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감축” 행동은 소극적…플라스틱 규제 첫 국제협약 논의 ‘빈손’
시민단체 “생산과 소비 규제 없이 사후관리만으로는 오염 해결 못 해”
1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플뿌리연대’ 회원 등 시민들이 2024년 11월 23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인근에서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촉구하며 행진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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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플라스틱의 생산부터 유통, 폐기까지 전 생애주기를 규제하는 첫 국제협약을 제정하기 위해 전 세계 177개국이 참여해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024년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에서 진행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정부 간 협상위원회’ 제5차 회의(INC-5)다.
플라스틱 규제에 대한 국제협약을 만들기로 한 것은 2022년 3월이다. 유엔환경총회(UNEA)에서 회원국들이 더 이상 플라스틱 오염을 방치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2024년까지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도출하기로 정했다. 전 세계의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 200만t에서 2019년 4억6000만t으로 230배 급증했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목표 온도를 명시한 파리기후협약 이후 가장 의미 있는 협약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산유국들이 핵심 쟁점인 ‘생산 규제’에 반대하면서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번 회의 개최국인 한국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플라스틱 생산 규제에 찬성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회의를 앞두고 “플라스틱 생산을 감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회의에서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만든다는 목표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실질적으로 생산 규제 도입을 이끌거나, 다른 국가를 설득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았다는 게 회의 과정을 지켜본 시민사회단체들의 평가다. 한국 정부는 회의 전 시민들과 플라스틱 규제 정책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하는 공론장을 만들지 않았고, 회의에서도 파나마를 주축으로 100여개국이 참여한 글로벌 감축 목표 지지 성명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일회용품 규제 잇따라 철회
유새미 녹색연합 활동가는 2024년 12월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주제별로 진행된 4개 워킹그룹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발언을 안 할 때가 많았고, 발언하더라도 원론적인 내용 정도였다”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국가들이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계속 발언을 신청해 재차 주장한 것과 비교해보면 한국은 협상장에서 굉장히 소극적이었다”고 했다. 유 활동가는 “플라스틱 사용, 생산을 줄이는 것이 산업에 큰 전환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잘 전환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지만 한국 정부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은 플라스틱 생산량과 소비량이 많은 국가로 꼽힌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플라스틱 규제 정책이 거꾸로 간다는 비판은 진즉부터 나왔다. 정부는 애초 카페 등 매장에서 일회용컵에 음료를 구매할 경우 보증금 300원을 내고 이후 컵 반환 시 보증금을 돌려받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2022년 6월부터 시행할 계획이었지만 갑작스럽게 유예했다. 정부는 2023년 11월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규제책을 ‘과태료 부과’에서 ‘자발적 참여’로 바꿨다. 일회용 종이컵 사용금지 조치를 철회했고,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와 젓는 막대 등의 사용금지 조치는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했다. 정부는 어려운 경제 상황 속 일회용품 규제로 인한 사업자 부담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 등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플라스틱 제로’, ‘제로 웨이스트’를 내걸고 탈플라스틱 정책을 추진했지만 중앙정부 정책이 흔들리면서 탄력을 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2024년 11월 25일 부산시 해운대구 벡스코 앞에서 플뿌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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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음 서울환경연합 자원순환팀장은 “정부의 플라스틱 정책은 형편없는 상황”이라며 “대중이 가장 공감하고 무엇보다 대체제가 명확히 있는 매장 내 규제조차 소상공인을 위한다는 말로 계속 미뤄 혼란을 주고 정책의 신뢰성을 잃어 심각하다”고 했다. 박 팀장은 “국제적으로는 한국이 플라스틱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처럼 회의 개최국이 됐지만, 실제 행동으로 진행되지 않고 오히려 규제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정부의 양면성이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석유화학업계가 실제 수요에 비해 플라스틱을 과잉공급한다는 주장도 한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에틸렌(플라스틱의 원료) 생산능력은 2억2382만MT(메트릭 톤·1MT=1000㎏)에 달했으나 실제 수요량은 1억7653만MT에 그쳤다. 박 팀장은 “생산과 소비를 유지하되 사후관리만 잘하자는 주장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계속 새어 나오고 있는데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고 물에 대해서 해결하자는 것”이라며 “생산에 대한 제한이 있지 않으면 오염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명확한 규제가 필요하고 지금 제일 먼저 논의해야 할 때”라고 했다. 유새미 활동가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플라스틱 사용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데 가장 쉽게 줄일 수 있어서 다회용품을 쓰는 규제정책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한다”며 “단계적으로 탈플라스틱할 수 있는 로드맵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폐기물 노동자 문제 함께 논의돼야
플라스틱 사용이 계속되는 한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이뤄져야 하지만 눈에 띄는 대책은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4년 10월 2일 발간한 ‘2040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정책시나리오’에서 한국은 2030년까지 60%, 2060년까지 80%로 재활용률을 높여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환경부 자료에 의하면 2021년 기준 한국의 플라스틱 생활폐기물 재활용률은 56.7%였다. 다른 국가보다 재활용률이 높은 편이지만, 2023년 충남대 연구진이 소각을 통한 에너지 회수를 빼고 다시 계산한 한국의 실질적 재활용률은 16.4%에 불과했다.
주간경향과 함께 재활용 선별장 여성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진행한 안현진 여성환경연대 여성건강팀장은 2024년 12월 25일 인터뷰에서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플라스틱 과잉 생산·소비의 굴레를 끊는 것이지만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도 도입돼야 한다”고 했다. 안 팀장은 “환경부가 생활폐기물 처리시설 평가제도를 통해 재활용률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하지만 평가는 지자체와 처리업체의 서류 제출로 이뤄지고 현장 방문은 매해 10곳 이하에 그쳐 탁상공론일 뿐”이라며 “시민들의 재활용품 분리배출에 대한 관리·감독과 요일별 배출제도 활성화가 이뤄져야 하지만 분리배출 캠페인, 수집·운반, 선별을 총체적으로 책임지는 주체는 없다”고 지적했다.
안 팀장은 또 “플라스틱을 손으로 선별하는 선별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저임금을 받는 50~60대 여성들이고, 한국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쓰레기를 수거하고 분류하는 이들은 여성과 어린이가 많다”며 “정의로운 전환 논의에 있어 폐기물 노동자의 문제, 그 가운데서도 통계에 잡히지 않아 존재가 지워진 선별원들의 노동안전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 ‘플라스틱 전쟁’ 최전선의 여성 노동자들…“이대론 안 된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280900001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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