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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5 (일)

‘800만 신들의 나라’ 일본 [장준영의 ‘지피지기’ 일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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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아베 신사의 모습 [도스포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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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한감정 시발점, 하치만구도쿤(八幡愚童訓) [야후 화상]



신이 된 남자

구 통일교와의 부적절한 유착 의혹에 불만을 품은 남성의 총격으로 선거 지원 유세 중에 사망한 일본의 정치 거물 고 아베 전 총리를 신으로서 모시는 ‘아베신사’가 지난해 7월 나가노현 산속에 세워졌다. 이와 관련하여 ‘인간은 죽으면 모두 신이 될 수 있는가’라는 논제를 둘러싸고 “나도 꼭 참배하러 가겠다”는 찬성 측과 “이단이 판치는 나라, 일본은 해괴한 나라다”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각각 분출되면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켜 일본에서 한때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신사를 창건한 인물은 신사 주지 출신 사토 가즈히코 씨인데 그는 아베 전 총리의 열렬한 신봉자다. 신사를 창건한 이유는 아베의 못다 이룬 꿈과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런 사례는 일본 전국시대의 장수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신사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임진왜란 당시 조선 침략의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세례명,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딸 고니시 마리아도 사후에 신이 되어 신사에 봉안되었다. 흥미롭게도 현대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칭송받던 파나소닉의 마쓰시다 고노스께를 모시는 신사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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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역사왜곡의 원점, 일본서기 [야후화상]



일본 신도와 한국 무속은 서로 통한다

일본 신도는 고대 시베리아 동부와 만주지역 퉁구스 계통의 애니미즘과 조상숭배의 요소를 갖춘 일본 고유 민족·민속 종교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에 신이 깃들어 있다’(八百万の神)는 사상에 바탕을 둔 다신교라는 점에서 일본은 ‘800만의 신들이 사는 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신도에는 절대적 유일신을 섬기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와는 대조적으로 창시자도 없고 경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8세기 초반에 편찬한 일본 천황가 중심의 개국 신화와 설화를 수록한 역사서 고지키(古事記)와 니혼쇼키(日本書紀) 등을 사실상의 경전으로 삼고 있다. 이 때문인지 천황 중심의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편이다.

신도는 외래 종교에 포용력을 보여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도교 불교 유교 심지어 기독교와의 융합도 시도하는데 불교와는 ‘불가신도’ 유교와는 ‘유가신도’ 기독교와는 ‘유명심판사상’ 등이 그것이다. 이를 슈고(習合)라고 부른다.

한편 일본 신도는 우리의 무속신앙과 매우 흡사한 면모를 보여주는데 양쪽 모두 시베리아 동부, 만주지역이 발상지이고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이란 원시종교 형태 요소를 갖추고 있는 토착신앙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신이 세상에 내려온다는 천신강림 신화, 신과 인간이 혼인을 맺어 하나로 융합된다는 신인융합 사상에서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으며 우리의 무속신앙에서도 일본 신도와 마찬가지로 도교 불교 유교를 포용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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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신도 측, 역사 ‘재해석’에 나서야

이처럼 한일 양국 간에는 풍습과 전통 그리고 민속신앙에서 공유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대하는 양국 간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일본 신도가 경전으로 모시는 니혼쇼키에 기술된 신화 속의 인물인 진구(神功)황후의 삼한정벌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공 메이지정권 초기의 정한론 일본의 한반도 강제병합 및 식민지지배 등 일본의 한반도 침략·지배론의 논거가 된 바가 있어 이는 일본 신도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인식을 촉발하고 있다.

삼한정벌설은 고대 2세기 후반 “진구황후가 임신 중인데도 바다를 건너 신라를 토벌하고 백제와 고구려를 항복시켰다. 귀국 후에는 오진(応神)천황을 출산하고 그의 즉위 때까지 무려 70여 년 동안 섭정을 하면서 나라를 다스렸다”라는, 다소 신빙성이 떨어지는 내용의 영웅설화다. 이 설화는 니혼쇼키가 완성된 720년에서 무려 580여 년이 지난 후인 14세기 초(1308년~1318년), 하치만구도쿤(八幡愚童訓)이란 기록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삼한정벌설에 관해 “일본을 침공하여 진구황후의 남편 추아이(仲哀)천황을 살해한 신라군을 보복하기 위해 삼한정벌에 나섰다. 이에 신라왕은 일본을 수호하는 일본의 개가 되겠다는 약속을 했다”라는 내용이 새롭게 추가되고 각색됐다. 이글에 담긴 조선 폄훼는 전국의 신사를 통해서 일본 지식층은 물론이고 서민들에게까지 널리 유포되면서 후대 일본인의 일본 우월감, 조선 멸시 인식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근세에 들어와서는 히라타 아츠타네 아라이 하쿠세키 역사학자와 호시노 히사시 등의 신도계 학자들은 신국주의 사상을 배경으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우월의식을 내세우고 ‘원래 한반도의 지배자는 일본인이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면서 이들의 주장은 도쿠가와막부 말기 존왕양이와 연관되어 정한론으로 이어진다.

신의 가호를 받는 나라 즉 신국이란 단어도 니혼쇼키의 삼한정벌에 관한 기술가운데 “신라왕이 진구황후 군대의 기세를 보고 ‘저것은 신국의 강자’라며 저항하지 못하고 항복했다”라는 구절에서 최초로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신국이란 일본 천황가의 시조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의 후손인 천황이 현인신으로 군림하며 일본을 영구히 통치하면서 신의 가호가 영원히 약속된 국가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일본인들에게 배타적 선민의식을 불어넣어 주는 한편 이후에 국수주의 패권주의 군국주의적 사상으로 연결되면서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 만주점령 중국침공 태평양전쟁의 이념적 버팀목인 국가신도의 강령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군국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근간을 지탱해준 신도 체제는 미국의 맥아더 군정에 의해 해체되고 신사본청이란 종교법인으로 남게 된다. 신사본청은 1969년 일본의 과거 전쟁을 침략전쟁이 아니라 ‘아시아해방을 위한 전쟁’으로 미화하고 신도정신에 바탕을 둔 헌법개정을 표방하는 신도정치연맹이란 정치로비단체를 결성했다. 여기에 복고적 극우단체로 알려진 ‘일본회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여전히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신도정치연맹 소속의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신도정치연맹국회의원감담회 전 회장은 고 아베 전 총리이고 현재 회장은 나카소네 전 총리의 아들 나카소네 히로후미 중의원 의원이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 스가 히데요시 전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 고바야시 다카유키 등 차세대 총리 유력 후보 등 일본 정계의 실력자들을 비롯하여 26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이는 일본 최대종교 세력인 신사본청이 정치인을 쥐락펴락할 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진구황후의 삼한정벌 설화를 기술한 니혼쇼키와 후대에 이를 왜곡 각색한 ‘하치만구도쿤’이 그 원류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일본 천황의 ‘통석의 염’ 무라야마 담화 김대중·오부치선언 등 일본 측 정계에서의 반성과 사죄의 표명은 있었으나 일본 역사서 고지키와 니혼쇼키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일본 신도 측의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한일 간 진정한 화해의 장을 열기 위해서라면 일본 신도 측의 고지키 니혼쇼키 하치만구도쿤에 기술된 왜곡된 역사 서술에 대한 ‘재해석’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게 필자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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