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에이즈에 걸린 여성을 사랑한 순박한 시골 청년의 순애보를 그린 영화 '너는 내 운명' 실제 주인공들의 근황이 전해졌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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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황소정 인턴 기자 = 에이즈에 걸린 여성을 사랑한 순박한 시골 청년의 순애보를 그린 영화 '너는 내 운명' 실제 주인공들의 근황이 전해졌다.
27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너는 내 운명'의 실제 주인공 남편 박부현씨가 출연했다.
1999년 봄, 일만 하다 혼기를 놓친 39살 박씨는 후배의 소개로 만난 구씨에게 첫눈에 반했다.
박씨는 "사람이 귀엽게 생겼더라. '설마 이런 여자가 나한테 오겠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예뻤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25살이었던 구씨는 박씨의 집에 놀러 왔다가 그대로 같이 살게 됐다. 주위에서는 "여자가 너무 급하게 눌러앉는 게 수상하다. 나이 차이도 큰데 여자가 다른 거 노리는 거 아니냐"며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주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두 사람은 훗날 멋진 결혼식을 약속하며 냉수 한 그릇에 초 하나를 세우고 나란히 앉아 둘만의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박씨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며 "'그 여자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두 사람은 봄에는 오토바이 타고 벚꽃놀이를 즐기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을 서로에게 끼얹으며 웃고, 가을에는 단풍 구경을 가는 등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비싼 옷, 값나가는 보석은 못 해줘도 오순도순 함께 있는 것만으로 큰 기쁨이었다.
그러던 중 구씨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신이 결혼한 적 있고 딸이 있다는 것. 사랑에 빠진 박씨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내의 고백에 박씨는 "괜찮다. 다 지난 일 아니냐"며 감쌌다.
박씨는 조금씩 돈이 생길 때마다 아내에게 건넸고, 아내는 돈을 가지고 밖에 나갔다 올라왔다. 박씨는 아내가 딸을 보러 갔을 것으로 생각하며 묵묵히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나 구씨를 향해 대뜸 고함을 지르더니 욕설을 내뱉었다. 알고 보니 남성은 구씨의 전남편이었다.
박씨는 "속이 뒤집어지는 입장이었다. 오장육부가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며 "원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니 돈이라고 하더라. 그럼 돈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소 한 마리 값을 줘야겠다고 그러더라"고 설명했다.
결국 박씨는 애써 키운 소를 팔아 그 돈을 남성에게 건넸다.
그런데 얼마 뒤 박씨는 보건소를 통해 아내가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고, 구씨는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갔다. 주위에서는 구씨를 잊으라고 했지만, 박씨는 사라진 아내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1년 반 뒤 박씨는 아내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경찰서로 향했다. 구씨는 가출 후 일자리를 구하다 어떤 남자에게 속아 차에 탔다가 윤락가에 팔려 갔다고 말했고, 집을 나간 이유에 대해서는 남편에게 병을 옮길까 싶어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이후 구씨는 2000년부터 1년 7개월 동안 전남 여수의 윤락가에서 윤락행위를 해온 혐의로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고 독방에 수감됐다.
박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왕복 4시간을 달려 매일 교도소로 면회를 갈 정도로 아내를 향한 마음은 여전했다. 두 사람은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둘만의 미래를 다시 꿈꿨고 편지도 주고받았다.
기다림 끝에 교도소에서 출소한 구씨와 박씨는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은 "우리 열심히 살자. 남 의식하지 말고"라며 "우리끼리만 얼굴 보고 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구씨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해 집에 들어오기를 주저했다. 결국 두 사람은 농사일과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도시에 방 한 칸을 잡았다. 에이즈 가족이라는 딱지를 단 채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고, 두 사람은 박스를 주우며 작은 장사를 시작했다. 소박한 시작이었으나 두 사람은 그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출소한 지 6년이 지난 2009년, 박씨와 구씨는 만난 지 10년 만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행복도 잠시 구씨는 또다시 집을 떠났다. 박씨는 행방불명된 아내가 돌아오기만을 묵묵히 기다렸다.
5개월 뒤 박씨는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구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박씨는 "번개가 엄청나게 친 날이다. 비도 오고 밤에. 그런데 누가 왔는지, 문을 두드리고 이러는데 아내가 왔는가 싶어서 문을 몇 번을 열어봐도 없더라. 그날따라 자꾸 이상한 번호가 뜨더라. '이게 무슨 번호고 모르는 번호인데 받아서 뭐 하겠느냐' 싶은 마음이 들어서 내버려뒀는데 계속 전화가 들어오더라"며 말했다.
이어 "전화를 받아보니까 '김해 경찰서 누구 경찰관이다. 어디 병원 빨리 가보셔라. 구씨가 죽었다'고 하더라"며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 갔는데 가보니까 처량하게.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많이 난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눈물밖에 안 난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여전히 아내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특히 구씨가 가장 좋아했던 들국화를 보면 항상 구씨가 떠오른다고.
들국화 꽃다발을 안고 구씨가 잠든 곳을 찾은 박씨는 "잘 지냈나. 보고 싶었다. 열심히 살자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hwangs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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