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09 (목)

“을사년인데 제가 무섭다고요?”...뱀의 독으로 이런 약까지 만든다는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뱀, 인간에게 유익한 존재
3천종 중 10%는 독 가져
사람 신경섬유 성장 촉진하고
강력한 진통제로 활용되기도

다리 없이 이동하는 움직임
첨단과학에 영감 주기도
인명구조에도 ‘뱀 로봇’ 활용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을사년(乙巳年) 푸른 뱀의 해가 밝았다. 많은 사람이 새해를 맞아 각자 목표를 세우고 신년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감과는 별개로 뱀이란 동물 자체는 인간에 유쾌하진 않은 존재다. 두려움과 공포에 몸서리치는 이들도 많다. 뱀을 보면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는 ‘뱀 공포증’ 환자가 10명 중 1명에 이른다는 추정까지 있을 정도다. 뱀 공포증은 전 세계 사람들이 겪는 가장 흔한 공포증 중 하나로도 꼽힌다.

하지만 과학계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알고 보면 뱀은 역사적으로 과학자들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뱀독은 신경과학 연구를 위한 시약으로 쓰인다. 독을 활용해 인간의 신경성장인자(NGF)를 밝혀낸 연구는 노벨상을 받았다. 독에서 추출한 단백질 복합체는 강력한 효과를 지닌 진통제 신약으로도 개발 중이다.

약 1억 2000만년 전 처음 지구상에 등장한 뱀은 그간 체화한 비결도 아낌없이 인간에게 전수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여러 지형에서 안정적 움직임과 속도를 유지하는 이동방식 등 뱀의 특별한 움직임을 모사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배관을 타고 올라가 화재 현장의 생존자를 탐지하는 재난 대응이나 인체 내부를 돌아다니는 의료용, 우주탐사용 등으로의 활용 가능성이 기대된다.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뱀은 뱀아목에 속하는 파충류를 총칭한다. 지구 온대와 아열대, 열대 지역에 약 3000여 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극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세계 대륙에 모두 분포한다.

전체 종류 중 약 10% 정도가 독을 지닌 것으로 분석된다. 아시아에서는 킹코브라, 아프리카에서는 블랙맘바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살모사 등이 유명하다.

위험한 뱀독이지만 신경과학 분야에서는 훌륭한 시약이다. 우리 몸의 신경세포들은 수많은 신호가 오고 가며 기능을 한다. 신호는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주고받으며, 각 세포막에는 신경전달물질을 감지하는 ‘수용체’란 것이 존재한다. 수용체가 신경전달물질 감지 안테나 역할을 하며 신호를 전달한다.

대만국립대 연구팀은 1963년 뱀독을 활용해 근섬유를 조절하는 신경세포의 수용체를 최초로 발견했다. 대만과 중국 남부에서 발견되는 독사인 ‘줄무늬모양우산뱀(학명 Bungarus multicinctus)’의 독에 들어있는, 근육을 마비시키는 독소인 ‘알파-붕가로톡신’이 특정 수용체와 강하게 결합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수용체만 정제하는 데 성공했고, ‘아세틸콜린 수용체’란 이름을 붙였다. 아세틸콜린은 심장 조직에서 심박수를 낮추는 등의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아세틸콜린 수용체는 오늘날의 신경세포 연구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뱀독은 미국 생화학자 스탠리 코헨과 이탈리아 신경학자 리타 레비 몬탈치니에게 노벨상 수상의 영광도 안겼다. 이 두 과학자는 신경계의 발달과 유지, 재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인 ‘신경성장인자’를 발견한 공로로 198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들은 미국 남동부에 서식하는 ‘모카신 뱀(학명 Agkistrodon piscivorus)’의 독이 신경섬유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발견 이후 이 독을 활용해 NGF를 정제하는데까지 성공했다.

NGF는 암을 비롯한 알츠하이머병, 각막 궤양, 녹내장 등 각종 질병 치료를 위해 현재 활발히 연구되는 분야다. 시장분석기관 데이터브릿지마켓리서치에 따르면 NGF 관련 세계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10억7000만달러(약1조5793억원)로 집계된다. 203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약 7.9%를 보이며 19억8000만달러(약2조9224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뱀독은 통증 연구 분야에서도 진전을 가져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지난 2011년 독사에게 물리면 고통을 느끼는 이유를 밝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텍사스 산호뱀(학명 Micrurus tener)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뱀독이 통증과 관련된 신경세포를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한 해 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팀은 반대로 블랙맘바의 독에서 추출한 물질이 이 신경세포의 활성화를 막는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내놨다. 강력한 진통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모르핀이나 날록손 등 기존 마약성 진통제보다 더 높은 진통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강력한 천연 진통제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뱀독 연구가 이제 걸음마 수준이라고 본다. 뱀독에는 여러 종의 동물들의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도록 특별히 진화한 다양한 물질들이 존재한다. 아직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독사 종류가 많은 만큼 연구가 이어진다면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을 발굴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고혈압 치료제 ‘캡토프릴’, 심근경색증 치료제 ‘엡티피바타이드’, 혈액응고제로 쓰이는 ‘바트록소빈’ 등도 뱀독에서 유래한 약물이다. 고혈압이나 뇌졸중은 물론 전립선암과 난소암 등 암치료제로서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뱀독 외에 뱀이 과학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이유는 특이한 움직임 때문이다. 방향에 따라 물체의 물리적 성질이 다른 것을 의미하는 ‘비등방성’의 특징을 보인다. 다리 없이도 어떤 지형이라도 특유의 움직임을 보이며 앞으로 나아간다. 나무를 타고 오르기도 하고 물에서 헤엄치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이런 탁월한 움직임을 모사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움직임의 비밀이 뱀 피부의 비늘에 있다고 봤다. 이 비늘을 모사한 로봇을 지난 2018년 개발했다. 바닥이 매끄러우면 비늘을 눕혀 미끄러지듯 이동한다. 바닥이 거칠면 비늘을 세워 이동을 위한 지렛대처럼 활용한다. 연구팀은 로봇의 크기를 줄여 복강경 치료 등 의료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외계 생명체 탐사를 위해 길이 4.4m의 뱀 로봇을 개발 중이다. 뱀처럼 기어가 상체를 들어 올리고 좌우로 움직이는 등의 동작이 가능하다. 생명체 존재 가능성이 큰 토성의 위성인 ‘엔켈라두스’에 보낼 예정으로 올해 시제품 제작을 완료했다. 엔켈라두스와 비슷한 지형에서 실험을 이어갈 예정이다.

국내 연구팀도 뱀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수직으로 놓인 배관 외부를 휘감아 기어오르며 재난 현장에서 머리에 달린 카메라로 사람을 탐색하는 뱀 로봇을 2011년 제작한 바 있다. 한국기계연구원은 뱀 비늘을 모사해 신축성 배터리를 2021년 개발했다. 소프트 로봇이나 착용형 웨어러블 기기 등에 적용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휘어지고 늘어나도록 한 배터리다.

뱀은 파충류 중 가장 특수하게 진화한 동물군으로 꼽힌다. 몸이 가늘고 길며, 다리나 귓구멍, 눈꺼풀이 없고 혀는 두 가닥으로 갈라졌다.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성장이 매우 빠르다는 점이다. 심지어 음식을 전혀 섭취하지 않아도 몇 달을 버티고 몸집도 자란다.

과학자들은 이런 이유로 뱀을 미래식량으로도 주목하고 있다. 호주 시드니 맥쿼리대 연구팀은 지난 3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비단뱀이 성장 속도가 빠르고 사료 효율도 높아 가축 등 기존 축산시스템을 보완할 지속 가능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버마비단뱀의 하루 체중 증가량은 최대 42.6g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27일 동안 먹이를 주지 않아도 체중 감소량이 평균 0.00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비단뱀 사육이 기존 축산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식량 생산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