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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노트북 너머] 괜찮을 거라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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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 4일 저녁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반대하는 보수단체 집회.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습니다. 지금 20·30세대가 다 돌아오고 있습니다.”라고 사회자가 외쳤다.

실제 그랬다. 5시간 기다렸다가 무대 위에 올라온 중학교 3학년 학생. 좌파 방송에 속아서 2016년 박근혜 탄핵 찬성 집회에 나갔던 걸 후회한다는 30대 청년. 5만 명 이상 구독자를 가진 30대 초반 유튜버. 하루 종일 관저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다는 30대 여성. 이들은 민주당을 포함한 ‘좌파들’을 비판했다. 누군가는 “얼마나 외로운 싸움을 하셨을지 상상이 안 간다”며 태극기 어르신들에게 사과했다. 국회 앞 탄핵 찬성 집회에만 교복 입은 학생과 아이돌 응원봉을 든 젊은이가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착각이었다.

# 국민의힘 의원 30여 명은 윤 대통령 체포영장 유효기간 만료일인 6일 새벽 한남동 관저 앞으로 모였다. 이들 중 일부는 관저 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당 지도부는 이들의 행동을 ‘개인행동’이라며 애써 모른 체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럴 줄 몰랐다”고 했다. 우월의 착각과 체념이 동시에 묻어났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에서 보수 정당이 망하는 일은 없다”라는 미신 같은 믿음 같기도, 우월의 착각 같기도 한 말들은 심심찮게 들린다.

# 괜찮을 거라는 착각? 외신들은 12·3 비상계엄 이후 11일 만에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democratic resilience)’을 칭송했다. 하지만 탄핵된 대통령을 체포하지 못하자 이내 돌아섰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탄핵 찬반에 대한) 각자 주장에 따라 이대로 나아가면 심각한 충돌로 발전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영국 BBC는 “충격적(astonishing)”이라고 평가했다.

10여 년 전부터 한국 민주주의를 흔드는 ‘위기 징후’는 있었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 드러났고, 2017년 대선에서 드루킹 사건이 일어났다. 두 사건 모두 절차적 민주주의를 해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도 큰 사회적 갈등을 빚었다.

어느덧 ‘유튜브 공화국’이 됐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53%가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본다. 46개국 평균인 30%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정치인들의 막말은 일상이 됐다. 지난 총선 양당 예비후보들은 ‘새날’, ‘이봉규TV’ 등 각 정파를 대표하는 유튜브 채널에 앞다퉈 출연했다. 박종희 서울대학교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 정치에서 정당 간 공격적 언어 사용이 이제는 야당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당에게서도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규정했다.

서로를 혐오하는 극단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망치는 원인일 수도 있고, 반대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박노해의 시 중 “이번은 다르다”는 착각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한국판 MAGA’, ‘GDP 킬러’, ‘내란 수괴’ 등 다양한 수식어로 모두를 혼돈에 빠뜨린 자는 언젠가 역사의 심판을 받는 법. “나는 대체 불가 정치 아우라야. 수감 돼도 보수진영을 이끌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거대한 착각’이다.

※ 인용된 논문은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와 이기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석사과정생 공저의 ‘한국 양대 정당의 공격적 언어 사용 분석: 2007∼2023 정당 논평을 중심으로’(한국정치학회보, 58집 2호 2024 여름)이다.

[이투데이/이난희 기자 (nancho090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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