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열풍 '텍스트힙' 창작과 책 꾸미기도 인기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1020세대 독서 붐 견인
'12·3 내란사태' 책 판매 급락…'독서력' 잃지말자
서울시가 운영하는 청개천 야외도서관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서울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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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서를 즐기는 것이 멋지다'는 의미를 담은 '텍스트힙'(Text Hip)이 열풍이다.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강 신드롬'을 일으키며 텍스트힙에 탄력을 불어넣었다.
독서를 멋진 일, 이른바 '힙한 문화'로 인식하는 텍스트힙은 다양한 형태로 1020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마음에 드는 책을 소개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책 속의 문장을 공유하는 등 책으로 소통하며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책을 읽는 독자로서 문화를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내고 있다.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2022년 9월~2023년 8월) 성인의 종합독서율은 43.0%에 그쳤다. 직전 조사 시점인 2021년 대비 4.5%포인트 줄었다.
성인 연간 종합독서율은 처음 조사가 이뤄진 1994년 86.8%에 달했지만 전자책이 통계에 포함된 2013년(72.2%)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으며 매번 역대 최저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독서량 감소의 원인으로 스마트폰을 통한 쇼츠 동영상, 디지털 콘텐츠 소비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노동 문제를 꼽는다. 실제 독서실태조사에서 독서 장애요인으로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24.4%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런데 60세 이상 노년층의 종합독서율이 15.7%로 2021년(23.8%)보다 크게 줄어든 반면, 20대(19~29세)는 74.5%로 조사 연령 가운데 가장 높은 독서율을 보였다.
이들은 단순히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록하고 공유하는 창작까지 활동 공간을 넓히고 있다. 특히 익숙한 디지털 환경과 기존 활자 매체를 결합하는 형태로 독서 방식을 바꾸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경제 활동에 치중해 독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30대와 40대까지도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독서 문화를 이끌고 있다.
카카오 브런치스토리 오프라인 팝업 전시. 카카오 브런치스토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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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의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브런치스토리에 따르면 우수 창작자를 발굴해 출판을 지원하는 제12회 도서출판 프로젝트 '브런치북' 응모자수는 전년보다 약 20% 늘어난 1만437편의 작품이 접수돼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경쟁률은 1000:1을 넘겼다.
카카오는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의 힘을 전 세계에 알렸듯 많은 창작자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열정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새로 신설된 '소설' 부문 시상에 특히 지원 작품들이 대거 몰렸다. 성수동에서 열린 브런치 스토리 팝업 전시에도 1만명 이상의 방문객이 몰렸다.
국내 최대 북페어 행사인 서울국제도서전에도 젊은 관람객의 발길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6월 열린 도서전 전체 관람객 15만 명 중 70% 이상이 이른바 MZ세대인 20~3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취향과 지적 욕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문화 현상인 텍스트힙은 독서 모임에 이어 도서전 방문, 굿즈 소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4년 젊은 세대 사이에서 새로운 유행을 불러온 독서 문화는 '책꾸'(책 꾸미기)였다. 각종 스티커 등으로 책을 꾸민 후 '#책꾸'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업로드하는 유행이 큰 인기를 끌었다.
텍스트힙과 '책꾸' 열풍에 출판사들이 내놓은 책 꾸미기 에디션과 리커버 에디션. 예스24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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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에 따르면 '책꾸' 관련 용품의 판매가 크게 늘었다. 사생활 보호의 목적으로 사용됐던 북커버는 전년 동기 대비(1.1~12.15) 195.1% 판매가 급증했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과 구간을 표시하는 인덱스·라벨 스티커(93.3%)와 북마크·책갈피(42.8%) 또한 텍스트힙 유행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출시되며 판매가 증가했다.
출판사들도 텍스트힙에 차별화를 줄 수 있는 '책꾸' 열풍에 뛰어들었다.
지난 9월 소설을 모티프로 한 스티커가 동봉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북꾸 에디션)이 출간됐다.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출간한 '책꾸 에디션' 도서가 제공하는 다양한 스티커를 활용해 직접 책을 꾸밀 수 있도록 제작됐다.
MBC 이재은 아나운서의 에세이 '오늘 가장 빛나는 너에게'는 한정판 '책꾸 스티커'를 함께 제공하고, 최근 '필사' 유행에 맞춰 책 안에 메모나 필사를 할 수 있는 여백을 마련했다.
고양이 포토 에세이 '말하는 고양이 호섭 씨의 일일'을 출간한 미래의창 출판사는 직접 '책꾸 리뷰단'을 모집하고 나섰다. 참가자 각자의 취향을 담아 '나만의 호섭이'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젊은 세대 취향을 저격해 감성적인 표지로 바꾼 '리커버 에디션'도 쏟아졌다.
부크크 출판의 '토마토 컵라면' 스페셜 에디션, 문학동네 시인선인 고선경의 '샤워젤과 소다수', 임유영의 '오믈렛', 안희연의 '당근밭 걷기' 베스트셀러 3종 '런치박스 리커버'가 출간되며 판매량 증가를 견인했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도 마지막 시리즈 '안녕 에디션' 출간 시 한정판 어나더 커버(슬립케이스)를 제공해 큰 인기를 끌었다.
작가 한강이 아시아 여성 최초이자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운데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마련된 한강 작가 코너에서 시민들이 작가의 책을 구매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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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텍스트힙을 '지적 허영'이나 '과시적 현상'이라고 깎아 내리기도 하지만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려는 주체 의식이 문화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중과의 소통 창구이자 세상과 연결된 SNS를 통해 책이라는 지적 장치를 시각화 함으로써 과시 욕구에서 더 나아가 자유롭고 개성을 담아낸 적극적 문화 소비를 통해 소중한 것을 공유하는 성취 욕구가 만나 새로운 문화 의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작가 황석영은 한 방송에서 '텍스트힙' 현상에 대해 "자기 콘텐츠를 스스로 채우고 싶어하는 욕구"라고 평가했다.
황 작가는 "그동안 요약본이나 소개글로 읽은 척 하다 보니 콘텐츠 창출이 불가능했다. 창출 하려면 그 콘텐츠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한다"며 "책 읽기는 운동과 같다. 작은 아령부터 시작해 근육을 키우듯이 독서력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12·3 내란 사태'가 비단 출판 시장만이 아니겠지만 도서 매출 급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출판업계에선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상승세를 이어가던 출판 산업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12·3 내란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집회에 한 참가자가 '책 읽다가 뛰쳐나온 활자 중독자 모임' 깃발을 들고 있다. 엑스(X) @fhvkswwillow 캡처.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며 야광봉을 흔들고 있다. 박종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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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열풍을 이끌던 젊은이들이 '응원봉'을 들고 국회로, 남태령으로, 광화문으로 나가고, 시시각각 탄핵과 내란 수사 상황 '속보', '전망' 읽기에 잠 못 드는 밤을 지새우며 SNS와 유튜브에 몰입하고 있다고 한다.
해맑게 웃던 연말연시 회식이 실종되고 문화예술계도 크게 위축되면서 업계의 속이 탄다지만 맘 편히 책을 펼칠 여유가 사라진 시민들은 심리적 트라우마와 정신적 피해자가 됐다. 그럼에도 황석영의 말처럼 책 읽기는 운동과 같다. '알 이즈 웰(All is Well)'. 잘 될 것이다. 그 '단단한 루틴'을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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