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감수하고 최 권한대행 결정 공개적으로 지지
'대행의 대행' 체제 마저 위협받는 정치 리스크 확대에
경제로 위기 확산 감지…'대안 없는 비난'엔 분노
이 총재는 “최상목 권한대행께서 지난 화요일 대외신인도 하락과 국정 공백 상황을 막기 위해 정치보다는 경제를 고려해서 어렵지만 불가피한 결정을 했다”며 헌법재판관 임명 건에 대해 언급했다.
이어 이 총재는 신년 인사차 기자실을 방문해 “국정에 책임이 있는 국무위원들은 그런(헌법 재판관 관련) 비판이 해외 투자, 해외 신용평가사에 대해서 어떤 함의가 있는지 생각을 한번 고려해달라”며 국무위원을 향한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신년사 발표 도중 그간 사실상 금기시해온 정치적 메시지를 꺼낸 이 총재는 “공보관 등 여러 간부가 그냥 (신년사를) 읽기만 하고 절대 애드리브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읽다 보니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다”라고 돌연 속내를 털어놨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막역한 사이라고 알려졌다고 해도 직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총재가 최근 가장 민감한 이슈를 시무식에서 꺼내 든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의 상황을 지켜보며 이 총재의 심경에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이 총재의 어조는 담담했지만 한은 관계자와 소식통 등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 총재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안 없는’ 결정과 비판에 대해 상당히 분노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대통령 탄핵에 이어 권한대행 총리까지 탄핵된 사상 초유의 사태 이후 이 총재가 경제에 대해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심경 변화는 기자들과 만나 나눈 얘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총재는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직후만 해도 기자들과 만나 “다행스러운 것은 계엄이 오래됐으면 인식이 더 나빠질 수 있었는데 6시간 만에 해제됐기 때문에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 것 같다”며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에 큰 타격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한 달 후인 이날 이 총재는 기자들에게 “해외에서 보는 시각이 ‘단기적으로 대응을 잘해서 외환시장, 금융시장을 안정시켰다’ 이 단계는 넘어 버렸다”며 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 총재는 “정치적 리스크가 (국가) 신용등급에도 영향을 줄 텐데 신용등급은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기 굉장히 어렵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가장 바쁘게 뛰어온 사람 중 하나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과 관련한 가장 공신력 있는 인물로 통하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을 비롯한 이사들과 유럽중앙은행(ECB) 주요 인사들은 물론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에도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비상계엄사태가 터진 직후에는 말 그대로 ‘답하기 어려울 정도’의 전화와 이메일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행보를 그려볼 때 과거 대통령 탄핵 사례를 들어가며 우리 경제의 탄탄함과 정치 리스크와 별도로 경제 프로세스는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점을 열심히 강조하던 이 총재도 헌정 사상 첫 ‘대행의 대행’ 체제 앞엔 힘이 빠졌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심지어 권한대행 부총리도 탄핵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자 해외에 ‘한국은 문제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논리가 빈약해졌다. 실제로 신용평가사 등 해외 기관들의 우려 섞인 지적까지 나오자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총재는 신년사에서도,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모두 “신용평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정치는 정치일 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밖에서 보기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합의와 협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불안한 나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돌려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