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난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樣)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고려시대 문신 이조년(李兆年, 1269~1343)의 시조다. 이 시조는 남녀 간의 사랑을 얘기한 시조 같지만, 임금을 그리는 사모의 정을 읊었다고도 본다.
이 시조는 '청구영언'(靑丘永言), '가곡원류'(歌曲源流),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등 여러 곳에 실려서 전해지고 있다.
19세기 말에 그려진 이조년 초상(작자 미상) |
여기에 나오는 이화(배꽃)가 당시에 주로 의미하던 것은 청초(淸楚), 결백(潔白), 냉담(冷淡), 애상(哀傷)이었다. 그리고 현대의 배꽃의 꽃말은 온화한 애정, 위로, 위안이다. 모두 소박과 순수함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고려시대 우리의 조상은 배꽃을 좋아했고 배꽃 필 무렵에 빚은 술을 '이화주'라고 불렀다. 다만 실제로 배꽃을 넣은 술은 아니다.
이화주는 빛깔이 희고 된 죽과 같아서 떠먹거나 물을 타서 마셨다.
동국이상국집·한림별곡·규곤시의방·요록·주방문·역주방문·산림경제·고사십이집·임원경제지·양주방 등에 이화주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이 술을 빚는 데는 누룩(이화곡)이 가장 중요한데 만드는 법은 정월 상해일(上亥日·음력 정월의 첫 돼지일을 가리키는 세시풍속)에 미리 불려뒀던 쌀을 곱게 가루로 만든다. 그런 다음 달걀 크기로 뭉쳐 항아리에 솔잎과 함께 켜켜이 담아 윗목에 둔다. 이때 따뜻하면 가운데가 썩어 푸른 점이 생긴다고 한다.
이화곡 만들기 |
7일이 지나면 꺼내서 반나절 정도 말린 후 다시 같은 방법으로 뒀다가 며칠 뒤 바싹 말려 종이봉투에 넣어둔다. 술을 빚을 때 봉지에서 꺼내 껍질을 벗기고 고운 가루로 만들어 사용한다. 이렇게 만들면 이 누룩을 배꽃이 필 때부터 여름이 지날 때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산림경제'에 수록된 이화주를 만드는 법에는 "쌀을 깨끗이 씻어 가루로 만들어 구멍 떡을 만들어 삶아 건져서 차게 식힌 뒤 준비한 누룩가루를 골고루 섞어 항아리에 꼭꼭 눌러서 담는다. 봄에는 7일, 여름에는 21일이면 익는데 여름에는 항아리를 물속에 넣어 익힌다. 술을 달게 하려면 쌀 1밀에 누룩가루 7되를 넣으며, 맑고 독하게 하려면 누룩가루 3∼4되를 넣고 빚으면 된다. 술을 빚을 때 절대로 날물을 넣어서는 안 된다"고 나와 있다.
물을 넣지 않거나 아주 소량만 넣었기에 쌀이 많이 들어가는 귀한 술이라 주로 궁중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마셨다고 한다.
떠먹는 막걸리 이화주 |
현재 국순당 '이화주', 술샘 '이화주', 예술주조 '배꽃 필 무렵', 양주골이가 '이화주', 백주도가 '이화주 참', 배혜정도가 '우 곡주' 등 여러 곳에서 이화주를 복원해 그 맛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 외 안동 김씨 가루 술과 문화 류씨 가루 술도 있는데 이들은 각각 안동 김씨 문중과 문화 류씨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독특한 제조법으로 만들며 그들만의 고유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이화주 |
참고로 중국에도 이화주가 있다. 당·송시대에 발달했으며 특히 송나라 문인들이 즐겨 마셨다고 한다.
찹쌀과 누룩으로 발효시켰으며 우리나라 이화주보다 발효 시간도 짧고 묽으며 가볍고 청량하며 알코올도수가 낮은 것이 특징이다.
특정 지역에서는 실제로 배꽃 또는 배즙을 추가하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는 저장(浙江)성이나 장쑤(江蘇)성에서 유사한 술이 생산되고 있다.
그야말로 풍류가 넘치고 정성이 가득한 전통주다. 연말연시 사랑하는 이들과 이화주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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