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새해 경제정책방향 내놨지만…'불확실성 탓' 재점검·추가 대응 방침
'올해 정치상황 안정' 전제에 "낙관적" 비판도…"시나리오별 대응 서둘러야"
불확실성 (PG) |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정부가 민생 회복과 대외신인도 관리 등에 중점을 둔 새해 경제정책의 청사진 '2025년 경제정책 방향'을 내놨다.
사상 초유의 내수 부진 장기화 상황 개선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위축된 외국인 투자 심리 회복 등을 올해 최우선 과제로 내건 것이다.
하지만 비상계엄이 촉발한 국내 정치 불안이 올해 한국 경제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고 정책 방향을 설계한 것을 두고는 안이한 대응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정치 불안 우려가 크지 않다면서도 1분기 전망을 보류하고 경제 여건을 다시 점검하겠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시장에 혼선을 주고 있다는 뒷말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리더십 부재 상황에서 위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대내외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치적 불안에 금융시장 혼돈 지속 |
◇ 비상계엄에 대외신인도 급락…치솟는 환율
정부는 2일 발표한 '2025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대외신인도 관리'를 올해 경제정책 방향의 주요 내용 중 하나로 담았다.
여기에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이 지금껏 쌓아온 선진국 이미지와 투자 매력도가 크게 훼손됐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정부가 최근 국제기구와 해외 투자자 등을 상대로 한국 경제 상황을 설명하며 수차례 지지·신뢰를 당부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이번 경제정책 방향에 원화용도 외화대출 완화 등 원화 강세 당시 만들어진 규제를 완화하고 유동성 공급 대책을 포함한 것은 이런 외환 수급 불안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에서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목표로 한 밸류업 세제 지원도 '대외신인도 관리'를 위한 세부 대책 중 하나로 제시됐다. 주식시장을 활성화해 외국인 자본을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정부의 이런 안간힘과 별개로 근본적인 해법은 결국 정치권에 있다는 것이 정부 안팎의 시각이다. 정치적 악재가 계속되는 한 어떤 정책 대응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2ㆍ3 비상계엄 국무회의 (PG) |
비상계엄 사태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강대강 대치 구도를 낳았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릴레이 탄핵 소추'로 이어지면서 파장을 키웠다.
내란 수사가 정점을 향해가면서 조금씩 베일을 벗는 비상계엄의 후진적이고 비상식적인 실체도 '선진국 한국'의 이미지를 갉아먹고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공소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 끌어내",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 등의 지시를 군과 경찰에 직접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폐업 2006년 이후 최다…음식·소매업 폐업률 높아 |
◇ '백약무효' 내수 부진…추경 없이 반전 가능할까
수출 호조세에도 여전히 '냉골'인 내수를 진작하기 위한 '민생경제 회복' 대책은 이번 경제정책 방향에서 첫 번째 과제로 이름을 올렸다.
재화소비 지표인 소매판매액 지수는 2022년 2분기 이후 10개 분기 연속 최장 감소세다. 그나마 내수를 지탱하던 서비스 소비마저 최근 둔화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상반기 재정 신속집행 규모를 전년보다 5조원 이상 늘리고 기금 사업도 2조5천억원 확대·변경해 민생을 지원할 계획이다.
자동차 개별소비세 30% 인하를 포함한 내구재 소비촉진 지원, 상반기 추가소비분 20% 추가 소득공제 계획도 내놨다.
건설경기 악화의 주된 원인인 높은 공사비를 현실화하기 위해 공공계약·총사업비 관리 등 제도도 개선한다.
하지만 기금사업계획 변경 등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정책이 기존의 내수 진작책을 확대·반복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사상 초유의 내수 부진 상황을 반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까지 나서 '추경론'에 불을 지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존 대응책에는 한계가 불가피한 만큼 기존의 긴축 기조를 벗어나 재정이 적극적으로 내수 진작의 마중물을 할 때가 왔다는 논리다.
이 총재는 지난달 18일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이 성장률을 0.06%p(포인트)가량 줄이는 긴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하방 압력이 커진 만큼 경기를 소폭 부양하는 정도의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2기 준비하는 기업들…'미국통' 전면에(CG) |
◇ 불확실성 크다면서 "탄핵소추 영향 적다" 낙관적 전망
정부는 잇따른 추경 요구를 의식한 듯 오는 1분기 경제 여건 전반을 재점검한 뒤 필요하면 '추가 경기 보강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간 정부가 일관되게 부인해 온 추경 편성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가 한해의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불과 몇개월 뒤 '경기 재점검' 계획을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미국 신행정부 출범, 국내 탄핵정국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크고 위중하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의 탄핵 소추로 정권 교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재정 긴축 기조를 고수할지를 둘러싼 정부의 고민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리더십 부재 상황에서 새 정부 출범이 현실화하기 전까지 최대한 '현상 유지'를 할 수밖에 없는 정부의 답답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연간 경제정책 방향과 함께 1분기 재점검 계획을 공식화한 것 자체가 시장 경제주체들에 불확실성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당장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통한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정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와 국가 애도기간 선포 등 거듭된 악재로 크게 위축된 소비 심리는 언제 회복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장기화 관측이 나오는 고환율 기조는 이미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한국 경제의 부담 요인이다.
고공행진 중인 환율은 당장 2∼3개월 뒤 원자재 가격과 가공식품 인상 등으로 가시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 겨우 1%대로 내려간 물가 상승률이 다시 불안해지면 소비는 더 위축될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환율은 수입 물가에 바로 영향을 준 뒤 1∼3개월의 시차를 두고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로 영향이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국회, 추경안 (PG) |
정부가 올해 성장률을 1.8%로 제시하면서 '국내의 불안한 정치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점도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정부는 과거 탄핵소추 상황이 실질 경제에 미친 영향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에 근거해 올해 경기 전망에는 정치 불안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비상계엄·탄핵소추 등 상황은 작년 성장률 전망에 반영됐다.
김범석 기재부 1차관은 "과거 사례를 토대로 올해 경기 전망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잘 정리가 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계엄·탄핵에 따른 불확실성은 작년 전망에 반영이 돼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낙관론과 달리 이번 탄핵 정국의 파장은 과거 노무현·박근혜 정부 때와 다를 수 있다는 경고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한은은 지난달 15일 과거 두 차례 대통령 탄핵 사태와 달리 이번 탄핵은 통상 환경과 글로벌 경쟁 등의 측면에서 불리한 만큼 탄핵 관련 갈등이 길어지면 타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거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때는 중국 경기 특수와 반도체 호황이 있었지만 지금은 호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부가 1분기 재점검 방침을 공식화한 것은 그만큼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미"라며 "불확실성이 현실화하는 정도에 따라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roc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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