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
12월 21일 남태령 고개에서 보낸 28시간은 탄핵의 광장을 삶과 세상을 바꾸는 힘이 광장에 나온 우리에게 있다는 걸 보여줬다.
먼저, 남태령에 모인 시민들은 서로가 겪고 있는 고통을 마주하고 공감했다. 그곳에서 여성들은, 퀴어들은, 노동자들은 농민이 되었다. 각자의 삶과 농민들의 투쟁을 연결시켰고 우리가 바꾸고 싶은 세상에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한 존재로 존재했다.
둘째, 인적이 드문 남태령역에 사람들이 모이고 핫팩과 간식과 음료 등 후원물품이 쏟아지는 장면을 목격한 이들은 조선하청노동자들이 있는 거제도로, 장애인들이 있는 여의도로, 고용안정을 외치는 옵티컬 노동자의 고공농성장으로 연대를 넓혔다. 우리는 짧은 시간임에도 '연대'가 세상을 바꿀 힘이라는 걸 느꼈다.
나아가 여성, 농민, 퀴어, 노동자, 소수자들은 광장에서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키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라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남태령에서 경찰 차벽이 열릴 때 퇴진 너머의 길을 보았다. 그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이 목소리들이 모여 광장을 굳건하게 지키면서 세상을 바꾸는 길을 열어갈 것이다.
남태령이라는 빨간 약
'나중에'는 없다. 세상을 바꾸는 우리들은 동짓날, 남태령 그곳에 '지금 당장' 존재했다. 언론이 없어도, 국회가 없어도, 우리는 모였다. 수많은 102030여성들과 청소년들과 이주민들과 성소수자들과 도시노동자들과 세입자들과… 그동안 정부와 국회와 언론과 주류 시선들이 쉽게 후순위로 미뤄두던, 그렇게 너무나 쉽게 뒤에 남겨지지던 소수자들이 가장 앞에 서서 농민들과 남태령을 지켰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만들 새로운 세계를 구현해냈다. 무박2일 남태령 대첩, 올해 가장 긴 겨울밤이던 그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남태령을 지켜 낸 강한 인간들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존엄을 멸시하지 않는 평등 세상의 주체들이었다. 남태령은 보았다, 세상 바꾸는 우리를. 우리는 확신했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우리가 기어코 세상을 바꾼다면, 이토록 평등하고 안전한 세계를 그려내고 말 것임을. 이건 단 한 사람만의 망상이 아니라, 몰아치던 혐오와 차별과 불평등으로부터 나와 너와 우리의 삶을 구원하고야 말겠다는 우리 모두의 간절한 열망임을.
남태령, 안국역, 명동…계속해서 세상을 바꾸는 연대
네가 있어 나 또한 용기를 내서 여기까지 왔다는 말들이 이어졌다. 8년 전에는 '나중에'로 밀려났던 이들, 그간 온갖 혐오와 백래시와 차별과 불평등에 짓눌렸던 이들을 서로가 호명했다. 농민을 착취하지 않고 배제하지 않는 세상은 장애인, 이주민, 청소년, 노동자, 세입자, 여성, 성소수자를 착취하지 않고 배제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남태령, 그 안에서 우리는 농민이었고, 여성이었고, 청소년이었고, 성소수자였고, 전세사기 피해자였고, 노동자였고, 동덕여대 학생이었고, 또 나였다.
그렇게 꿰어진 연대의 끈은, 계속되고 있다. 흩어지지 않는 연대의 힘으로 탄압받는 소수자들의 현재를 바꾸고 있다. 안국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함께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를 함께 외치며, 장애인을 끌어내는 경찰을 막아섰다. 명동에서 탈시설장애인연대와 함께 '시설은 아니다, 탈시설이 답이다'를 함께 외치며, 탈시설 당사자들의 삶을 듣고 동덕여대 시위와의 연대를 이야기 했다. 무지개 집회에 함께 하여 '차별금지법 제정하라'를 외치며, 지상파 언론으로 하여금 '윤석열 탄핵 집회가 반혐오·반차별 집회로 거듭나고 있다'는 말을 받아적게 했다. 이제는 새해를 앞두고 거창으로 달려가 탄압받는 노동자들과 연대할 궁리를 한다.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령 선포로부터 이제 겨우 3주가 지났다. 보라, 이미 우리는 세상을 바꿨다. 안티페미니스트의 말로를 또렷하게 드러내고, 페미니즘과 함께 나아갈 평등하고 존엄한 세계의 장면들을 겹겹이 쌓아가며 말이다.
주의! 여성을 지우지 말 것, 응원봉으로 대상화하지 말 것
무박2일 남태령 대첩, 이것은 그 누구도 함부로 지울 수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우리의 역사가 되었다. 우리의 강한 연대는 매일매일 역사를 만들며 나아가고 있으니, 전국 곳곳에서 광장을 만들어가며 끝내 세상을 바꿔 낼 주체는 바로 우리다. 남태령으로 달려가 올해 가장 긴 밤을 지켜낸 우리의 연대는 강하다. 여성을 지우려 하고, 종북 프레임을 씌우고, 투쟁하는 소수자들을 운동권으로 구분 짓고, 동원만 하고 우리의 요구들은 또 나중에로 미루는 온갖 시도들은 이미 너무나 낡고 헐어 구린내가 잔뜩 난다.
우리를 지울 때, 우리를 대상화 할 때, 우리를 탄핵만 요구하는 군중으로 납작하게 짓누를 때, 우리는 더 거세게 몰아칠 것이다.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삶을 우리의 연대로 지키고 쟁취할 것이다. 8년 전에는 남태령을 넘지 못했던 트렉터가 오늘에는 기어코 남태령을 넘어와 대통령 관저 앞으로 행진했던 것처럼, 서로가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나아갈 것이다. 우리가 남태령에서 함께 구현한, 우리 모두가 마땅히 존중되는 그 세계를 다시 구현하기 위해.
▲지난 21일 농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남태령에 모인 시민들.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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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이하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에서 발행하는 <윤석열 퇴진 시키고 평등으로>에 실렸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에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에 함께 하는 다양한 사회운동단체들, 노동운동단체들, 노동당·녹색당·정의당 등 진보정당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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