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유불리 말고 민주주의
국민, 투표로 찬성 반대 의사만 가능
국민 참여의 길 넓힌 유럽 국가들
국회에 개헌특위 상시 가동 등 필요
편집자주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내란 사태'라는 역대 최악의 헌정 위기로 한국 사회는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 인물의 문제인가, 제도의 문제인가, 두 문제가 만난 비극인가. 한국일보는 2025년 신년을 맞아 전문가들과 현행 대통령제 운영 방식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이를 담은 '대통령제, 새로고침' 시리즈를 3회에 걸쳐 보도한다.1987년 여야 합의로 만든 헌법 개정안 공고문이 붙어 있는 안내판 앞에 선 시민들이 내용을 한 자 한 자 읽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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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국민의 것이고, 개헌은 국민의 몫이다. 하지만 현행 헌법의 개정 요건과 절차는 국민 의사를 충분히 모으기 어려운 구조다.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이 문제가 될 때 정치권이 개헌 카드를 꺼내들고, 국민 분노가 잠잠해지면 다시 모른 체하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다.
헌법을 바꾸려면 큰 산을 세 번 넘어야 한다. ①국회 재적의원 과반수(151명) 또는 대통령이 헌법개정안을 발의하고 ②국회 재적의원 3분의 2(200명) 이상이 찬성 의결하면 ③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가 참여하는 국민투표를 치르는 게 헌법이 규정하는 개정 절차다. 국민 찬성이 과반이 되면 비로소 개헌은 완성된다. 일반 법률보다 엄격한 '경성헌법주의' 절차다.
이 같은 절차는 '불멸의 독재'를 꿈꾸던 권력자들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독재를 위해 헌법을 바꿨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다짐'이자 '안전장치'인 셈이다. 다만 1980년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 정당성을 확보하며 '7년 단임 대통령 간선제'를 채택한 제8차 개헌 때 만들어졌다는 건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국민 참여 명문화 없어… 찬반 의사만 확인
헌법 개정 절차. 그래픽=신동준 기자 |
절차만 본다면 현재 헌법 개정 절차는 꽤나 민주적이다. 최종 결정을 대의기관인 국회와 국민(국민투표)이 함께 하도록 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의가 반영될 통로가 매우 좁다는 데 이견은 별로 없다. 국회 또는 대통령의 개정안 발의 전 단계라 할 수 있는, 헌법개정 기초안 마련과 심사절차 등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견 수렴 의무가 없다는 얘기로 국민은 국회를 통과한 헌법 개정안에 찬성과 반대 의견만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1987년 제9차 개헌 당시에도 문제가 됐다. 당시 개헌은 집권당인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가 6·29 선언으로 직선제를 수용하면서, 여야가 '8인의 정치회담'을 통해 100여 개의 쟁점에 합의를 하면서 만들어졌다. 국회표 헌법 개정안이 만들어지고, 국민투표가 이어졌는데, 이에 필요한 시간은 고작 넉 달이었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면 절차적 정당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신경설 신민당 의원은 "공청회를 한 번만이라도 서울 지역에서 열고 제안 설명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석봉 민주당 의원은 "공청회 한 번 개최하지 않고 정치인 8명이 밀실에서 만든 불행한 헌법"이라고 직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은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국민 열망이 거세다는 이유로 철저히 무시됐다.
"헌법 바꾸는 절차도 민주적이어야"
1987년 9월 1일, 개헌을 위해 여야 8인정치회담이 꾸려져 권인혁(앞줄 왼쪽) 민정당 대표와 이중재(앞줄 오른쪽) 민주당 수석대표가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민정당 윤길중·최영철·이한동 의원, 민주당 이용희·박용만·김동영 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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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개헌 의제 논의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정치권이 개헌 의제를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절차적 불투명성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프랑스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헌법 개정 시 국민투표로만 국민이 참여할 수 있었다. 다만 2019년 헌법 개정 때 국민 의견을 초기 단계부터 반영한 사례가 있다. 2018년 '노란조끼시위(유류세 인상을 계기로 한 대정부 시위)'가 기폭제가 돼 사회정책 전반에 대한 국민 분노가 거세지면서, 프랑스 정부가 '국민대토론회'를 열었고, 그 내용을 헌법 개정안에 반영토록 한 것이다. 독일은 헌법 개정 시 사회단체 등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는 동시에 의회에서 전문 심의절차가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이제는 낡은 개헌 절차를 손질할 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21대 국회에서 발의했다가 무관심 속 폐기된 '개헌절차법 제정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개헌절차법은 △국회 '헌법특별위원회' 상설화 △시민 500명 이상 참여하는 헌법개정국민참여회의 구성 △공론조사 의무화 등 국민 참여 방안을 구체화했다. 김종민(무소속) 의원은 "국민의 삶과 의식이 1987년에 비해 많이 변화했는데 헌법만 그대로"라며 "국민이 참여해 장기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절차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가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를 상시 가동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정치학자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전 국회미래연구원 초빙 연구위원)는 "공론장에서는 개헌 방향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오가고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각 당이 생각하는 개헌 방향부터 확실하게 표명하면 시민사회가 숙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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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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