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운세를 점치는 것은 흔한 세밑 풍경이지만, 올해는 유독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용하기로 소문났거나, 방송 출연으로 이름을 알린 무속인들은 벌써 5월까지 예약이 꽉 찼다는 말도 들린다. 대한민국이 ‘샤머니즘의 나라’가 됐다는 한탄이 나올 만큼 정치인들의 ‘주술 스캔들’이 연일 뉴스를 뒤덮고, 무속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 여파일 수 있다.
돌이켜보면, 대선 토론에 나온 유력 대통령 후보 손바닥에 선명하게 그려진 ‘王’자는 지금 이 사태의 확실한 전조였다. 정권 초기부터 천공·건진 법사와 김건희 여사 연관설이 불거졌고,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불렀다는 명태균도 모자라, 비상계엄 사태에 민간인으로 관여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까지 점집을 운영하고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군인들의 운명을 점치러 다녔다는 것 아닌가.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혼미해질 정도다. 한덕수 총리의 부인도 무속에 심취해 있고 김 여사와 끈끈한 관계였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니, 도무지 권력가의 무속 얘기가 끝이 없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은 인과관계로 굴러가는 사회적 영역과 샤머니즘의 영역을 구분할 줄 안다. 취업·결혼운 등 신년 운세를 보는 것은 일종의 ‘놀이’거나, 혹은 불안한 미래 속에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얻고 싶어서다. 연말 운세를 보는 사람이 실제로 예년보다 늘어났다면, 그것은 계속되는 경기 불황에 윤석열 내란 사태로 불확실성이 덮친 데 따른 시대적 요인 때문일 것이다. 예로부터 역술인과 무속인 집 문턱을 많이 넘는 이는 늘 미래가 궁금한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최고 권력자부터 무속에 심취하고, 그들과 연 있는 법사·선사들이 판치고, 주술 얘기가 넘치는 세밑의 나라가 씁쓸할 뿐이다.
지난 23일 오전 경기 안산시 상록구 소재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차린 점집 앞에 제사 용품들이 쌓여 있다. 이곳에서 비상계엄 선포 후 군부대가 배치될 목표지와 배치 계획 등이 적힌 수첩 등이 발견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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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논설위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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