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길고양이가 따라오면 내 뒤의
전 세계가 아프고
녹슨 컨테이너 아래 민들레는
다시 한번 잃을 준비가 되어 있다
멀쩡하게 서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악이 된 기분이 든다
현실이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자기 자신은
밤 고속도로 위의 불빛 같은
현실감 하나로 스스로를 견디고 있었다
(하략)
―조성래(1992∼ )
잡지에서 시를 읽으면 나중을 위해 페이지를 접어 놓거나 옮겨 적는다. 머리는 나쁘고 좋은 것은 기억하고 싶으니까. 그래서 여러 번 조성래 시인의 시를 접어두었다. 시인이 된 지 몇 해 되지 않은 이 시인에게 전달할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 꼭 필요한 말, ‘당신의 시가 참 좋아요’ 이런 응원의 메시지를 속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시인이 되는 사람에게는 저마다 슬픔의 웅덩이가 있는데, 이 젊은 시인이 자괴감과 모멸과 참혹 속을 거니는 모습은 유독 기억에 남았다.
아무리 좋았어도 그의 시를 새해 첫 주에 소개할 생각은 없었다. 그의 시집 ‘천국어 사전’을 읽으면 마음이 너무 아프니까. 원래 새해 첫 주의 칼럼이란 희망이라든가 다짐같이 씩씩한 이야기로 채워지는 법이니까. 그러나 우리의 새해가 이렇게 속상하게 시작될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시의 구절처럼 전 세계가 아프고, 통곡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잘못을 저지른 듯하다. 시인은 절망하고, 시는 슬프다. 그리고 올해의 시작은 그보다 더 아프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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