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01 (수)

[여적] 세밑의 주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신년 운세 보기가 아주 간편해졌다. 사주 사이트에 가서 30초당 1000~1500원을 내면, 무슨무슨 도령·선사·선녀·보살 같은 이름을 내걸고 신점을 봐주는 무속인들과 전화 연결이 된다. 젊은이들은 사주·타로 카페도 즐겨 찾는다. 타로 카페에서는 질문 1개당 1만원씩 받고 답을 해주고, 인스타그램에 ‘사주팔자’를 검색하면 유형에 따른 성격과 성향을 분석해주는 콘텐츠가 쏟아진다.

새해 운세를 점치는 것은 흔한 세밑 풍경이지만, 올해는 유독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용하기로 소문났거나, 방송 출연으로 이름을 알린 무속인들은 벌써 5월까지 예약이 꽉 찼다는 말도 들린다. 대한민국이 ‘샤머니즘의 나라’가 됐다는 한탄이 나올 만큼 정치인들의 ‘주술 스캔들’이 연일 뉴스를 뒤덮고, 무속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 여파일 수 있다.

돌이켜보면, 대선 토론에 나온 유력 대통령 후보 손바닥에 선명하게 그려진 ‘王’자는 지금 이 사태의 확실한 전조였다. 정권 초기부터 천공·건진 법사와 김건희 여사 연관설이 불거졌고,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불렀다는 명태균도 모자라, 비상계엄 사태에 민간인으로 관여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까지 점집을 운영하고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군인들의 운명을 점치러 다녔다는 것 아닌가.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혼미해질 정도다. 한덕수 총리의 부인도 무속에 심취해 있고 김 여사와 끈끈한 관계였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니, 도무지 권력가의 무속 얘기가 끝이 없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은 인과관계로 굴러가는 사회적 영역과 샤머니즘의 영역을 구분할 줄 안다. 취업·결혼운 등 신년 운세를 보는 것은 일종의 ‘놀이’거나, 혹은 불안한 미래 속에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얻고 싶어서다. 연말 운세를 보는 사람이 실제로 예년보다 늘어났다면, 그것은 계속되는 경기 불황에 윤석열 내란 사태로 불확실성이 덮친 데 따른 시대적 요인 때문일 것이다. 예로부터 역술인과 무속인 집 문턱을 많이 넘는 이는 늘 미래가 궁금한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최고 권력자부터 무속에 심취하고, 그들과 연 있는 법사·선사들이 판치고, 주술 얘기가 넘치는 세밑의 나라가 씁쓸할 뿐이다.

경향신문

지난 23일 오전 경기 안산시 상록구 소재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차린 점집 앞에 제사 용품들이 쌓여 있다. 이곳에서 비상계엄 선포 후 군부대가 배치될 목표지와 배치 계획 등이 적힌 수첩 등이 발견됐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유진 논설위원 sogun77@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계엄, 시작과 끝은? 윤석열 ‘내란 사건’ 일지 완벽 정리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