 사용자 편의적 디자인은 기업들이 사용자가 웹사이트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스와이핑, 터치 같은 제스처들이 습관적 사용과 중독적 콘텐츠에 빠지게 되는 요소가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AI 등 ‘무인화 기술’에 불안 느끼는 젊은 작가들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 본선에 참여한 구자명의 ‘소프트웨어 빼돌리기’(2024). 송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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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송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제24회 송은미술대상’에 참여한 20명의 작가들도 회화나 조각보다는 디지털 기술을 소재·주제로 한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구자명 작가는 ‘소프트웨어 빼돌리기’에서 북한의 선전 웹사이트 속 코드 구조를 알파폴드(아미노산 서열로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으로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등을 이용해 단백질과 DNA로 변환시켜 조각의 형태로 만들었다. 추미림 작가는 디지털과 도시에서 추출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픽셀 스페이스(Pixel Space)’를 선보였다.

노상호 작가는 AI를 통해 생성된 이미지의 오류를 캔버스로 옮겨오는 작업 ‘홀리-중력과 은총’을 선보이며, 김원화 작가는 AI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를 이질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인간의 거울’을 내놨다.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 본선에 참여한 추미림의 ‘Pixel Space’(2024). 송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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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에 대한 관심과 이를 이용한 작품들은 현대 미술에서 꾸준히 선보여왔다.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열리고 있는 ‘일렉트릭 드림스(Electric Dreams)’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초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기까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일본 모리미술관에서는 다음 달부터 게임 엔진, AI, 가상현실(VR)을 사용한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 ‘머신 러브(Machine Love)’를 연다. 이 전시엔 한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김아영도 참여한다.

송은미술대상 심사를 맡은 윤원화 비평가는 “최근의 작업들은 AI로 대표되는 ‘무인화’ 기술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보인다”며 “기술이 일상을 지배한다는 불안감 속에서 ‘개인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인간의 자리가 당연히 주어지고 보호된다고 기대할 수 없는 세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깔고 있는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송예환의 ‘인터넷 따개비들’ 전시를 기획한 장은하 큐레이터는 “동시대 젊은 작가들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로 기술을 일상의 일부로 내재화하고 있다”며 “기술을 단순히 배우고 적용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기술과 환경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거나, 구조적 문제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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