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련 논설위원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스스로 탄핵을 선택한 것이다. 또 권한대행의 대행이라는 전대미문의 혼란도 자기 의지로 선택한 것이다. 40년 공직생활 동안 변혁보다는 안정적 관리를 중시했고, 제3자건 역사건 누군가의 평가를 늘 신경 쓰면서 산 인물답지 않다. 그의 1차 책임은 선출된 대통령이 부재한 현 상황을 안정 속에 최대한 단축시키는 일이었다. 황당한 계엄을 실행에 옮긴 윤석열 대통령이 하루라도 국정의 책임자로 있어선 안 된다는 점에 대해 한 대행도 100% 동의할 것으로 확신한다.
재판관 임명은 폭탄 돌리기 아니다
헌재 재판관 임명은 폭탄 돌리기 놀이처럼 작동할 일이 아니다. 그저 내 앞에서 터지거나, 다음으로 넘긴 뒤 터지길 바랄 일이 아니란 뜻이다. 40년 동안 장관, 청와대 수석, 대사, 부총리, 총리까지 안 해 본 게 없는 한덕수 대행이야말로 이런 고난도 문제를 풀 책무가 있다. 자기 손으로 재판관 3명을 임명했어야 했다. 관운이 억세게 좋았던 그에게 던져진 운명이라면 운명일 것이다.
한 대행은 폭탄을 다음 사람에게 넘기고 빠져나온 것에 가깝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이주호 사회부총리처럼 다음 순번 대행들이 헌재 재판관을 임명할지는 의문이다. 최 부총리는 어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탄핵 재고”를 요청했고, 이주호 부총리는 입장문 발표 때 곁에 서 있었다. 1주일에 1명씩 국무위원 탄핵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는 민주당도 민주당이지만, 총리와 부총리가 이렇게 무책임해서 되겠나. 한 대행은 정치적 합의 필요성과 황교안 권한대행 관례를 거론하지만, 핑계일 뿐이다.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한 대행의 헌재 재판관 임명 거부는 시간을 끌어달라는 국민의힘 요청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이런저런 이유로 재판을 지연시켜 가며 승승장구했고, 조국 전 대표도 총선 2개월 전 내려진 2심 실형 선고 때 구속을 미뤄준 덕분에 국회의원이 됐다. 이러니 탄핵심리를 몇 개월이라도 지연시키는 게 대단한 불의가 아니라는 국민의힘 논리에 한 대행이 수긍했는지는 모르겠다. 여기에 본회의장 질의응답을 통해 민주당 의원 수십 명과 얼굴을 붉히며 숱하게 싸웠던 한 대행의 개인 경험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민주당 주장대로 대통령 욕심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한 대행은 계엄엔 반대했지만, 이번 폭탄 돌리기로 중도층 마음을 잃게 됐다. 무리수를 둬서라도 후보에 도전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은 혹시 있을지 모를 조기 대선은 어렵더라도 5년 뒤 대선을 기약할 때라야 의미가 있다. 1949년생으로 지금 75세인 한 대행에게 5년 뒤란 없다.
윤 대통령과 나눈 의리와 우정이 변수일 수 있지만, 역시 큰 이유는 아닐 것 같다. 한 대행이 노무현의 총리, 윤석열의 총리를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과 국정은 함께해도 이념적 동지가 되지는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노무현식 정치와 이념에 경도됐다면, 그가 노무현 퇴임 1년 만에 이명박 정부의 주미 대사직 제안을 수락하지 못했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계엄으로 탄핵과 수사를 앞둔 윤 대통령을 위해 역사적 혹평을 뒤집어썼을까 싶다.
‘결단’ 못 내려 공직 40년이 빛바래다
옛사람들은 사람의 말보다는 그의 발길을 보라고 했다. 한 대행은 평생 국리민복을 다짐했겠지만, 그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났다. 우리 편 목소리와 해야 할 책무 사이에 낀 상태에서 책임 회피를 선택했다는 것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공직에서 수많은 ‘결정’을 내렸던 그였지만, 인생을 건 ‘결단’을 강요받는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그의 화려한 공직 경력이 폭탄을 다음 국무위원에게 넘긴 마지막 한 컷 때문에 빛바래게 됐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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