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10 (금)

[시니어비즈 인사이트]부양 대상이 아닌 가치 창출의 주역으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김정근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아시아경제

인구 고령화로 인해 우리가 가장 많이 걱정하는 부분은 증가하는 노인 규모 그 자체가 아니다.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의 증가이다. 저출산으로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급속하게 감소하는데 부양해야 할 고령자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사회적·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 고령자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경제활동을 많이 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22년 기준 37.3%로, OECD 평균 13.4% 대비 약 3배 높고, 일본 32.6%, 프랑스 4% 등 다른 선진국들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들을 만나보면 자신을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약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형편에 따라 열심히 경제활동에 참여하여 사회적 부담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몸이 불편해도 ‘폐지 줍기’를 하며 사회에 부담 주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고령층이다.

특히 과거보다 교육 수준도 향상되고 건강 상태도 나아진 베이비부머 세대가 2020년부터 고령층에 합류하면서 우리 사회는 이젠 양적으로 노인인구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경험과 지식을 갖춘 고령자의 증가를 경험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이젠 단순히 경제활동 참가 수치만을 증가시키는 데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를 증대시키는 고령층 일자리의 질(quality)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과거 평균 기대수명 60~70대였던 시기에 만들어진 제도와 관념 속에서는 초고령사회에 맞는 시니어비즈니스가 싹틀 수가 없다. 고령층이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에서는 고령층을 부양 대상자가 아닌 생산자로, 기여자로 바라보는 인식과 이들을 활용하는 시니어비즈니스의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 오늘은 고령자를 도와주고 부양해야 하는 복지대상자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을 할 수 있는 생산자로 활용한 시니어비즈니스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고령층의 능력을 활용한 ‘이로도리(いろどり’라는 일본의 ‘마을 비즈니스(community business)’ 모델이다. 일본 도쿠시마현(島?)의 가미카쓰초(上勝町)는 토지의 86%가 산지인 산간마을로 65세 이상 고령자가 52%를 차지하는 곳이었다. 일본 초밥에 들어가는 멋진 잎사귀를 제공하는 ‘이로도리’라는 기업이 1999년 설립되면서 이 산간마을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평생 살았던 고령자들은 지역의 다양한 나무들의 종류와 위치, 계절에 따른 나뭇잎들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뭇잎 전문가들이었다. 일본 음식점들은 계절에 따라 음식 장식으로 들어가는 나뭇잎이 필요했고, 이곳의 고령자들은 이 수요자의 욕구를 채워줄 준비가 돼 있었다. 이에 ‘이로도리’는 고령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가미카쓰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지역에 오래 거주한 고령자가 수요처에 맞는 나뭇잎을 수집하여 모으면 이를 전국 식당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기본 IT 기기 교육을 받은 고령자는 태블릿 PC를 활용해 일본 음식점들의 요리 장식을 위해 필요로 하는 각종 나뭇잎을 수집하는 일을 했다. ‘이로도리’를 설립한 이후 인구 과소화와 고령화로 소멸을 걱정했던 마을에 변화가 생겼다. 거주하는 고령자의 소득은 증가하기 시작했고, 관련 비즈니스를 배우려는 청년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고령자의 재능과 경험과 사회적 욕구를 연결한 시니어비즈니스 아이디어가 소멸하는 마을을 살린 것이다.

두 번째는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매킨지(McKinsey)'가 운영하는 독립적인 비영리 프로그램인 싱가포르의 '제너레이션(Generation)'이다. 제너레이션은 원래 세계 16개국에서 취업이 어려운 대상자들의 경제적 이동성을 증진한 프로그램인데 싱가포르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사와 협력해 교육생의 40%를 중장년으로 선발했다. '제너레이션 싱가포르(Generation Singapore)'는 2018년부터 중년층의 꼼꼼한 성격과 사회생활에서 배운 경력을 활용해 데이터 수집, 정보처리, 오류수정 등의 IT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주니어 데이터엔지니어 과정’을 운영했다. 이를 통해 50%의 중장년들이 최근 각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분야에 새롭게 취업하는 게 가능해졌다.

셋째는 2013년부터 고령자의 인생 3막을 위한 기술교육과 관련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한국의 '에버영코리아(Ever Young Korea)'다. 에버영코리아는 55세 이상 고령자의 잠재능력을 활용해 이윤을 창출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꼼꼼하고 침착한 고령자의 특징을 활용해 디지털 콘텐츠를 모니터링하는 사업, 네이버지도에 노출된 개인정보를 블러링(Blurring)하는 작업, 카페나 블러그의 불량게시물을 걸러내는 업무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단순한 관련 업무들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쉽게 떠났지만, 고령자들은 책임감을 갖고 성실히 참여하면서 에버영코리아는 고령자들의 가치를 활용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네이버 클라우드와 협약해 중장년 1인 가구의 안전을 담당하는 ‘AI케어콜 서비스’를 모니터링하고 지원하는 인력으로 고령층이 참여하고 있다.

푸른 뱀의 해, 을사년 2025년이 시작됐다. 2025년은 우리나라 노인인구가 1000만명을 상회하고 전체 인구에서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해이다. 더불어 뱀의 지혜로 인구구조의 변화를 창의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증가하는 노인 인구의 경험, 지식, 그리고 잠재력을 최대한 살려 고령층이 부담이 아닌 우리 사회의 가치있는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니어비즈니스 전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새 술은 꼭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이유다.

김정근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