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는 현재 저성장 탈출, 새 먹거리 발굴, 새 회계 연착륙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 모든 과제의 중심에는 고객이 있다. 여타 산업처럼 '고객이 최우선'이라는 원칙은 보험업계에도 엄격히 적용돼있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이 제시하는 새로운 규제들은 이러한 기본 원칙을 흔드는 것처럼 보인다. 금융당국은 최근 '보험업계가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보험개혁회의를 통해 다양한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이 중 상품에 대한 개혁도 있다. 최근 보험사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상품 출시 경쟁이 뜨거워지자, 일부 과도한 보장의 상품들이 등장해 건전성을 해치고 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키운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당국은 보험산업 건전경쟁을 확립하겠다면서 상품 심의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가능성은 물론, 보장 한도와 환급률의 적정성을 살펴보겠다고 발표했다. 보험상품 개발시 보장금액 한도가 합리적으로 설정되도록 실제 발생 가능한 평균 비용을 고려해 개별 담보 별로 적정 수준의 보장 금액을 정해준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보기에 보험사가 소비자에게 과도한 보장을 제공하면 상품 개발과 판매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렇게 보험사 상품이 비슷해지면 과잉경쟁은 잦아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규제들이 정말 고객을 위한 것일까? 좋은 상품이 시장에서 사라지면 소비자들의 선택지가 좁아지고, 당국의 철퇴를 피한 '떴다방'식 영업이 더 만연해져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질텐데 말이다. 무엇보다 '보험사는 절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뿌리 깊은 불신만 심화시킬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당장 내년부터 혜택이 줄어든 보험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 소비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보험은 휴대폰이나 책과 달리 눈에 보이는 상품도 아닐뿐더러, 자주 가입(구매)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10년 전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과 도서정가제 도입 당시처럼 여론의 큰 반발도 없다.
보험은 장기 상품이다. 정책이 실패해도 쉽게 되돌릴 수 있는 단기 정책과는 다르다. 잘못된 규제로 땜질하듯 만들어진 상품은 짧게는 1년, 길게는 가입 고객의 평생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제안하고 있는 규제가 정말 소비자와 시장을 위한 것인지, 단순히 관리의 편의성을 위한 것인지 묻고 싶어지는 대목이다.
최근 국회에서 단통법 폐지 논의가 다시 일고 있다. 통신 3사의 보조금 경쟁이 사라지면서 되레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줄 잇자 이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단통법처럼 보험개혁회의에서 나눈 소중한 해법들이 10년 뒤 폐기되지 않으려면 신중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논란을 막는 데 급급해 혼란을 야기하지 말고,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을 우선시해야 한다. 규제가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을 때, 보험산업도 비로소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투데이/김재은 기자 (dove@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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