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윤석열 공소장’ 보니···130회 윤석열 등장
국무위원 만류도 무시 “종북좌파로 나라 거덜 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밤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통해 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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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달 27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소기소하면서 공소장에 ‘명태균씨 공천개입 의혹’이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비무장·경고성 계엄이었다”고 해명한 것과 달리 계엄군은 6만발에 가까운 실탄을 소지한 채 작전에 투입됐다. 윤 대통령은 국회를 대체할 비상입법기구 운영 지시까지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윤석열, 명태균 공천개입 거론하며 계엄 결심 굳혔다
경향신문이 5일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확보한 김 전 장관 공소장에는 본문에 윤 대통령을 지칭하는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130회 등장한다. ‘윤석열’ 이름을 명시한 대목만 87회에 달했다. 김 전 장관을 가리키는 ‘피고인’ 표현이 본문에 113회 나오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윤 대통령 공소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공소장을 보면 윤 대통령은 22대 총선 전후인 지난해 3~4월부터 비상계엄 당시 작전에 주요하게 투입된 군 사령관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비상조치’ 등 계엄을 암시하는 얘기를 자주 나눴다. 특히 계엄 9일 전인 지난해 11월24일에는 김 전 장관을 따로 불러 야당의 명태균 공천개입 의혹 제기,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재판·수사 관련 판·검사 탄핵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이게 나라냐. 미래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발언 수위를 높였다. 검찰은 이날을 계기로 김 전 장관이 계엄 선포문,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계엄 포고령 초안을 작성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주요 사령관들 역시 사전에 계엄 선포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봤다. 조사 결과 김 전 장관은 지난해 6월 윤 대통령과의 식사 자리에서 동석한 여인형 당시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당시 육군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당시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강호필 육군 지상작전사령관을 가리켜 “대통령께 충성을 다하는 장군”이라고 소개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 한 달 전 곽·이 전 사령관과 식사하면서 계엄이 선포될 경우 각 사령부가 어떤 조치를 할 것이냐 물었고, 이들은 각각 “준비·출동 태세를 잘 갖추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국무위원 만류도 무시…헌법·법률 무시한 계엄
윤 대통령은 계엄 당일 일부 국무위원들이 반대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밀어붙였다. 김 전 장관의 공소장을 보면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서 “경제와 외교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종북 좌파들을 이 상태로 놔두면 나라가 거덜 난다” “지금 계획을 바꾸면 모든 게 다 틀어진다”, “대통령 결단이다”라며 계엄 선포를 강행했다.
지난달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 합동 브리핑을 마친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계엄령 관련 국무회의 참석 여부’와 ‘내각 총사퇴’ 등의 기자들 질문에 입을 꾹 닫은 채 이동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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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윤 대통령의 이런 독단적 결정이 헌법과 계엄법이 정하는 절차를 위반한 것이라고 공소장에 적었다. 당시 국무회의록은 작성되지 않았다. 헌법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하고 관련 문서에 국무위원이 서명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검찰은 당시 국내 정치·사회 상황이 ‘전시·사변’등 계엄선포 요건에 해당하지도 않았다고 봤다.
윤 대통령은 계엄을 김 전 장관과 군 사령관들과만 긴밀히 소통하며 준비·실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곽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부터 이상현 1공수특전여단장에게 “대규모 탈북 징후가 있으니 임무 수행을 잘 할 수 있는 인원을 선발하라”며 허위 이유를 대며 계엄 준비를 지시했다. 계엄 선포 이후 김 전 장관이 전군지휘관회의에서 “이제부터 전군은 장관이 지휘한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항명죄로 처벌한다”고 말한 사실도 확인됐다.
‘비무장’이랬지만 6만발 가까운 실탄 투입…계엄 해제 의결에도 “병력 재투입 되나”
검찰 공소장에는 윤 대통령의 구체적인 지시와 그 실행 과정도 포함됐다. 공소장을 보면 방첩사는 계엄 선포 이후인 지난해 12월4일 0시25분쯤 5명의 ‘이재명 체포조’를 먼저 국회로 출동시켰다. 이 대표 체포조를 시작으로 같은 날 오전 1시5분까지 국회 투입을 시도한 체포조는 10개팀, 49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자정을 넘긴 지난달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무장군인들이 국회본청 진입을 시도하자 국회 직원 등이 격렬히 막아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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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경고성·비무장 계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조사에서 이를 반박하는 사실들이 다수 확인됐다. 조사 결과 계엄 당시 최소 5만7000여발의 실탄이 동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 임무를 받은 정보사 요원들은 실탄으로 무장하고 선관위 근처에서 대기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직후 최상목 부총리를 만나 “국회 관련 현재 운용 중인 자금을 완전 차단하고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라”는 지시가 담긴 문건을 건네기도 했다.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은 선관위 전산 자료를 영장 없이 압수해 부정선거와 여론조작 관련 증거를 확보하려고 시도하고, 부정선거 수사를 전담하는 제2수사단을 계엄사에 설치하려 했다고도 한다. 김 전 장관은 계엄 선포 사흘 전인 지난해 11월30일 여 전 사령관에게 “조만간 계엄을 하는 것으로 대통령이 결정하실 것”이라며 “계엄사가 선관위와 여론조사 꽃 등의 부정선거와 여론조작의 증거를 밝혀내면 국민들도 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문상호 당시 정보사령관에게는 “노 장군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며 민간인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지시에 따라 부정선거 관련 임무를 수행할 것을 지시했다.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 뒤에도 윤 대통령이 작전을 이어가려고 한 정황도 포착됐다. 해제안이 가결된 후 김 전 장관은 윤 대통령과 회의를 마친 뒤 곽 전 사령관에게 “선관위에 병력을 재차 투입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곽 전 사령관이 “어렵다”고 답하고 나서야 김 전 장관은 군 지휘관들에게 “중과부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되지 않았다”고 작전 실패를 인정했다.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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