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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일)

‘플라스틱 전쟁’ 최전선의 여성 노동자들…“이대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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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버린 쓰레기, 재활용 가능한 것만 ‘사람’이 분류

미흡한 분리배출, 열악한 노동환경이 재활용에 걸림돌

경향신문

한 재활용 선별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컨베이어벨트 위에 놓인 쓰레기 중 재활용 가능한 것들을 골라내고 있다. 손용훈씨 촬영·여성환경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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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인류는 어떻게 플라스틱에서 벗어날 것인가. 전 세계 국가들이 플라스틱 규제를 놓고 머리를 맞대는 중이다. 2024년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에서 ‘유엔(UN) 플라스틱 협약’ 합의를 위한 회의가 열렸다. 플라스틱은 싸고 편리하다는 점 때문에 우리 일상생활 깊숙이 파고들었지만, 오랜 기간 분해되지 않아 지구를 떠돌며 환경을 오염시킨다. 전 세계 국가들이 나선 배경엔 플라스틱 오염을 방치하면 지구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이 순간에도 계속 플라스틱을 쓰고, 버리고 있다. 생수가 담겼던 페트병, 커피를 마신 일회용컵, 배달음식이 담긴 용기, 음식 재료를 포장한 스티로폼 상자, 각종 비닐…. 주택가에 놓인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흔히 담긴 것들이다. 과연 이 쓰레기들은 재활용이 될까. 어디로 가서 어떻게 재활용이 될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자원 순환 여성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제도·인식 변화 캠페인을 진행하는 시민단체 여성환경연대와 함께 2024년 9~11월 전국의 재활용 선별장 네 곳의 노동자 12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재활용 선별장은 시민들이 버린 쓰레기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을 분류하는 곳이다. 재활용 쓰레기를 매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플라스틱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노동자들은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저 버리면 끝’식의 쓰레기에 대한 태도는 노동자들이 재활용품을 골라내기 어렵게 만들고 환경 보호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해당 노동자들은 대부분 가정주부로 육아를 하다 뒤늦게 일자리를 구한 50~60대 여성들이다. 플라스틱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들의 말과 노동실태를 통해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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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활용 선별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컨베이어벨트 위로 쏟아져나오는 쓰레기 중 재활용 가능한 것들을 골라내고 있다. 손용훈씨 촬영·여성환경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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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병행 위해 폐기물 처리시설로 취업


2024년 11월 22일 찾은 강원도의 한 재활용 선별장.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컨베이어벨트 위로 노동자들의 손이 쉴새 없이 움직였다. 거리에서, 집 앞에서 수거한 재활용 쓰레기를 컨베이어벨트 위로 쏟으면 노동자들이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PE), 폴리스타이렌(PS), 페트병, 유리병, 철캔, 알루미늄캔, 비닐 등 종류별로 분류한다. 노동자들은 한 손으로는 쓰레기 더미를 파헤치며, 다른 한 손으로는 물건을 잡아 배출구로 던져 넣었다. 물건 바닥 부분에 PP, PE 등이 표기돼 있지만 밀려드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여유를 부리며 바닥을 확인하고 재활용되는 물건인지 아닌지 판단할 겨를이 없다. 순식간에 눈으로 물건의 소재를 파악하고 손으로 집어내야 한다.

노동자 12명은 50대가 9명, 60대가 3명이다. 이들은 가정주부로 집안일과 육아를 전담하다가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 재활용 선별장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식당 서빙, 볼펜·머리핀 조립 등의 부업, 요양보호사, 미용사, 백화점·마트 판매, 제조업 공장, 간호조무사 등 이들 노동자가 과거 해본 일은 다양했는데 재활용 선별장으로 오게 된 이유는 비슷했다. 저임금이지만 고용이 그나마 안정적이고, 가사노동과 병행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이 너무 길지 않은 일을 찾았는데 그게 재활용 선별이었다. 대부분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취업했다. ‘병 줍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한 마디에 일을 시작한 이도 있었다. 가정에서 재활용 쓰레기의 분리배출을 여성이 주로 맡는다면, 사회에서도 그 선별 작업을 여성이 맡는 것이다.

A씨(54)가 말했다. “일을 찾아다녔는데 5개월, 6개월 단기 일자리가 많았어요. 기간이 끝나면 ‘또 어떤 일을 찾아야 하나’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여기(재활용 선별장)는 내가 크게 잘못하지 않으면 안정적인 고용이 된다고 들어서 왔어요. 뭐 하는지는 전혀 몰랐죠. 못 사는 나라 같은 데서 쓰레기 산 뒤지잖아요. 처음에는 제가 왜 난민처럼 쓰레기를 뒤지고 있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일을 해야죠. 노후 준비도 못 했지만 아이들 결혼을 시켜야 하잖아요.”

남편 없이 생계를 혼자 책임지는 B씨(59)는 “먹고살아야 하니까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중년 여성이 일을 구할 땐 ‘나이’부터 걸림돌로 작용한다. B씨의 말이다. “식당에 가는 것도 이 나이에는 안 받아주거든요. 손에 맞는 게 이거고, 해봤던 일이라 하는 거죠. 다른 일을 해보고 싶지만 가방끈이 짧아서 자신감도 없고…. 속상해서 어떨 때는 집어치우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마땅히 생각한 데가 없으니까. 더럽고 치사해도 먹고살려니 어쩌겠어요.”

C씨(58)는 “나이를 먹다 보니 이직이 힘들다”며 “인간이 존재하는 한 쓰레기는 발생할 것이고, 그때까지는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고 있다”고 했다. D씨(58)는 “아줌마들이 직장 옮기기가 쉽지 않다. 어디에 이력서를 내면 나이부터 보지 않느냐”며 “그래서 한번 발을 담그면 잘 안 나간다. 끝까지 버티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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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활용 선별장에서 여성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 위로 쏟아져나오는 쓰레기 중 재활용 가능한 것들을 골라내고 있다. 손용훈씨 촬영·여성환경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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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선별은 철저히 ‘숨겨진 노동’이다. 바깥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노동자 당사자들도 주변에 이런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쓰레기’와 관련되면 더럽고 위험하다는 반응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D씨가 말했다. “예전에 친구에게 시청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나 사실 쓰레기장 다닌다고 했더니 쓰레기장에서 할 일이 뭐가 있냐고 묻더라고요. 분리수거한다고 했죠. 상상을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줌마들이 현장에서 이렇게 분리수거를 한다는 것에 깜짝 놀라더라고요.” E씨(54)는 “(재활용 선별장에서 일한) 10년간 주변에 오픈을 안 했다. 그냥 직장 다닌다고만 했다”며 “필요한 시설이지만 솔직히 ‘나도 이 일을 하고 싶어’ 하겠느냐”고 했다. 그의 말이다. “(재활용 선별장 노동자들은) 여기가 마지막 직장인 사람들이죠. 일하는 환경이 너무 열악한데 페이(급여)까지 적다 보니 더 기피하게 되는, 3D 업종의 최고봉이 아닐까 생각해요.”

두드려보고 태워보고, 토론하며 ‘재활용 공부’


노동자들은 재활용 선별장의 노동강도가 세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물건을 골라내는 것뿐인데 무엇이 어렵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직접 본 현장의 모습은 그렇지가 않았다. 컨베이어벨트 위로 쓰레기는 계속해서 쏟아져나오고, 1m 너비의 컨베이어벨트에서 때로는 허리를 굽히고 손을 뻗어 순간적으로 쓰레기를 집어야 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면 금세 쓰레기가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집중력도 필요하다. F씨(58)는 “물건이 계속 바뀌고 내가 지금 뭘 잡아서 어디로 넣어야 된다는 것을 계속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하다”며 “잘못하면 다른 쪽에 넣을 수도 있으니까 집중해가면서 일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 컨베이어벨트 앞에 섰을 때 어지러움을 느낀 이들도 있었다. B씨는 “처음에는 어지러워서 일을 못 했다. 집에서 자면서도 라인이 막 눈앞으로 지나갔다”며 “물건은 막 나오는데 뭘 잡아야 좋을지 몰라 손이 우왕좌왕하는 것”이라고 했다. A씨는 “한자리에서 하나만 잡는 게 아니다. 8가지를 잡는 자리도 있다”고 했다.

신입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언니’, ‘이모’, ‘선배님’이었다. 회사로부터 무엇이 재활용될 수 있는 물건인지를 교육받거나 자료를 받았다는 노동자는 없었다. 모두가 먼저 일하던 노동자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배웠다고 했다. B씨의 말이다. “많이 했던 사람들이 가르쳐줬어요. 그 언니들을 보고 ‘기술자’라고 했는데, 기술자 언니들이 ‘이거는 뭐다, 저거는 뭐다’ 맨날 알려줘도 맨날 잊어버리는 거예요, 처음에는. 세월이 가고 계속 일을 하니까 많이 알게 됐죠.” B씨는 “이제는 하나 집을 때 1초도 안 걸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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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활용 선별장의 컨베이어벨트 위에 쓰레기들이 놓여 있다. 손용훈씨 촬영·여성환경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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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직접 두드려보면서 소리로 소재를 익히고, 마트에 가서 물건 바닥에 적힌 문구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스스로 터득하기도 했다. G씨(63)는 “‘이게 뭐지?’ 싶으면 두드려봐야 해요. 물렁물렁한 것은 PE, 딱딱한 것은 따대기라고 하는데 그건 따로 분류해요. 초보들은 귀에 익어야 하거든요. 딱딱 소리 나는 것과 퉁퉁 소리 나는 것은 다르거든요. 검은색 용기도 PP가 있고 아닌 게 있어요.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니 막 버리는 거죠.” H씨(57)도 말했다. “플라스틱도 여러 가지잖아요. 탁 소리 나는 건 못 써요. 긴가민가할 때는 얼른 두들겨봐서 ‘아, 이거 아니다’ 싶으면 얼른 던져요. 그릇 모양은 거의 PP예요. 처음 배울 때 이모님이 알려줬어요. 병처럼 생긴 것은 PE가 많고, 페트는 밑을 보면 구멍이 배꼽처럼 돼 있어요. PS는 찢으면 찢어져요. 바사삭하는 소리가 나요.”

재활용 선별장의 일은 연결돼 있다. 컨베이어벨트 앞부분에 선 노동자가 물건을 놓치면 그다음 사람이 잡아야 한다. 쓰레기는 매일 들어오기 때문에 선별장은 계속 가동을 해야 하고, 한 사람이 빠지면 다른 이들이 나눠서 일해야 한다. 이 때문인지 노동자들 사이에선 내가 재활용품을 잘 주워야 한다는 책임감,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연대감이 강했다. E씨가 말했다. “못 주워도 뭐라고 하지는 않아요. 더구나 위험한 상황이면 줍지 말라고 해요. 병은 혹시나 던지면서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너무 악착같이 줍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다들 줍죠.” A씨는 “‘왜 그거 못 잡니’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게 내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책임감이 강해서 아플 때 쉬고 오라고 해도 쉬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형형색색 혼합 플라스틱, 재활용은 더 어려워


노동자들은 반입되는 쓰레기양이 최근 몇 년 사이 확실히 늘었다고 했다. 코로나19 이전엔 명절 전후 스티로폼 상자 같은 포장재가 많았다면 코로나19 이후엔 배달과 택배가 일상화되면서 상시로 명절같이 스티로폼 상자가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문제는 재활용 선별장으로 오는 쓰레기 중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재활용 선별장 전체에서는 선별률이 50% 안팎으로 추정된다. 선별률이 높은 곳이 80% 정도다.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졌지만 상당수는 재활용되지 않고 폐기되는 것이다.

시민들이 재활용품과 재활용품이 아닌 쓰레기를 함께 넣어 뭉텅이로 버리는 것은 선별 작업을 힘들게 한다. 뱀·개·고양이·쥐 사체부터 병원에서 쓰는 링거액, 주삿바늘, 생리대, 아기 기저귀 등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할 것들이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진다. I씨(60)가 말했다. “쥐나 고양이는 참을 수 있는데 뱀은 참을 수 없잖아요. 하다가 ‘악’ 소리가 나요. 그러면 사람들이 놀라서 기계를 중단하죠. 그 후유증으로 우는 사람도 있고요. 무서워서 며칠 동안 그 비닐을 못 뜯는 사람도 있어요. 거기서 뱀이 나올까 봐. 제발 이런 것은 재활용 쓰레기에 보내지 말고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 버렸으면 하는데. 예전에는 한번 뱀술 병이 들어오는데 조그마한 뱀이 우글우글한 거예요. 잊히지 않아요.”

쓰레기의 절대적인 양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재활용품의 ‘질’은 더 떨어졌다는 게 노동자들의 말이다. 배달용기가 많아지면서 음식물을 용기째 버리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했다. 김치를 담은 스티로폼 상자, 음료가 남은 페트병같이 음식물이 묻어 오염된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어렵다. I씨는 “예전에는 일회용품이 이렇게 많지 않아서 물건이 깨끗하고 종류가 적었다”며 “요새는 음식을 담는 플라스틱 통이 엄청 많다”고 했다. F씨는 “예전에는 음식물이 나와도 그냥 통에 담겨 나왔다면 지금은 배달용기에 담겨서 나온다”며 “그만큼 음식물이 담긴 배달용기가 많아진 것”이라고 했다. J씨(62)는 “예전엔 고를 물건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말 다 쓰레기”라고 했다. 테이프로 감긴 스티로폼 박스는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몰라 ‘폭탄’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A씨는 “음식물을 그대로 버려서 여름에는 구더기가 엄청 많다”며 “예전엔 기겁했지만 너무 흔하게 나와서 지금은 별나다는 소리를 들을까 싶어 기겁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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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4일 부산시 해운대구 일대에서 플뿌리연대(플라스틱 문제를 뿌리 뽑는 연대) 회원들이 실효성 있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정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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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의 양, 분류작업의 난도는 올라갔지만 인력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많은 쓰레기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컨베이어벨트의 속도를 높여야 하고, 그만큼 사람 한 명이 줍는 재활용품의 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일단 줍기 쉬운 ‘덩치가 큰 아이들’부터 선별이 된다. 크기가 작은 것들은 선별이 어렵다. 플라스틱 빨대나 화장품 케이스같이 장갑 낀 손으로 줍기 힘든 것들은 거의 ‘패스’다. E씨는 “빨대 말고도 쓰레기 자체가 너무 많이 들어오고 그 양도 처리하기 버거운 상황이다 보니 빨대 저런 것쯤은 재활용품으로 처리해야 된다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했다. K씨(55)는 “(배달용기로 사용되는) 검은색 PP는 기계가 못 읽어서 다 버린다”며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기업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소재, 멋진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을수록 재활용과는 멀어진다. 한 제품에 한 가지 소재만 사용하지 않고 여러 가지 소재를 섞어 사용하면 재활용할 수 없다. 노동자들은 아이들의 장난감을 대표적으로 재활용 안 되는 물건으로 꼽았다. 몸통은 플라스틱인데 뚜껑이 철인 경우도 있다. L씨(50)가 말했다. “두 개 이상 크게 섞여 있는 것은 그냥 쓰레기로 버려요. 예를 들어 페트에 알루미늄 캔이 둘려 있는 게 있어요. 투명한 케이스인데 알루미늄 캔을 따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요. 그런 건 못 써요. 플라스틱도 하나만 있으면 상관없는데 페트나 PE 이런 게 두 가지 이상 섞여 있는 게 있어요. 장난감은 재활용되는 게 아니에요. 사용하지 않는 플라스틱이에요. 소비자들은 ‘플라스틱이니까 재활용이 된다’고 버리는데 재활용이 안 돼요.”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업이 제품을 만들 때부터 재활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명확한 분류 매뉴얼이 없으니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두들겨보거나 노동자들끼리 토론을 해 재활용이 가능한지 알아보기도 한다. 그래서 자의적인 분류가 될 것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었다. L씨의 말이다. “회사 차원에서 교육을 해줘야죠. 한두 번 배워서는 잘 기억을 못 할 수도 있고, 가르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다 (작업방식이) 달라요. 회사에서 안전교육은 하는데 실질적으로 PP가 뭔지, PS가 뭔지 그런 교육은 없어요. 새로운 게 나오면 스스로 알아봐야 하는 거죠.”

여러 노동자는 현재의 재활용 시스템이 과연 재활용을 위해 적절한지 의문도 제기했다. 주택가의 경우 가정에서 분리배출을 하더라도 수거업체가 한꺼번에 수거하기 때문에 선별장에선 다시 모두 섞인 상태에서 분류 작업을 하게 된다. 가정에서 분리배출을 해봤자 소용이 없는 셈이다.

일반 쓰레기를 담아 버리는 종량제 봉투의 비용이 재활용 쓰레기 분류에 영향을 미친다는 시각도 있었다. 비싼 종량제 봉투를 사기 힘든 시민들이 재활용 쓰레기에 일반 쓰레기까지 담아 버리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원칙적으로는 검은 비닐봉지처럼 내용물이 뭔지 알 수 없는 쓰레기는 수거하지 않아야 하지만, 거리나 집 앞에 쓰레기가 쌓이면 주민 민원이 빗발쳐 수거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한다. 쓰레기를 마구 섞어 버리는 것을 방치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종량제 봉투 구매가 어려운 시민들 입장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재활용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다.

E씨가 말했다. “점점 더 재활용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소각장에는 종량제 봉투에 들어 있는 것이 가요. 나머지는 다 재활용 선별장에서 담당해야 해요. 사람들이 굳이 돈 들어가는 쓰레기봉투에 안 넣겠죠. 그러니까 쓰레기양은 많아지고 분리는 힘들어지는 거죠.” J씨는 “물가는 올라가고 봉급은 안 올라가니 쓰레기봉지마저 안 사는 것 아니겠느냐”며 “어려운 사람들은 봉지 하나라도 아껴 쓰려고 하지, 거기에 쓰레기를 버리고 싶겠나”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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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활용 선별장의 컨베이어 벨트에 재활용 쓰레기가 쌓여있다. 손용훈씨 촬영·여성환경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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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활용 선별장에 스티로폼 상자가 쌓여 있다. 손용훈씨 촬영·여성환경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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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위해 필요한 일, 제대로 체계 구축 필요


재활용 선별장에 오래 근무한 노동자들은 취업을 왔다가도 더럽고 위험한 환경에 금세 그만두는 사례를 여러 번 봤다고 했다. 그만큼 노동환경은 열악하다. 바로 옆 사람의 말이 잘 안 들릴 정도로 기계 소음이 커 노동자들은 고무 귀마개나 헤드셋을 끼고 일한다. 악취가 지독해 마스크도 써야 한다. 여름에 마스크를 쓰고 일하면 땀이 줄줄 흐르지만, 선풍기를 틀면 쓰레기가 날아가기 때문에 쉽게 틀 수 없다. 겨울엔 쓰레기 반입을 위해 문을 열어 추위에 떨면서도 화재 위험 때문에 난방기구를 설치하기가 어렵다.

‘많이, 빨리’ 잡아야 하는 재활용 선별장에서 집게보다 손을 쓰는 게 더 효율적인데 그 손은 자주 베이고 찔린다. 각기 다른 크기의 플라스틱을 손가락으로 잘 집어야 하기 때문에 두꺼운 장갑을 겹겹이 낄 수는 없다. 재활용 쓰레기가 아닌 어묵 꼬치나 나무젓가락, 주삿바늘, 철사 같은 것에 찔린다.

현장마다 지급되는 안전용품은 천차만별이다. 명확히 정해진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한 사업장에서는 일회용 마스크와 고무 귀마개를 지급하는가 하면, 다른 사업장에서는 산업용 마스크와 헤드셋을 지급한다. 마스크나 귀마개를 아예 지급하지 않는 곳도 있다.

생활폐기물 처리의 책임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지만, 폐기물 처리시설의 운영은 민간업체에 위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주기적으로 재계약을 한다. 고용 승계가 안 될 가능성이 있는 불안정한 체제다. 근속연수 적립과 이에 따른 연차휴가 적용도 배제된다. D씨는 이런 체제에서 피해를 보았다. “입사했을 때 월차가 없었고, 대신 퇴직할 때 돈으로 준다고 했어요. 그런데 업체가 바뀌면서 사라져버렸어요. 결국 휴가도, 돈도 못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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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소비자기후행동 등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생산량 감축을 촉구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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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환경노동조합 등의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노동환경이 그나마 낫다. 임금 인상, 고용 안정, 안전 대책, 샤워실·휴게실 확충이 모두 노조가 생긴 뒤에야 이뤄졌다. G씨는 “전에는 장갑을 딱 하나 주고 빨아서 쓰라고 했는데 노조가 생긴 뒤엔 여유분을 준다”고 했다. L씨는 “노조가 생긴 뒤 임금이 올랐고 세탁기, 건조기도 생겼다”며 “개인이 말했을 때는 들어주지 않던 것을 노조가 요구하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사회에 필요한 공공업무의 성격을 띠고, 높은 위험과 고강도 노동인데도 재활용 선별은 ‘단순노무’로 분류돼 저임금을 벗어나기 힘든 한계는 있다. A씨는 “열악한 환경에서 고강도 노동을 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저임금”이라고 했다. C씨는 “쓰레기나 치우는 단순노동자로 취급하지 말고 사회를 위해서 필요한 사람이라는 대우를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사회가 재활용 선별 노동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기후위기와 환경오염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와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들의 말에는 자기 일이 환경보호와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또 노동자들은 국가가 기후위기와 쓰레기 문제, 재활용의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교육과 캠페인을 하고, 더 많이 재활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A씨가 말했다. “귀중한 자원이 우리 손을 거쳐 분리돼서 큰 마대에 옮겨지는 걸 보면 그래도 지구를 살리는 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후손들에게 물려줄 귀중한 지구인데 버려지는 자원이 없게끔 저희가 분리배출을 한다고 생각해요.” E씨의 말이다. “제가 아이를 괜히 낳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요. 지금 환경이 너무 안 좋아지고 있잖아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어릴 때와 지금은 환경이 너무 다르거든요. 쓰레기 문제가 제대로 바뀌어야 된다고 봐요. 현실적으로 다 못 해요. 빨대도 분명히 재활용품으로 만들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걸러낼 수 없어요. 환경을 위해서 분리수거도, 제품을 만드는 것도 많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더 이상 이런 식으로는 안 돼요.”

여성환경연대는 1999년에 창립한 여성환경운동 단체로 여성과 환경의 교차점에서 행동합니다. 여성건강, 월경, 기후정의, 플라스틱 및 유해물질, 풀뿌리 등의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자원순환 여성노동자 노동안전 실태조사 및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으며 2025년 상반기에 조사 보고서가 발간될 예정입니다.



☞ 플라스틱 규제, 윤 정부의 ‘두 얼굴’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280900041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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