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무서운 기세다. 서학개미들의 미국 증시 투자 얘기다.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지난해에만 약 500억달러가 늘어났다. 총 보관 금액은 지난해 11월 초 1000억달러를 넘어섰고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6일 기준 1164억달러(약 170조원)에 이르고 있다. 한 번이라도 미국 주식에 투자한 서학개미는 1000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1인당 평균 투자액이 2000만원에 달한다는 이야기다.
투자금은 본능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시장, 기회가 있는 시장으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뉴욕 증시로 '머니 무브'가 급증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한국인이 달러를 벌기 위해선 수출을 하는 길밖에 없다는 통념을 깨주고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을 계기로 개인들도 미국 자본시장을 통해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게 됐다. 기관투자자들과 기업들은 이미 자본시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지만 개인들에게는 매우 큰 전환점이다. 많은 서학개미가 혁신을 선도하는 기업에 투자하며 다가올 미래 변화에 대해 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한국인 개인투자자 지분이 올라갈수록 글로벌 기업에 대한 영향력도 높일 수 있다.
한국인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뉴욕 증시 순매수 상위권 종목 포트폴리오 변화를 지켜보면, 기관투자자 뺨치게 트렌드를 빠르게 좇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투자자들이 해외 투자에 나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국내 자본시장이 추락해 투자자와 기업들이 받을 충격이다. 기업들은 상장 절차를 통해 자본시장에서 투자금을 끌어모으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유상증자, 발행시장 등을 통해 건전한 투자금을 수혈받는 경로가 막히게 된다.
지난해 국내 증시 성적표는 처참한 수준이다. 미국 나스닥이 25% 상승하는 동안 코스피는 9.6%, 코스닥은 21.7% 하락했다. 지난해 정부가 밸류업 정책을 선언하고 드라이브를 걸었는데 되레 증시가 하락했기에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런 '저혈압 상태'가 지속된다면 유동성이 말라가며 '빈혈 쇼크'가 올 수 있다.
증시 거래대금은 이제 코인 거래대금에도 밀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같은 제도권 상품까지 투자를 막아둔 탓에 가상자산 투자금은 빛의 속도로 해외로 나가고 있다. 해외 가상자산거래소 등에서 다양한 거래를 하기 위해 나간 이른바 '코인 이민'은 지난달 일평균 1조원 안팎까지 급증했다. 계엄령 사태 이후 이 속도는 매우 가팔라졌다.
투자금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해외 투자로 얻은 과실을 다시 한국 시장에 투자하고, 또 수익이 나면 해외에 투자하는 선순환 투자가 절실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 색깔 지우기가 광풍처럼 진행됐다. 당연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흑백논리로 모든 정책을 안락사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취사선택이 꼭 필요하다.
'밸류업'만큼은 정치 진영을 떠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이다. 돈에는 가장 편한 '자유'를 주어야 한다. 밸류업 정책은 보수 정권이 진보 진영의 기치를 포용해 탄생했다. 진보 정당이 여기에 진정성을 보탠다면 더 큰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가열차게 육성하겠다고 나선 가상자산시장 드라이브를 외면할 수 없다. 가상자산 관련 정부 정책을 '흥선대원군식 쇄국정책'으로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의 이 분야 투자 규모는 세계 수위권인데 홈구장이 없는 격이다. 건전한 투자자들이 참여할 제도 정비도 시급하다.
[박용범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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