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 30알 먹일 가능성 낮아"
10년 걸린 재심 무죄 결론
김씨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김신혜재심청원시민연합이 6일 광주지법 해남지원 앞에서 김신혜씨의 무죄 선고를 축하하고 있다. 해남=김진영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수면제 탄 술을 먹여 친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수감 중인 김신혜(47)씨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건 발생 24년 10개월 만이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지원장 박현수)는 6일 김씨의 존속살해, 시체유기 혐의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당시 23)는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군에서 수면제 30알을 탄 양주를 마시게 해 아버지를 살해하고 같은 날 오전 5시 50분쯤 완도 정도리의 한 버스정류장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자신과 여동생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데 불만을 품던 김씨가 아버지 앞으로 수령액 8억 원 상당의 보험에 가입하고 수면제를 먹여 살해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한 것으로 판단했다.
김씨는 그러나 법정에서 줄곧 무죄를 주장했다. "동생이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 말에 자신이 대신 감옥에 가고자 거짓 자백을 했고, 강압 수사를 당했다는 취지였다. 김씨의 진술 번복에도 불구하고 1, 2심에 이어 대법원은 "김씨가 보험금을 타 낼 목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상고를 기각해 2001년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이후에도 김씨는 "죄를 짓지 않았으니 강제 노역을 할 수 없다"며 억울해했다. 주민들에게 직접 탄원서를 받으며 구명운동을 했던 김씨의 할아버지 김정길씨(당시 86)는 사건 이후 친척들 도움을 멀리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다 2017년 눈을 감았다.
김씨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 법률구조단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한 것은 복역 중이던 2015년 1월이다.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채 김씨의 집을 압수수색했고, 허위로 수사 기록을 작성하는 등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재심의 이유로 들었다. 김씨의 진술 과정에서 폭행과 가혹행위가 발생한 정황도 포착됐다.
25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김신혜씨의 남동생이 6일 전남 장흥교도소 앞에서 김씨의 출소를 기다리고 있다. 장흥=조소진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재심 재판부는 경찰이 김씨 집에서 확보한 노트 등 증거물은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압수해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또 경찰 조사 당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에 대해서는 김씨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검찰이 이를 반박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씨의 자백 사실을 들었다는 고모부 등의 진술에 대해서는 "자백 증거 인정은 범행 직후 자기가 했던 일을 깊이 뉘우치거나, 죽음이 임박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 등 신빙성이 증명된 때에 한한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의 자백 진술이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살해 도구인 양주 2잔에 탄 수면제 30알에 대해서도 "30알을 양주 2잔에 탔다면 그 농도가 매우 진했을 것인데 이를 그냥 마셨을지 의문"이라며 "부검 당시 피해자의 위장에서는 그처럼 많은 양을 복용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여기에 재판부는 김씨 아버지가 가입한 보험은 계약 체결 2년 이내라 보험금 수령이 불가능한 데다 보험설계사로 일한 전력이 있는 김씨가 이를 잘 알았을 것이라는 점, 범행 추정 시간 직전 김씨가 친구들과 만나자고 약속을 잡은 점, 김씨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가 있었다는 증거가 부족한 점 등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청구 이후 10년 만이다.
무기수 김신혜씨가 6일 오후 전남 장흥교도소에서 석방된 뒤 사건 발생 24년여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장흥=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날 오후 전남 장흥교도소에서 석방된 김씨는 취재진에게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 수십 년 걸려야 하는 일인지 많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고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부끄럽지 않은 딸로 살았던 그 세월이 헛되지 않게 마무리를 잘하겠다"고 밝혔다.
각각 '낙동강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장동익씨와 윤성여씨는 김씨에게 꽃다발을 전하며 무죄를 자축하는 의미에서 만세삼창을 했다.
해남=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장흥=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