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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PartⅠ] 순기능은 | 회사 체질·자본효율 개선 사례 많아 경영권 방어·기업승계… 만능 해결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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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는 코웨이를 웅진그룹에 되팔아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경영난에 처한 웅진그룹에서 코웨이 지분 30%와 경영권을 1조1000억원에 인수한 지 5년 7개월 만이었다. 두 차례의 블록딜과 자본 재조정, 배당, 지분 매각까지 합쳐 거둔 투자이익은 총 1조원에 달했다. MBK파트너스는 전례 없는 투자 성과와 함께 유수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인수합병(M&A) ‘큰손’으로 아직 설익은 국내 사모펀드 시장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국내 PEF의 높아진 위상은 2024년 5월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이 처음 방한했을 때도 주목을 받았다.

당시 UAE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재계 주요 수장과 면담한 뒤 한앤컴퍼니와 IMM PE 등 주요 PEF 운용사 대표를 따로 만났다.

글로벌 투자업계에서 영향력이 큰 UAE의 국가원수가 몸소 국내 토종 PEF들을 찾은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자본시장연구원에서 PEF가 투자비 회수(엑시트)를 한 기업 135개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투자 시점과 엑시트 사이 기간에 해당 기업들의 가치는 평균 35%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기업가치와 몸값을 높이는 PEF의 순기능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고려아연, 에프앤가이드, 티웨이항공 등 기업의 경영권 분쟁과 적대적 M&A 이슈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사모펀드 공격을 받은 기업이 주주 가치 개선에 속도를 내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NH투자증권이 발간한 ‘경영권 분쟁, 금융 선진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라는 보고서는 ‘행동주의 전략을 내세운 사모펀드가 기업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면서 해당 기업 지배구조가 정립되고 주주 가치를 높이려는 변화를 보인 사례가 많다’고 소개했다.

매일경제

JB금융그룹과 KT&G가 적대적 M&A 경험 후 주주환원 정책이 강화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JB금융그룹은 사모펀드와 손잡은 후 금융사로서 경쟁력을 더욱 높이는 작업에 들어가 있다. 2009년 전북은행 유상증자에 PEF 운용사 페가수스프라이빗에쿼티(PE)가 참여하며 JB금융그룹은 사모펀드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페가수스PE 임원들이 JB금융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맡으며 M&A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전북은행과 페가수스PE가 우리캐피탈 인수를 합작했다. 이는 비은행 계열사가 없던 전북은행의 지주사 전환에 큰 영향을 준 M&A로 평가받는다. 페가수스PE와 인연을 맺은 JB금융은 자금 조달은 물론, 자본 시장 전문가 합류로 M&A 역량을 높여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최근 전향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으며 주목받은 KT&G는 오래전부터 사모펀드 공격을 받으며 성장한 사례다. 지난 2006년 KT&G 지분율을 5% 이상 확보한 칼아이칸은 배당 확대와 유휴 부동산 처분 등을 요구했다. 1년여 만에 KT&G 주가가 오르며 칼 아이칸은 지분을 매각하며 철수했지만, 이후에도 KT&G는 50% 수준의 배당 성향을 유지하는 등 주주 가치제고를 위해 노력했다. 최근에는 약 3조7000억원 규모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하며 증권가 호평을 이끌어냈다. 향후 4년간 2조4000억원 규모의 현금 배당과 1조3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혔다. 또한 발행 주식 총수의 20%를 소각하고 자기자본이익률(ROE)을 기존 10%에서 15%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기업의 추가 성장에 도움
기업의 추가 성장 측면에서도 사모펀드가 도움이 됐던 사례도 다양하다.

여러 기업을 경험해본 사모펀드 운용사일수록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네트워크가 넓고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사모펀드는 투자한 기업의 신사업이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데 적극적인 경우가 많다.

CJ제일제당은 2019년 미국 냉동식품 가공업체 슈완스를 인수할 때 글로벌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로부터 3억2000만달러(약 3800억원)를 투자 유치해 재무부담을 덜어낸 바 있다. 국내 대기업이 경영권을 확보하면서 글로벌 사모펀드와 공동 투자 형식으로 협업해 해외 기업을 인수한 첫 사례로 꼽힌다.

SK그룹은 M&A 등 주요 거래에 전략적·재무적 투자자를 끌어들여 협업 파트너로 삼는 전략으로 재무 리스크를 줄여왔다. 2020년 SK하이닉스가 매그나칩 파운드리 사업부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알케미스트·크레디언이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에 새마을금고와 함께 자금을 투입한 바 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PEF는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대형 시장으로 성장했다”며 “지난 20년의 성과를 분석한 결과 투자금 회수가 이뤄진 국내 PEF 투자 성과는 우수한 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자금 조달이 어려워 경영난을 겪는 비상장 회사일수록 기업가치 제고 효과가 크다는 진단이다. 비상장 회사가 급히 자금을 조달할 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주체가 바로 사모펀드 운용사다. 상장사는 비교적 자금 조달이 수월한 편이지만, 비상장사의 경우 방법이 제한적이다. 이때 가장 확실한 방법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수혈하는 것. 성장이 정체 상태인 기업은 사모펀드의 자금을 공급받아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이 가능하다. 경영난을 겪으며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을 살리는 일종의 소방수 역할을 사모펀드에 기대할 수 있다.

오너 리스크 줄이기도
매일경제

남양유업은 최대주주가 한앤컴퍼니로 변경된 후 20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21년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며 사퇴 의사를 표명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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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오너 리스크를 지워준 사례도 꽤 있다. 최근 한앤컴퍼니가 경영권을 인수한 남양유업이 대표적인 예다. 경쟁 업체에 대한 비방 댓글 지시와 창업주 외손녀의 마약 투약 사건 등 잇단 오너 리스크로 기업가치가 폭락한 남양유업은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다툼 끝에 2024년 1월 국내 PEF 운용사 한앤컴퍼니로 최대주주가 변경됐다. 경영권 인수 후 한앤컴퍼니는 남양유업의 내부통제 체제를 재정비하고 비용 효율화에 속도를 냈다. 그 결과 남양유업은 지난 3분기 연결 기준 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20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현대차그룹도 사모펀드 효과를 봤다. 지금의 현대차그룹 이사회 구조가 정착되기까지 글로벌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엘리엇은 지난 2018년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식의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하며 이사회의 폐쇄적 운영을 문제삼았다. 그러면서 외국인 사외이사 3명을 추천했다. 이와 함께 자사주 소각, 배당률 상향 조정 등을 요구했다.

외국인 사외이사 3명의 이사회 진입은 실패했지만, 이후 현대차그룹은 이사회 다양성을 높이는 활동을 이어갔다. 또한 현대차그룹은 당시 1조원 규모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 14년 만에 자사주 소각이었다. 최근에도 현대차그룹은 향후 3년간 4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금 25% 증액, 총주주환원율 35% 등의 밸류업 계획을 밝히는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행동주의 펀드는 통상적으로 주주가치가 높아질 수 있는 기업에만 적대적 M&A를 시도한다”며 “우리나라 상장사의 가치가 주가에 반영돼 주주 가치가 높아지기 전까지는 경영권 분쟁과 적대적 M&A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적대적 M&A 이후 기업은 방어 수단으로 주주환원책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대표적으로 KT&G는 적대적 M&A 후에도 줄곧 높은 배당 성향을 유지했고 주가도 반등했다”고 덧붙였다.

자본력에 있어서는 은행과 증권사를 능가하지만 규제 측면에서는 사적인 계약의 보호를 강하게 받는 PEF와 기업 간 거래는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PEF 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MBK와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이후 기업과 펀드가 서먹해질 것 같지만 오히려 협력이 더욱 다양한 형태로 늘어나고 있다”며 “적대적인 외국계 펀드의 공격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자 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기업과 국내 PEF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졌다”고 귀띔했다.

최근에는 공격 대상이 되기 쉬운 상장기업보다는 비상장기업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늘면서 기업들이 PEF의 손을 더 빌리기 시작했다. 이 관계자는 “PEF들이 공개매수 등을 통해서 상장회사를 비상장회사로 전환하는 밑작업을 해주고, 대신에 해당 그룹의 똘똘한 비상장 계열사를 받는 방식 등 다양한 방식의 거래들이 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상장 전환 밑작업
기업 승계에서도 PEF와 기업 간 협력이 늘고 있다. 기업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속·증여세를 줄이면서도 기업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거래다.

예를 들어 A기업 회장이 자녀에게 B기업을 승계할 때 지분 60%는 아들·딸에게 넘겨주고, 40%의 지분은 PEF에 넘긴다. 5년 정도 PEF와 공동으로 지분을 가지고 경영을 하면서 기업가치를 높인 후 매각해서 차익을 나눠 갖는 방식 등으로 세금을 회피할 수 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2호 (2024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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