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대행의 결단
경제 유불리로 재단 안돼
한은이 평가할 일도 아냐
경제의 정치개입은 위험
불필요한 언급 자제 필요
경제 유불리로 재단 안돼
한은이 평가할 일도 아냐
경제의 정치개입은 위험
불필요한 언급 자제 필요
두 달여 전, 최광해 전 국제통화기금 대리이사가 ‘이창용 한은 총재의 오지랖’이라는 똑같은 제목으로 컬럼을 쓴 적이 있다. 한은 총재가 ‘사과값 오르니 수입을 고려하자’ ‘외국인 근로자는 차등임금을 적용하자’ ‘상위권 대학에 지역별 비례입학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한켠에서는 오지랖이라고 비판하지만 한국은행의 책무가 물가안정을 통한 국민경제의 발전임을 감안할 때 지극히 바람직하고 당연하다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비슷한 내용으로 글을 쓸 생각이었는데 선수를 빼앗겼다’며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뜻을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새해 들어 이 총재의 오지랖은 선을 넘고 있다.
이 총재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두고 “경제를 고려해서 어렵지만 불가피한 결정을 했다(1월2일 한국은행 신년사)”고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5년 한국은행 시무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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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관 임명은 아직 합법과 위법 논란이 진행 중이다.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있다는 것이 다수설이지만, 헌법상 대통령만 임명할 수 있으므로 헌재 심판으로 탄핵이 완성된 후에야 가능하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이런 상황에서 이 총재의 발언은 경제를 위해서라면 법을 어길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총재의 말 대로라면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경제를 고려하지 않고 쉬운 결정을 한 셈이다.
정치 혼란이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헌법재판관 임명을 몇 달 미루는 것이 경제를 어렵게 하는 결정적 또는 중대한 이유는 아니다. ‘먹고살기 힘든 판국에 법이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법치가 흔들리면 경제도 온전할 수 없다. 헌법재판관 임명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은 한국은행 총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며, 경제에 도움이 되느냐 안되느냐를 갖고 판단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이 총재는 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해 “우리 경제가 정치 프로세스에 영향받지 않고 독립적이고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임을 대내외에 알리는 출발점(1월3일 2025 범금융 신년인사회)”이라고도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5년 범금융신년인사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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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권한대행은 단순 경제부총리가 아니라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다. 최 권한대행의 일거수일투족은 경제 메시지기에 앞서 정치 메시지다. 더구나 헌법재판관 임명은 엄연히 정치적 결단이다. 그런 최 권한대행의 결정을 두고 ‘정치와 경제가 독립적으로 작동한다는 메시지’라고 하는 것은 어떤 논리로 성립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설마, 대한민국 정부는 정치적으로 옳든 그르든 경제에 도움만 된다면 뭐든지 한다는 뜻인가.
이 총재는 “대통령과 총리가 탄핵당한 상황에서 또 탄핵이 이어지면 과연 정부가 작동할 수 있느냐(1월2일 한은 기자실 방문 중)”고 했다.
정말 탄핵이 문제라면 지난 2년 반 동안 29건의 공직자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거대 야당의 무차별 탄핵시도를 먼저 지적했어야 한다. 탄핵을 피했다는 것이 최 권한대행을 칭찬하는 이유라면, 대통령이 탄핵당한 상황에서 또 탄핵당한 한덕수 총리를 비롯해 앞서 탄핵을 피하지 못한 감사원장 법무부장관 행정안전부장관 방송통신위원장과 6명의 검사들부터 비판해야 한다.
새해 이 총재의 오지랖은 법과 정치의 영역을 침범했다. 경제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정치의 경제개입 만큼이나 위험하다.
근래에 ‘이창용 총재가 대선에 출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럴 때마다 ‘경제에 집중하는 분이시라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 답변을 수정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문제의 발언 이후에는 ‘이창용 총재가 어느 당으로 출마할 것 같으냐’, ‘출마선언은 언제쯤 할 거 같으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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