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2시쯤 전북 진안군 진안읍 평촌마을 경로당 겸 마을회관 앞에 정차한 '내 집 앞 이동장터(트럭)'에서 성옹림(84·여)씨가 부탄가스를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성씨 손엔 꼬깃꼬깃한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이 쥐어 있다. 진안=김준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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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식약처·CU ‘내집앞 이동장터’ 시범 운영
“이동장터 차량이 지금 마을회관 앞에 나와 있으니 주민들께서는 나오셔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 주시기 바랍니다.”
26일 오후 2시쯤 전북 진안군 진안읍 평촌마을. 확성기에서 최인석(57) 이장의 안내 방송이 나오자 경로당 겸 마을회관 앞에 멈춘 트럭 주변에 머리가 희끗하고 허리가 구부정한 주민 20여명이 모였다.
한 사람씩 난간이 달린 계단을 따라 트럭에 올랐다. 냉장고와 상품 진열대를 갖춘 ‘이동형 편의점(장터)’에서 주민들은 라면·우유·과일·돼지고기 등 식료품을 비롯해 화장지 같은 생필품을 고르느라 분주했다. 성옹림(84) 할머니는 부탄가스를 집은 뒤 손에 쥔 꼬깃꼬깃한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손주뻘인 20대 계산원에게 건넸다. 혼자 산다는 할머니는 “진안은 4일과 9일이 장날인데 시장까지 7~8㎞ 떨어진 데다 버스도 1~2시간마다 한 대씩 다녀 늙은이가 장을 보러 다니기가 쉽지 않다”며 “특히 겨울엔 춥고 길이 미끄러워 제때 먹거리를 못 구하면 영양실조에 걸리기 십상”이라고 했다.
26일 오후 2시쯤 전북 진안군 진안읍 평촌마을을 찾은 '내 집 앞 이동장터(트럭)'에서 주민들이 식료품 등을 사려고 트럭에 설치된 계단을 오르고 있다. 진안=김준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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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노인에게 장보기는 생존 문제”
진안군에 따르면 평촌마을 실거주자 약 70명 중 65세 이상은 70% 이상으로 대부분 독거노인이다. 평균 연령은 80세라고 한다. 그러나 평촌마을은 구멍가게조차 없는 이른바 ‘식품 사막’으로 불린다. 식품 사막(food desert)은 1990년대 초 영국 스코틀랜드 서부에서 도입된 용어로, 식료품점이 사라지면서 식품을 구매하기 어려운 지역을 말한다. 일본에선 거주지에서 500m 이내에 식료품점이 없는 노인 등을 ‘장보기 약자’로 규정한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식품 사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편의점 CU와 손잡고 ‘내 집 앞 이동장터’ 시범 운영에 나섰다.(※본지 10월 17일자 〈“장 보려고 왕복 8시간 걸어요”…시골마을 74%가 ‘식품사막’〉 보도) 지난 12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3.5t 트럭을 개조해 만든 일종의 ‘푸드 트럭’이 매주 목요일 진안(상가막·평촌)과 임실(학암·금동)의 4개 마을을 도는 프로젝트다. 김지현 도 동물방역과 축산물위생팀 주무관(수의사)은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사전 조사를 거쳐 판매 품목을 정했다”고 했다.
식품 구매하기 어려운 시골마을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나라살림 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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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마을 74%가 ‘식품 사막’
전북연구원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열악한 대중교통 시스템 등을 농어촌 지역의 식품 접근성을 악화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소매점이 사라지면 단순히 생활 불편을 넘어 주민 영양 불균형과 만성 질환 유발, 사회적 고립, 스트레스 가중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게 전북연구원의 설명이다.
이에 정부는 ‘식품 사막’ 확산을 막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식약처가 교통·장보기 약자를 위해 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한 게 대표적이다. 기존엔 포장육 등 축산물을 정육점·마트 등 해당 점포에서만 팔 수 있었지만, 지난 10월 입법 예고한 개정안엔 냉장·냉동 시설이 설치된 이동형 점포(차량)에서도 축산물을 진열·판매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북자치도는 식약처의 규제 특례를 적용해 이번 프로젝트를 고안했다. 여기에 사회 공헌 차원에서 ‘이동형 편의점’ 등을 운영해 온 CU가 힘을 보탰다.
오유경 식약처장과 김종훈 전북자치도 경제부지사,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그룹 진영호 전무 등이 26일 전북 진안군 진안읍 평촌마을 경로당 겸 마을회관에서 최인석 이장 등 마을 주민들과 '내 집 앞 이동장터' 관련 간담회를 하고 있다. 진안=김준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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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 ‘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와 연계”
그러나 적자와 품목 부족 등은 풀어야 할 숙제다. 이동장터 1대가 움직이려면 운전기사를 포함해 최소 4~5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범 운영 첫날 CU 측이 쓴 기름값·인건비 등 실비(약 200만원)는 마을 4곳에서 거둔 총 판매 수입(약 85만원)보다 2배 이상이라고 도는 전했다.
오유경 식약처장과 김종훈 도 경제부지사, CU를 운영하는 BGF그룹 진영호 전무 등은 이날 평촌마을을 찾아 이동장터 운영 상황을 점검하고 주민 의견도 들었다. 오 처장은 “앞으로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 혁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진 전무는 “구매 사막화 방지와 시골 노인 복지를 위해 (이동장터 사업) 테스트 기간에 참여했는데, 정부와 지자체가 품목 제한과 비용 손실 등의 문제를 제도적으로 지원해 주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김 부지사는 “시범 운영 결과를 토대로 CU 측과 사업을 확대하거나 농림축산식품부가 내년에 시범 사업으로 추진하는 ‘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와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편 ‘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는 농식품부가 일부 지역에서 운영 중인 이동장터를 전국화한 사업이다. 이를 위해 전북 완주군·장수군, 전남 순천시·강진군·함평군·영광군, 경북 의성군, 강원 양양군 등 8개 시·군 마을부터 농식품부가 특장차·기자재 등을 지원하고, 지자체가 농협 하나로마트나 지역 소매점 등 민간과 인력 확보, 운행 방법을 협의해 운영하는 게 핵심이다.
'식품 사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 집 앞 이동장터'를 시범 운영 중인 전북특별자치도·식품의약품안전처·편의점 CU 관계자와 전북 진안군 평촌마을 주민이 26일 간담회를 마친 뒤 트럭을 개조한 '이동장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전북특별자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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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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