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식의 N코리아 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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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2024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보통 한 해가 지나가면 한 해를 되짚어보듯이, 북한도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고 2024년의 평가와 2025년 계획을 가다듬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올 한 해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김일성 권위 넘어서려는 김정은
언뜻 보면 올 한 해는 김정은에게 상당히 고무적인 해가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김정은은 올해 북한의 시조라고 할 만한 김일성의 권위에 버금가거나 혹은 이를 넘어서는 위상을 마련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은 북한에서 '태양절'로 불려 오던 명절이었는데, '태양절'이라는 용어가 올해 들어 거의 사라졌습니다. 대신 '주체조선의 태양 김정은 장군 만세'처럼 김정은이 태양으로 떠받들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기점으로 '주체' 연호를 써오던 것도 올해 들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신문과 각종 성명 등에서 북한은 '주체 113년'이라는 연호 대신 '2024년'이라는 일반적인 연도 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김일성 생일을 태양절로 지칭하는 북한의 결정은 1997년 이뤄졌습니다. 김일성이 사망한 지 3년이 지난 1997년 7월 9일 북한은 당·정·군 공동으로 발표한 결정서에서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을 '태양절'로 지칭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김일성이 우리 민족의 태양이라는 뜻입니다. 북한의 '주체' 연호도 이 때 제정됐습니다.
하지만, 김일성이 태양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한 김정은은 아무리 해도 김일성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태양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그늘 아래 통치하는 것에 만족했기 때문에 김일성 태양을 받들었지만, 김정은은 그 자신이 태양이 되고 싶어 하는 듯 보입니다. 김일성의 태양이 지고 김정은의 태양이 뜨고 있는 것입니다.
노동당 중앙간부학교에 김정은의 초상화가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와 나란히 걸리고 김정은 독자 휘장(배지)이 등장한 것도 김정은이 김일성의 권위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 되려고 하는 것을 시사합니다.
노동당 중앙간부학교에 나란히 걸린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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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관계, 동맹 수준으로 복원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북한은 올 한 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핵심은 북러 관계입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난 6월 방북 당시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전략적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탈냉전 시기 소원했던 양국 관계를 동맹 관계로 복원한 것으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자동군사개입 조항입니다.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 6월 '포괄적전략적동반자관계 조약'을 체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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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러시아는 이 조약 제4조에서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 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합의했습니다. 북한의 안보를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러시아를 일방 지지해 왔던 북한이 일종의 정치, 군사적 이득을 챙겼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에 무기와 포탄을 지원하는데 이어 양국 관계를 동맹 수준으로 복원함으로써 김정은 정권의 안전판을 마련한 것입니다.
북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일반적으로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개입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세간의 관측을 뛰어넘어 북한군을 러시아에 파병한 것입니다. 북한은 정예병이라는 폭풍군단 1만여 명의 병력을 전격적으로 러시아 전선으로 보내는 군사적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사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상황에 따라서는 북한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파병 기간이 길어지고 북한군 사상자가 속출해 계속해서 추가 파병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북한에게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 잃은 부모들이 늘어나면 아무리 김정은 정권이라 하더라도 내치에 부담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때마침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트럼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지원이 계속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끌어가기 어렵다고 본다면 트럼프 취임 이후 종전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파병이라는 생색을 내 러시아로부터 챙길 것은 챙기면서 장기 파병에 따른 부담은 덜게 됩니다.
더구나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관계를 과시하며 북미대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가안보 수석 부보좌관에 북미 정상회담 당시 실무를 맡았던 알렉스 웡을 발탁했고, 북한담당 특임 대사에 중량급 측근 인사인 리처드 그레넬을 지명했습니다. 트럼프 2기의 북미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진전될지는 모르지만, 북한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국제환경이 조성된 것입니다. 북한에 강경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된 것도 북한에게는 나쁘지 않은 소식입니다.
지방공장 건설 등 건설 실적도
내치에서도 김정은은 자랑할 만한 소재 몇 가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매년 20개 시·군에 현대적인 경공업 공장을 만들어 10년 안에 지방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킨다는 이른바 '지방발전 20×10 정책'을 들고 나와 첫 해 성과로 20개 지역에 공장을 건설한 것입니다. 앞으로 공장이 제대로 가동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한 해 성과로 충분히 자랑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북한은 지난 20일 김정은 참석 하에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지방공업공장 준공식을 진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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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압록강 유역 수해로 초토화됐던 지역들도 어느 정도 복구가 마무리됐습니다. 김정은이 제시한 연말이라는 시한을 맞추느라 부실공사가 이뤄졌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북한은 압록강 유역에 새로 건설한 살림집들을 김정은의 업적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북한은 신형 고체연료 ICBM인 '화성-19형' 발사에 성공했고, 신형 중장거리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16형' 발사 등에도 성공했습니다. 무기 개발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셈입니다. 북한의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를 봐야겠지만, 김정은은 나름대로 올해를 성공적인 한 해였다고 자평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곳곳에 독재 정권의 무능함과 비정함이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김정은 독재 체제의 무능함과 북한 주민들의 한숨소리가 들립니다.
북한이 수해복구의 성과를 자랑하고 있지만 지난 7월 압록강 수해는 전형적인 인재였습니다. 당시 북한은 압록강 유역에 폭우가 내릴 것이라는 것이 예고된 상황이었는데도, 홍수가 휩쓸던 7월 27일 평양에서 이른바 '전승절' 기념행사를 떠들썩하게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뒤늦게 피해가 막대하다는 것을 깨닫고 김정은이 현지까지 달려갔지만, 이후로도 북한은 인명피해가 없다고 강변하며 피해 감추기에 급급했습니다.
김정은이 나서서 인명피해가 없다고 밝힌 상태이니 가족을 잃은 수재민들은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했습니다.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북한을 취재하는 대북매체들의 전언에 따르면, 수재민들은 가족들이 홍수에 떠내려간 것을 통곡하다가 감시요원들에게 저지당했고, 제대로 울지도 못해 가슴에 한이 쌓이면서 고열과 두통을 호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에 파병된 군인들의 가족도 속을 끓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파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파병 소문이 북한 내부로 퍼지면서 선발 군인 가족들이 크게 오열하는 등 가족들이 동요했다고 합니다. 국정원은 북한이 소문 퍼지는 것을 막고 파병군인 가족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가족들을 집단 이주시켜 격리하고 있는 정황도 포착됐다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군대 간 아들이 졸지에 남의 나라 전쟁터로 끌려간 것도 억장이 무너질 일인데, 그 가족들까지 격리해 관리하는 참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3월 북한 공수부대원들의 훈련 참사도 독재 정권의 황당함과 비정함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입니다. 당시 훈련장 상공에는 낙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센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북한은 공수부대원들의 낙하훈련을 강행했습니다. 김정은과 딸 김주애가 지켜보는 훈련이었기 때문입니다. 낙하산이 제대로 펴지지 않으면서 북한군 10여 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는데, 제대로 된 나라라면 정권이 무너질 법한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3월 좋지 않은 날씨에도 낙하훈련을 강행하면서 북한군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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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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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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