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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청계광장]선물과 시간의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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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연말연시, 많은 선물이 오가는 시기다. 가까운 사람, 또 고마운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선물을 고민하며 나서는 쇼핑도 나름 즐겁다. 그러나 요즘은 모두가 애용하는 모바일 메신저에서 한두 번의 클릭으로 선물하기가 가능하니 그런 즐거움을 편리함이 대체한다. 가벼운 음료와 같은 기프티콘은 꼭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부담 없이 주고받을 수 있어 인기가 있다.

그러나 부담 없는 선물이라는 게 쉽지는 않다. 가벼운 선물을 받았더라도 메신저가 친구의 생일을 알려주면 나도 그냥 지나갈 수는 없다. 이럴 때 둘러보는 모바일 '선물하기'는 고급한우나 장신구, 해외명품까지 챙겨놓으니 이건 그냥 가벼운 서비스가 아니구나 싶다. 받은 대로 되돌려주고 선물의 가격까지 신경써야 한다면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본래 의미는 이미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받은 경조사비를 액수까지 적어놓는 것, 인터넷에서 적정한 축의금을 검색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선물의 역사와 의미는 다양하게 추적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물'(선물)은 원래 순수한 '줌'(giving)을 뜻한다. 보답을 바라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필요없기에 남에게 준다면 그것도 진정한 선물이 아니다. 선물은 내게도 소중한 무언가를 본전이나 이해(利害)를 따지지 않고 주는, 경제논리와 무관한 순수 행위다.

선물과 비슷하게 작동하는 것이 용서다. 저질러진 잘못은 어떤 방식으로든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라 그 피해의 완전한 해소나 보상을 조건으로 하면 진정한 용서는 불가능하다. 법적으로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보상을 지시하는 것도 피해자가 용서를 결심하도록 도와줄 수는 있어도 그 자체가 용서는 아니다. 그것은 남이 대신 해줄 수 없고 조건에 따라 일률적으로 행해질 수도 없다. 용서는 남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잊어주겠다는 다짐에 가깝기에 진실된 선물만큼이나 고귀하다.

조건 없는 선물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줌'을 통해 형성되는 관계에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힐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가장 극단적인 선물의 한 사례인 희생제의는 인류 문명사에서 유구하다. 대부분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소중한 목숨을 봉양하는 일견 신성한 의식이었지만 실제로는 외지인이나 그 집단에서 배척된 타자를 숭고한 존재로 포장해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에 지나지 않았다. 고대 아즈텍인들은 전쟁포로 중 희생자를 선택해 일정기간을 마치 왕처럼 극진히 모신 후 제단으로 올려보냈다고 한다. 독일어의 '선물'(das Gift)이라는 단어에 담긴 '독'(毒)의 의미를 떠올려보라. 왕처럼 온갖 대접을 받는다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결국 스스로를 해치는 길로 빠뜨리는 것이 선물이라는 독이다.

이제 누군가의 생명을 공양하는 문화는 없지만 여전히 선물은 상호관계와 유대감을 쌓아주며 인류공동체의 기반이 된다. 그 내용이나 값어치와 상관없이 순수한 교환의 행위로서 그러하다. 공동체 안에서 시간을 함께 나누는 것은 어쩌면 가장 순수한 선물 행위다. 시간은 한정되고 소진되는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가치가 있다. 또한 남을 위해 쓸 수는 있어도 그냥 줄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시간은 나를 위한 선물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짧은 만남을 위해 긴 시간을 이동하곤 했다는 이야기는 즐거운 추억담이다. 출산이나 육아처럼 가족에게 헌신한 시간들도 지나고 나면 다시 올 수 없는 행복한 기억이 된다.

물론 선물의 시간도 독으로 변할 수 있다. 그 시간에 대한 대가를 바랄 때 만은 아니다. 나도 모르게 휩쓸려 지나간 시간이 주는 아쉬움과 후회가 더 크다. 하지만 시간은 아낀다고 남아 있지 않다. 현재에 충실하고 고통이든 즐거움이든 후회 없이 주고받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새해에는 그 나눔의 시간이 좀 더 즐거움으로 채워지길 바라본다.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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