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창 경제부 차장 |
올 한 해 경제정책의 네 개 축 중 하나는 ‘대외 신인도 관리’다. 정부는 2일 ‘2025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대내적으로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이 민생 개선이라면 대외적으로는 신인도를 관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비상계엄 이후 계속되는 정치 혼란으로 국가신용등급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대외 신인도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한 것이다. 과거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경제 관료를 협력 대사로 임명하고 해외에서 한국 경제 설명회도 연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채로 새해를 맞이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러나 대외 신인도 관리가 전면에 등장한 건 처음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이 시작됐던 2016년 말 정부가 내놨던 이듬해 경제정책 방향에 ‘대외 신인도’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2017년 1월에 미국 뉴욕에서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한국 경제 설명회를 열겠다는 내용이 한 줄 들어가 있을 뿐이다. 정부 역시 정치 불안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박 전 대통령 탄핵 때보다 더 크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2017년과 달리 대외 신인도 관리가 왜 중요해졌을까. 악화된 대외 여건이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과거 탄핵 국면에는 중국의 고성장(2004년), 반도체 경기 호조(2016년) 등 우호적인 대외 여건이 수출 개선을 통해 성장세를 뒷받침했으나 이번에는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 증대 등으로 대외 여건의 어려움이 커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올해 수출이 지난해보다 1.5%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2017년 연간 수출이 전년보다 15.8% 급증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크게 늘어난 국가채무도 대외 신인도에 부담이다. 2016년 말 627조 원이었던 국가채무는 2023년 말 1127조 원으로 500조 원 급증했다. 정부는 올해 국가채무가 1277조 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경우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50%에 육박하게 된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계단 높였던 2016년 국가채무는 GDP의 34%였다.
올해는 국고채 발행 규모마저 역대 최대다. 상환액보다 발행액이 80조 원 더 많아 국가채무도 80조 원 더 늘어난다. 올해도 세수 부족이 이어질 가능성이 큰 가운데 추가경정예산 편성까지 현실화하면 결국 국가채무를 늘려 충당해야 한다. 국내 신용평가사 나이스신용평가사는 최근 “국고채 발행 급증에 따른 정부 채무 상환 능력 지표 악화는 국가신용등급 하방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라며 2025년 이후 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경제의 ‘뉴노멀’이 된 저성장도 대외 신인도에는 마이너스다. 정부는 현재의 정치 불확실성이 빨리 정리되는 상황을 전제로 올해 경제성장률을 1.8%로 전망했다. 2016년 탄핵 정국 때와 달리 경제만 놓고 봐도 대외 신인도를 깎아 먹을 만한 점들투성이다. 대외 신인도가 흔들리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의 몫이다. 정부가 아무리 발 벗고 뛰어도 정치 불확실성 해소가 대외 신인도 관리의 첫걸음이다. ‘민폐 정치’부터 멈춰야 한국 경제의 위상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정치인들만 모르는 듯하다.
박희창 경제부 차장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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