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크레바스]<상>1825일의 공포⑤정년연령과 연금 수급연령 불일치…정년 후 소득공백 가속화
부의 연령별 출생아수/그래픽=이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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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내미 대학 들어가면 내가 환갑이 넘는데"
최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늦은 결혼, 즉 만혼(晩婚)의 영향으로 부모의 연령대가 높아진 탓이다. 이 말에는 환갑(60세)이라는 법정 정년을 넘겼을 때 소득공백에 따른 '적자 인생'이 시작되고 자녀의 대학 등록금조차 제대로 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퇴직 후 소득공백을 국민연금으로 바로 채우는 건 불가능하다. 3층으로 구성된 연금제도에서 1층 역할을 하는 국민연금의 수급연령은 올해 기준 63세다. 그마저 2028년 64세, 2033년 65세로 늦춰진다. 제도적으로 5년(1825일)의 소득공백을 예고한다. 2층과 3층인 퇴직연금, 개인연금 역시 노후자금으로 부족하다.
심지어 법정 정년을 넘겨서 자녀 교육비를 걱정해야 할 40대 초보 아빠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앞으로 퇴직 후 소득 크레바스(Crevasse·빙하의 틈)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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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혼의 영향…정년 후에도 미성년자 양육해야 할 부모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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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만 30~59세 정규직 상용근로자 100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에서 자녀가 있는 사람은 총 859명이다. 이 중 정년 연령에 도달했을 때 미성년 자녀가 있는 사람(153명)의 비율은 17.8%다. 정년을 넘긴 이후 자녀의 교육 등 양육비를 책임져야 할 상황이다.
국가 통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통계청의 '출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태어난 23만28명의 아이 중 부(父)의 연령이 40~44세인 아이는 3만5064명(15.2%·이하 연령 미상 포함 비율)이다. 해당 비율은 △2003년 4.1% △2008년 5.8% △2013년 9.2% △2018년 11.2% 등으로 급증 추세다.
지난해 아이를 얻은 40세 이상의 아버지 비율은 19.1%까지 늘어난다. 모두 정년 이후 미성년 자녀를 양육해야 할 사람들이다.
산모의 연령대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2013년 2.5%였던 40세 이상 고령 산모의 비율은 지난해 6.9%까지 증가했다. 이에 따라 출생아 모(母)의 평균연령도 같은 기간 31.8세에서 33.6세로 늘었다. 부모가 동시에 고령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아울러 앞으로 퇴직 후 소득공백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출생아 부모의 평균 연령/그래픽=윤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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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기준 대학생 1명이 연간 부담해야 할 평균 등록금은 682만7300원이다. 본인의 의료비도 걱정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2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의 1인당 의료비 본인부담금은 123만6000원으로 전체 평균(51만3000원)을 압도한다. 여기에 기본적인 생활비까지 노후에 충당해야 한다.
정년 이후 '적자 인생'은 통계로 입증된다. 통계청의 '2022년 국민이전계정'에 따르면 1인당 생애주기 흑자는 43세에 1753만원으로 최대치를 기록하고, 61세에 적자로 전환된다. 적자의 의미는 노동소득보다 소비가 많다는 것인데, 정년 이후 적자로 전환되는 삶의 궤적을 잘 보여준다.
퇴직 후 노후소득을 책임질 국민연금은 크레바스를 더 깊게 만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처럼 정년연령이 연금 수급연령보다 낮은 국가는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손해를 감수하고 노후 안전판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연금을 미리 받는 사람도 생긴다.
국민연금공단의 2024년 8월 기준 국민연금 공표통계에 따르면 조기노령연금 수급자는 92만1308명이다. 조기노령연금은 수급연령보다 최대 5년 일찍 국민연금을 받는 제도다. 1년 먼저 받게 될 경우 연금액이 6% 줄어든다. 5년 먼저 받게 될 경우 온전히 받게 될 국민연금에서 30%를 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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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백 메우려 일하는 중장년층…계속고용 연령 연장 논의는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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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정년을 채우는 건 축복일 수 있다. 55세부터 64세까지 취업 경험자 중 가장 오랜 일자리를 그만둘 당시 평균연령은 49.4세다. 사업부진과 조업중단, 휴·폐업으로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의 평균연령은 50.9세다. 권고사직과 명예퇴직, 정리해고로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의 평균연령은 52.0세다.
이 경우 재취업 등을 하지 않으면 소득공백 상태가 훨씬 길어진다. 중장년층의 재취업이 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중장년층의 고용 환경은 불안정한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55~59세 남성 근로자 중 1년 미만 근속자 비중은 2021년 기준 26.8%다. OECD 국가 중 튀르키예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어떤 식으로든 발생할 수밖에 없는 소득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일하는 중장년층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65세 이상 노인들의 고용률만 하더라도 지난해 37.3%로 전년(36.2%) 대비 1.1%p 상승했다. 2015년 30.4%였던 고령자 고용률은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증가하고 있다.
특히 65세부터 79세까지 고령자 중에서 장래에 일하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57.2%다. 즐거움(37.7%) 때문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있었지만, 생활비 보탬(52.0%)이 주된 이유다. 퇴직 후 소득공백이 노년에도 이어지고, 마지못해 근로소득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노동계와 정치권은 정년 후 계속고용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연령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법정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계속고용의 방식은 정년연장과 정년폐지, 퇴직 후 재고용 등의 방식이 거론된다. 하지만 아직 사회적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은 지난달 정책토론회에서 "계속고용 연령을 연금 수급연령에 맞춰 단계적으로 높이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gustn9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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