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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11.8㎞의 선물… ‘늙어가면서 느끼는 자유’를 만나다 [강동삼의 벅차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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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쿠르베가 그린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 자리잡은 ‘에트르타 백악 절벽’은 마치 올레길 9코스의 백미인 박수기정과 닮았다. 사진은 제주비엔날레 협력 전시 제주현대미술관 전시 작품.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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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리에서 바라본 박수기정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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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9코스 정방향 시작지점에서, 역방향 마지막 지점에서 만나는 서귀포시 예래동 대평리 박수기정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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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신문 기자. /어느 여인이/ 꽃이라도 한 송이/ 들고 찾아와 준다면/ 좋겠구먼. /눈발 같은 글씨를/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기자의 등 뒤로/ 다가오는.’

제주에서 인연이 된 후 가끔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 H 시인이 느닷없이 카톡문자가 왔다. 횡성에는 눈이 녹지 않아 외출할 수 없다고.

“화이트크리스마스라서 좋겠다”고 부러워하며 내가 “제주는 모처럼 포근한 크리스마스인데 근무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더니 너무나 아름다운 시를 이렇게 보내왔다.

역시 시인은 시인의 마을에서 왔나 보다. 그 짧은 찰나에 날 감동시키는 한 편의 시를 보내주다니 감동이다. 이보다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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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올레길 9코스와 월라봉


# 나이 한살 더 먹는 내게 선물을 주고 싶어… 레바논 마운틴 트레일과 닮은 11.8㎞ 우정의 길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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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라봉 가는 길에 만나는 화순 남부발전 너머로 해가 뜨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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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리파크에서 만나는 월라봉과 박수기정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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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한살을 더 먹는 내게 연말 선물을 해주고 싶어 올레길을 홀로 걷는다.

레바논 마운틴 트레일(Lebanon Mountain Trail)은 레바논 북부 안드퀘트에서 남쪽 마르자윤까지 총 450㎞에 걸쳐 이어진 26개의 길이란다. 길이는 제주올레트레일 438㎞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해발 고도 600~2000m에 위치한 75개의 도시와 마을을 지나고 인근 지역을 감싸 돌며 걷는 길이란다. 난이도가 평이한 제주올레와는 달리 다소 거칠고 험한 길이지만, 레바논 산맥의 자연적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제주올레 우정의 길 올레길 9코스와 길이가 꼭같은 레바논 마운틴 트레일 21코스(11.8km)를 언젠가 한번 걸어보고 싶다. 11.8㎞의 고독과 사랑, 그리고 치유의 시간을 갖고 싶다.

스페인 산티아고는 은퇴후 걷고 싶은 버킷리스트지만, 여러 사원과 농로길, 염소 방목지, 돌길 등 다채로운 풍광이 이어지고 계곡 너머의 소나무 숲이 하이라이트인 레바논 마운틴 트레일 코스도 버킷리스트에 추가됐다. 올레길 9코스를 걸으며 레바논 마운틴을 상상해보련다.

올레길 9코스 정방향이 아닌 역방향의 시작인 화순해수욕장에 차를 멈췄다. 9코스는 역방향으로 걸어야 덜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고 어머니의 고향 대평리 포구가 종점인 점도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도 있지만, 걷다가 생겨난 위시리스트(wish list)도 있다. 닳고 닳은 등산화, 낡고 낡은 모자, 너덜너덜해진 등산바지, 헐렁헐렁해진 후드티, 실룩실룩거리는 가방, 눅눅해진 스카프, 케케묵은 책, 아버지가 듣던 전축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찰칵찰칵 소리나는 폴라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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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끄리민교 인근 황개천 풍광.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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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9코스에서 만난 하귤나무 과수원과 월라봉.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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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천을 낀 올레길 9코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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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유적 화순마을과 화력발전소의 조화를 이룬 나누리파크에서 역사여행

무엇보다 9코스의 백미는 대평리 난드르의 어질어질한 절벽 박수기정으로 위시리스트에 들어갈만 하다. 깎아지른 절벽이 어질어질한 박수기정은 샘물을 뜻하는 ‘박수’와 절벽을 뜻하는 제주어 ‘기정’이 합쳐진 말로, ‘바가지로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는 절벽’이다.

“내게 천사를 보여다오. 그러면 천사를 그리겠다”고 말한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1819년 6월 10일~1877년 12월 31일)의 노르망디 해변에 자리잡은 ‘에트르타 백악 절벽’의 코끼리 바위와도 닮았다. 아니, 닮·았·다·고, 못·박·고·싶·다.

기성의 질서를 전복하는 혁명가적 기질을 가진 쿠르베는 혁명적인 세계관과 화풍을 고집했다. 후에 외젠 부댕, 그리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클로드 모네 등이 훗날 에트르타 백악 절벽의 풍경을 남기게 됐다지. 얼마 전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제4회 제주비엔날레 협력 전시 일환으로 열리는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전시회에서 그 ‘에트르타 백악 절벽’을 만나고 나선 더욱 박수기정과 닮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여행이란, 가진 것 없이 초라하고 볼품없는 자신과 대면하게 해주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올레길 9코스 역방향을 걷는 여행이 초라해도 부끄럽지 않는 나를 만나게 해준다.

역방향 9코스는 화순 남부발전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화순바다 동쪽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거기서도 박수기정 끄트머리가 보인다. 남부발전소로 방향으로 틀어 걷다보면 나누리 파크를 만난다. 배진성씨가 썼다는 글이 마음을 움직인다. 불빛을 만드는 사람들, 별빛을 만드는 사람들, 꽃밭을 만드는 사람들, 사랑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언제라도 스위치만 올려 달라고 말한다. 그리움의 전깃줄 속으로 달려가서 환하게 켜지는 사랑이 되겠다고 말한다. 사랑은 날마다 꽃으로, 당신은 날마다 꽃으로 피어난다고 위로해준다.

나누리파크(610번지 일대)는 나눔의 장소다. 문화재청(지금의 국가유산청)에서 유적조사를 하던 과정에서 많은 유물과 마을 형성 주거지가 발견돼 발전소 확장 예정 부지 전부를 유적지로 지정할 것을 검토했단다. 그러나 남부발전소를 짓지 않을 경우 제주지역 전력난을 해소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한국남부발전이 2008년 화순리 선사마을 유적공원을 조성해 제주도에 기부채납했고 발전소 확장 예정 부지 일부는 문화재보존지역으로 지정돼 2021년까지 보존해오다가 문화재청과의 협의하에 2022년 조성한 곳이 나누리파크다.

나누리 파크 안에는 ‘사오월’이란 카페가 올레꾼을 반기는데 커피 한 잔 테이크아웃해서 길을 다시 나선다. 탐라형성기에 축조된 제주 화순리 마을유적이 지근거리에 있다. 나누리파크 길 건너 남부발전 왼편에 화순리마을의 움집을 만난다. 유리지붕으로 보호되고 있다. 자녀와 함께 걷는 길이라면 청동기시대로 역사여행을 떠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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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9코스 안덕계곡으로 가는 길.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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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해풍을 맞고 자란 해국. 올레길 9코스에서 자주 만나는 국화과 야생화.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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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라봉 가는 길에 만난 해국… 마치 일제 강점기 비극의 상징같은 꽃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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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라봉 정상에서 만나는 안덕면 화순리와 산방산, 멀리 송악산까지 보인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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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라봉 일제 진지동굴 입구에 핀 해국.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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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라봉 소나무.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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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리마을유적의 동쪽, 마르지 않는 하천인 호젓한 황개천을 끼고 걷는다. 시냇물 소리가 청량하다. 혼자하는 여행은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모든 사물이 소중해진다. 황개천 절벽이 아름다운 개끄리민교를 지나면 오른쪽으로는 해발 240m의 월라봉으로 향하는 길이다. 9코스는 월라봉을 끼고 돌지만 정상을 만날 수 없다. 9코스로 접어들기 전에 잠시 월라봉을 올라가 보는 건 어떨까.

산모양이 마치 달이 떠오른 것 같다는데서 월라봉(月羅峰)은 월내악(月乃岳), 월라악(月羅岳)이라고도 불렸고 정상을 밟으면 표지석에 ‘도래오름’이라고 새겨져 있기도 하다. 다래 열매 또는 하늘에 뜨는 달이 아니라 옛말인 달(達)에서 나온 것으로 높은 오름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월라봉은 서귀포시에도 같은 이름의 산이 있기도 하다.

암튼, 겨울철 월라봉으로 가는 길에는 노란 들국화를 닮은 꽃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해국’이었다. 야생 국화로 해풍을 맞으며 자란다. ‘그리움’이란 꽃말을 갖고 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시계반대방향)으로 걸어 정상가는 길을 택한다. 운동시설이 정상 입구에서 반긴다.

해발 200.7m라고 쓰여 있는 도래오름.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산방산 일대 풍광 만으로도 올라온 수고를 보상받는 느낌이다. 멀리 송악산, 형제섬, 가파도, 마라도까지 한눈에 펼쳐진다. 화순항에서 송악산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에 넋놓고 바라본다. 그리고 정상에 하귤나무 두그루가 도드라지게 눈에 띈다. 제주다움으로 노랗게 익어가는 하귤나무를 산 정상에 만나는 것은 뜻밖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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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라봉 동굴진지는 화순항으로 상륙하는 미군을 저지하려 구축한 군사시설이다. 월라봉에는 7개의 동굴이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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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라봉 둘레 숲길로 들어서는 곳에 하귤나무 과수원이 짜~잔 하고 선물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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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라봉 정상에서 만나는 하귤나무.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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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오름 정상에서 만나는 올레길 9코스 스탬프의자.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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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여행은 뗄래야 뗄 수 없는가 보다. 갈길 먼 나, 내려오는 길에 월라봉 일제 갱도진지를 만난다. 초음속 속도로 재생하는 영상처럼, 그렇게 훑어본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일제는 결7호 작전으로 불리는 방어 군사작전으로 제주도를 결사항전의 군사기지로 삼았다. 일본군은 미군 상륙의 가능성이 많은 여러곳에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연합군의 공격에 대응하려 해안특공기지를 설치하면서 동시에 포대 및 토치카 벙커 등을 설치했다.

월라봉 동굴진지는 바로 화순항으로 상륙하는 미군을 저지하려 구축한 군사시설이었다. 모두 7개의 동굴이 확인되며 폭과 크기로 4~80m에 달하는 대형 공동의 진지동굴로 직선형이다. 출구를 여러 방향으로 내어 연기를 밖으로 배출하려 경사면과 수직으로 천장에 구멍을 뚫어 놓기도 했다.

돌담에 붙어 자라는 해국의 해맑은 모습과 진지동굴의 입구가 대조를 이뤄 역사적 비극을 극대화하는 듯 하다. 동백꽃이 4·3의 슬픔을 대변한다면, 해국은 일본 지배의 비극을 상징하는 꽃처럼 다가왔다.

동굴 안에서 밖을 본다. 산방산이 보이고, 화순항이 보이고, 멀리 송악산이 보인다. 왜 이곳이 갱도진지인지 퍼뜩 깨닫는다. 저토록 시리도록 처연한 아름다움을 그들은 빼앗고 싶었던 것이다. 35년이란 빼앗긴 들녁에서 자라는 해국은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해맑게 웃으며 버티고 있다.

92만년전 화산활동으로 제주섬의 기원으로 탄생한 오름을 하산하고 개끄리민교 오른쪽으로 올레길 역방향 주황 화살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파란화살표는 정방향, 주황화살표는 역방향이다. 진모르동산을 지나 월라봉 둘레 숲길로 접어들었다. 왼쪽으로는 창고천이다. 숲터널을 지나자 하귤나무 과수원이 나타난다. 9코스가 왜 우정의 길인 레바논 마운틴길과 닮았는지 가보지 않고도 짐작이 간다.

오롯한 산골풍경, 그 여유롭고 한적한 시간과 마주한다. 하귤나무를 배경삼아 월라봉을 카메라에 담는다. 문득,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말 내가 내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이보다 훌륭한 선물이 있을까.

그리고 밭담길을 따라 걷다가 한 과수원 정자를 만난다.

‘불란지(반딧불이) 올래? 이곳은 가을철 늦반딧불이가 출현해 반딧불이 탐방축제를 하는 코스’라고 골판지에 삐뚤빼뚤 쓰인 글을 만난다. 창고천(안덕계곡)의 맑은 물과 수려한 경관 생태계가 살아있는 안골(편안한 골짜기)이란다. 옥수농장지기 강문수씨가 “잠시 쉬었다” 가란다. 올레꾼의 갈증을 해소해주기 위해 감귤 바구니를 놓아뒀단다. 서너개 감귤이 남아 있다. 그래도 하나 쥐고 껍질을 벗겨 입 안으로 넣는 순간, 향긋한 감귤 향기가 입 안으로 확 퍼진다. 주변은 잘 꾸며진 정원같다. 산책하기 좋게 해놓아 잠시 쉼표를 찍는다.

9코스는 안덕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기도 하다. 상록수림, 생태공원, 남반내, 추사유배길하천(도고샘), 양재소를 지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미 소개한 바 있는 280m의 군산오름(군뫼, 굴메오름)으로 가는 길이다. 감산리에서 오르는 군산오름은 완만한 경사다. 정상에서 파란의자 스탬프에서 도장을 찍고 잠시 황홀한 바다풍광의 무아지경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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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9코스에서 만난 과수원과 안덕계곡.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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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오름 정상 서쪽(위)과 남동쪽 바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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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쿠르베의 에트르타 백악 절벽 같은 박수기정을 만나는 올레길 9코스를 역방향으로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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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9코스 한밭마을에서 만난 동백꽃 골목.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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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9코스 한밭마을길에서 만난 잎새 없는 소철나무와 올레길 시작지점이자 종점인 박수기정,대평리 난드르 바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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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코스의 힘든 고비를 다 넘었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린다. 다리도 풀린다. 하산 뒤 한밭마을로 접어든다. 단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산골마을이다. 9코스를 걷는 올레꾼들이라면 이 한밭마을에서 만나는 동백숲 올레 만으로도 큰 선물이다.

조슨다리로 향하는 길은 과수원길이고 밭담길이다. 내리막 길에선 바윗돌들을 지나야 해서 아파오기 시작한 발바닥에 통증이 전해져온다.

11.8㎞의 끝에 가까워지면 11.8㎞의 고독을 만나고 11.8㎞의 뜻밖의 선물을 만났다. 제주서부 중산간 지역에서 키우던 말들을 대평포구에서 원나라로 싣고 가기 위해 생겼던, 말들을 몰고 다니던 길 ‘몰질’(제주어)을 내려오자 ‘난드르’ 대평포구가 보이고 그리스를 닮은 나폴리호텔이 보인다.

그리고 이날의 백미이자 내가 원했던 선물, 박수기정을 만난다. 쿠르베가 그린 ‘에트르타 백악 절벽’과 닮은, 그 아찔한 절벽에 잠시 나를 내려놓는다. 영혼마저 힐링이 되는 순간이다.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이 슬프지만은 않다. 연말,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은 ‘늙어가면서 생기는 자유’다. ‘늙어가면서 느끼는 평화’다. 늙·어·가·지·만, 슬·프·지·않·다.

글 사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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