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07 (화)

이슈 미술의 세계

이용순 개인전 ‘조선도공의 둥근마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흙으로 빚어낸 ‘조선도공의 둥근마음’

흙과 불, 물레와 합일된 작가의 집중

달항아리, 임신한 여인의 풍만한 모습

“이용순 작가는 형식이나 테크닉을 넘어서 몰입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무한반복의 몰입에서 오는 무목적성의 경지다. 오로지 흙과 불, 물레와 합일된 작가의 집중이 목적마저 비워내고 있는 것이다. 이용순이 생존 달항아리 작가 중 최고인 이유다. 달항아리는 어떠한 문양도 없이 단순한 형태와 유약, 태토(흙)만으로 일궈냈다는 점에서 단색화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한다.”(박서보)

세계일보

백자 달항아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달항아리는 조선시대 문화절정기인 18세기의 산물이다. 금사리 등 조선백자가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꽃망울이 터지듯 나온 것이다. 농익은 조선백자의 토양에서 마음껏 만들어 본 기물이다. 전통 백자사발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다. 그것도 백자사발 두 개를 합쳐서 만들었다. 전통적 장르의 해체이자 융합인 셈이다. 보편적 해석도 허락되지 않는다. 누구는 임신한 여인의 풍만한 모습을 연상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이름처럼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떠올린다. 개별적으로 다양한 해석의 문이 풍성하게 열려 있다는 얘기다. 어떤 문헌에도 용도와 모양새를 규정한 것이 없다는 점도 특이하다.

달항아리들은 사람 얼굴처럼 모두가 다르다. 빛에 따라 다양한 백색을 발산한다. 자연을 닮은 조형물이란 얘기다. 댕그랗게 생긴 것이 아니라 원만하게 잘생겨 마음을 평안케 해준다. 입은 크고 몸체에 비해 밑굽이 좁은데도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다. 몸통과 굽 사이의 직선처럼 인식되는 선으로 되레 수평선 위에 둥실 뜬 달처럼 보인다. 색도 약간 푸른 기가 도는 설백에서 불투명한 유백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살아 생전 박서보 화백은 “설백의 백자사발이 비워져 있음에도 맑고 푸른 물이 담겨 있는 느낌에 이끌려 달항아리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했다. 이런 맛을 이용순 달항아리는 모두 담아내고 있다. 공간과 빛에 따라 보이는 각양의 얼굴이 카메라에는 담기지 않는다. 1000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달항아리의 매력이다. 달항아리가 지금도 여전히 현대미술의 취향마저 만족시키는 이유일 듯 싶다.

세계일보

이용순 작가


드뷔시의 ‘달빛’선율이 어울리고 이해인 수녀의 ‘달빛 기도-한가위에’가 떠오르는 이용순의 달항아리는 순백색의 둥글고 어진 맛이 일품이다. 피부가 우윳빛이 도는 은은한 유백색을 띠고 있다.

이용순 작가는 자신이 직접 산에서 채취한 백설기 같은 백토와 직접만든 유약으로 조선도공의 백자 달항아리를 소환하고 있다. 그의 달항아리전이 8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린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