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의의 가장자리 톡]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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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가 지날 때면 간식이 그립다. 추운 겨울에는 붕어빵이 최고다. 그 집 붕어빵이 유독 인기다. 역시나 다섯 명이 줄을 서서 빵틀을 바라보고 있다. 맨 뒷줄에 서자마자 달달한 붕어빵 냄새가 와락 밀려온다.
맨 앞에서 기다리는, 친구인 듯한 두 여성은 곧 구워질 붕어빵은 자기들 것이라는 듯 발랄하다. 여섯 마리가 구워졌다. 그때 검정 추리닝을 입은 삼십 대 여자가 어디선가 슬그머니 나타나 붕어를 몽땅 봉지에 넣어간다. 다시 여섯 마리가 구워지자 이번에도 한 여성이 불쑥 등장해서는 가져간다. 맨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자 손님이 투덜댄다.
"아니, 주문한 사람 몇 명 있다고 미리 말해주셔야지…… 그랬으면 그냥 갔을 거 아녜요. 벌써 20분이나 지났네!"
모든 게 이 집 붕어빵이 인기가 있어서다.
어느 날 붕어빵집 포장마차가 사라졌다. 하룻밤 사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소문을 듣자니 구청에 민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도로를 불법 점유했다는 이유란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가스불에 달아오른 붕어빵틀과 애들처럼 모자챙을 뒤로 돌려쓰고는 반죽을 넣는 사장 얼굴이 스쳐 간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사라졌던 붕어빵집 포장마차가 도로 건너편 화원 옆에 등장했다. 와! 신이 나서 달려갔다.
"어떻게 된 거예요?"
"땅 주인이 여기서 장사하라고 해서요."
참 잘됐다고 말하고는 돈통에 2천 원을 넣는다. 붕어빵 세 마리를 봉지에 담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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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붕어빵집이 또 사라졌다. 어디로 갔을까? 며칠이 지나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무슨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붕어빵집이 있던 자리에 가보았다. 사장이 쓴 것 같은 삐뚤삐뚤한 글씨가 벽에 붙어있다. <남쪽 50m 이전> 그곳을 찾아갔더니 붕어빵집 사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빵틀에 반죽을 넣고 있다.
"이번에는 왜요?"
"사유지인 줄 알았는데 도로라네요."
2천 원을 돈통에 넣는다. 붕어빵 세 마리가 들어 있는 봉지를 들고 집으로 온다. 마음이 놓인다. 걸으면서 붕어 한 마리를 꺼내 먹는다. 달고 고소하다.
붕어빵집이 또 사라졌다. 벌써 네 번째다. 이번에는 어디서 문을 열까. 보름이 지나도록 붕어빵집은 보이지 않는다. 한 달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다. 동네 이 골목 저 골목을 걸어 다녀 보았지만 찾을 수 없다. 올겨울 붕어빵집 사장네는 무얼 해서 먹고 사나? 사라진 붕어빵집처럼 마음이 스산하다.
아버지는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임차농'이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또는 이삼 년마다 땅 주인 눈치 봐가며 밭을 옮겨야 했다. 어느 해 아버지 소유의 작은 밭이 생겼다. 아버지는 어린 나를 데리고 그 밭으로 갔다. 밭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음 짓던 아버지의 얼굴이 나에게는 신앙과도 같았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찾아오는, 붕어빵을 바라볼 때처럼 달고 고소한 얼굴…….
며칠 전 산책을 하다가 아랫동네까지 내려왔다. 젊은 여자가 붕어빵 봉지를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얼른 다가가 물었다.
"문 열었어요?"
"건널목 너머요. 좀 먼데……."
그곳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사장은 변함없이 빵틀에 반죽을 넣고 그 위에 숟가락 한가득 팥을 떠내 올려놓고 있다. 새로 문을 연 붕어빵집은 이제 포장마차가 아니다. 작고 허름한 점포다. 아! 이제부터 쫓겨날 일은 없구나! 붕어빵집 사장이라도 된 것마냥 마음이 놓인다. 언제나처럼 2천 원을 돈통에 넣고 붕어빵을 기다린다. 가스불의 열기가 시린 바깥 공기를 밀어낸다. 달궈진 빵틀이 뒤집힐 때마다 황금빛 붕어빵이 올라온다.
세 마리 붕어빵을 봉지에 담아 집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배가 고프다. 그러면 길 위에 서서 붕어 한 마리를 꺼낸다. 입에 침이 돌고 배가 꿈틀댄다. 아! 달고 고소하다. 붕어빵집이 더는 사라질 일이 없다. 아버지의 작은 밭처럼. 붕어빵집을 찾아 헤매던 내 마음도 허름한 점포에 세 들인 듯 따뜻하다. 오후의 겨울 하늘은 투명하고 나뭇가지에서는 새들이 노래한다.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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